[데일리안 스포츠 = 김윤일 기자]올 시즌 류현진(25·한화)은 11경기에 선발 등판해 75이닝동안 평균자책점 2.76 탈삼진 98개를 기록 중이다. 뛰어난 선발 투수의 지표 가운데 하나인 퀄리티스타트도 8차례나 돼 여전히 괴물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올 시즌 류현진이 쌓은 승수는 고작 2승(3패)에 불과하다.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던 2006년과 2010년, 같은 기간 7승을 거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더딘 페이스라 할 수 있다.
이유는 역시 팀 동료들의 지원사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류현진의 경기당 득점지원은 4.32점으로 리그 평균(4.44점) 수준이지만 7득점 이상 지원받았던 3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8경기에서는 고작 2.29점에 불과하다.
4월 13일 SK전에서는 8이닝 무실점의 호투에도 승리와 연을 맺지 못했고, 다음 등판이었던 LG전(4월19일)에서는 아예 완투쇼를 펼쳤지만 승수 추가에 실패했다. 문제는 타선만이 아니다. 현재 한화의 불펜은 7개의 블론세이브(리그 2위)를 기록 중이다. 이 가운데 두 차례가 류현진 등판 때였다. 이만하면 ‘불운의 아이콘’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급기야 최근에는 등 근육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류현진은 지난해에도 ‘등 견갑골’ 부상으로 시즌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물론 이번에는 통증의 부위가 반대쪽이지만 전문가들은 등 근육 부상이 극심한 운동량과 스트레스에서 온다고 말한다. 결국 승수 추가 실패로 인한 스트레스가 부상으로 이어졌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야구에서 만약이라는 가정은 없지만 많은 야구팬들은 올 시즌 류현진에게 유독 부질없는 가정법을 대입하고 있다. 특히 한화가 아니었다면, 고향팀인 SK에 입단했다면 등이다.
사실 류현진의 SK 입단 가능성이 아주 없던 것은 아니었다. 류현진은 인천 동산고 3학년이던 지난 2005년 청룡기에서 강호 성남고를 상대로 17탈삼진의 완봉쇼를 펼치며 스카우트의 눈을 사로잡았다.
당시 SK는 지역연고 1차 지명자를 놓고 고심에 빠졌다. 대상은 류현진을 비롯해 인천고 특급 배터리인 투수 김성훈과 포수 이재원이었다. 결국, SK는 2004년 대통령배 대회에서 최다안타상을 수상한 포수 이재원을 1차 1순위로 지명했다.
박경완의 대를 이을 포수 유망주가 필요했던 데다가 정상호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채 군 입대를 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안산공고의 특급투수 김광현을 이듬해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류현진을 1순위로 지명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였다.
현재 SK는 한화의 최대 약점인 불펜과 수비가 가장 뛰어난 팀으로 손꼽힌다. 공격력이 다소 부족하지만 승리에 필요한 점수를 뽑아내는데 있어 SK를 따라올 팀이 없다. 이를 무기로 지난해까지 5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등 프로야구 최강자의 입지를 다졌다.
이는 선발투수들이 승수를 쌓는데 있어 최적의 요건이라 할만하다. 실제로 규정이닝을 소화한 SK의 투수들은 다른 팀에 비해 많은 승수를 추가할 수 있었다. 2010년 김광현(17승)과 카도쿠라(14승)를 비롯해 2009년 송은범(12승), 2008년 김광현(16승), 2007년 레이번(17승) 등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류현진이 고향팀에 입단했더라면 아직 달성하지 못한 시즌 20승을 몇 차례나 달성했을 것이라는 가정이 꼭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만약은 만약에 그칠 뿐이다. 반대로 류현진이 SK 유니폼을 입었다면 지금의 류현진은 없었을 수도 있다는 가정도 고려해야 한다.
류현진의 야구 인생에 있어 가장 큰 행운 가운데 하나는 구대성을 만난 일이다. 고교 시절 빠른 볼과 낙차 큰 커브를 주 무기로 사용했던 류현진이 프로 입단 후 구대성을 따라다니며 지금의 명품 서클체인지업을 얻게 된 일화는 유명하다.
또한 당시 한화 사령탑이던 김인식 전 감독은 신인인 류현진에게 무한한 신뢰감을 심어줬고, 한용덕 투수코치와 고(故) 최동원 투수코치도 류현진이 담대한 배짱을 지닐 수 있게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구대성은 물론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레전드 송진우, 정민철과 한솥밥을 먹은 것도 어린 나이의 류현진이 노련함을 갖추게 된 요인이다.
류현진도 공공연하게 한화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가장 좋은 예가 등번호 99번. 입단 당시 15번을 달았던 류현진은 국내 무대로 복귀한 구대성이 자신의 등번호를 찾아가자 아무 생각 없이 99번을 달게 됐다. 하지만 지금의 류현진에게 등번호에 대해 물으면 “창단 후 첫 우승을 달성한 99년을 떠올리면서 팀을 정상에 올려놓겠다”고 설명한다.
한화 구단도 최고 투수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고 있다. 프로 7년차인 류현진은 입단 후 매년 연차별 연봉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신인왕을 차지한 이듬해 2000만원에서 단숨에 1억원으로 뛰어오른 그의 연봉은 지난해 웬만한 FA와 맞먹는 4억원에 도달했다.
특히 지난 시즌은 부상 등의 여파로 최악의 시즌을 보냈음에도 한화 구단 측은 류현진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해 이승엽의 8년 차 최고 연봉보다 2000만원 높은 4억 3000만원을 안겨줬다.
앞으로 류현진은 9승만 더 추가한다면 역대 최연소 100승의 금자탑을 쌓게 된다. 이는 정민철(27세 3개월 2일)의 기록을 무려 2년이나 앞당기는 것으로 한국 야구사에 있어 큰 의미가 아닐 수 없다. 류현진이 한화에 입단하지 않았더라면 프로야구 최고의 에이스 탄생은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 데일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