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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 아끼려 기어중립…내리막길 죽음의 질주

[기타] | 발행시간: 2012.06.27일 16:07

[르포] ‘화물차노동자의 하루’ 동행

10시간 달려와 짐싣고 또 출발…“밤낮없는 따당, 남는 건 쥐꼬리”

“하루 16시간 목숨걸고 ‘따당’해도 남는 건 빈손…”

인천~부산~파주 ‘하루 왕복’

“앞만 보고 달리지만 멍한 느낌”

50만원 넘는 기름값 아끼려

내리막길 가속에 차 내맡겨

*따당 : <하루짜리 왕복운행>

“따당을 같이 뛴다고요? 우리야 먹고살려고 하는 거지만, 고생 좀 하실 텐데요.”

지난 18일 아침 7시50분께 인천 남항 앞 컨테이너 트럭 주차장에서 만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소속 화물차 운전자 강아무개(53)씨는 웃으며 말을 건넸다. 집에서 싸온 등산가방과 쇼핑백을 들고 2미터 높이 운전석에 먼저 올라탄 그는 에어 컴프레서로 운전석 내부의 먼지부터 떨어내기 시작했다. “앞으로 5일 동안 하루종일 있을 곳이라 매일 이렇게라도 청소해야 돼요. 안 그러면 바로 몸살이 나더라고요.” 그가 내려놓은 가방 안에는 속옷 두 벌과 양말 세 켤레, 갈아입을 바지와 티셔츠가 두 벌씩 들어 있었다. “길바닥 어디건 차 세우면 자고, 깨 있을 땐 마냥 운전해요. 노숙자랑 크게 다를 게 없죠.”

‘따당’이란 인천과 경기도 고양 등지에서 컨테이너를 싣고 부산에서 짐을 내리고, 또다른 컨테이너를 싣고 밤길을 되돌아오는 하루짜리 왕복운행을 말한다.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는 작업시간 1시간 남짓을 제외해도 꼬박 15~16시간 이상 운전해야 하는 고된 일이다. 목숨 걸고 졸음과 싸워야 하고 때론 몸이 곱을 지경이지만, 그는 한달에 13~15차례 따당을 뛰며 경기~부산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돈다고 했다.

그가 가정생활까지 포기하다시피 하며 따당을 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최대한 많은 거리를 달려 매출액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이날 부산까지 왕복을 하면서 그가 받은 운임은 90만원 정도였다. 이날 하루치 기름값이 50만원 넘게 들었고, 고속도로 요금으로 5만원을 썼다. 여기에다 매달 300만원 넘게 지급해야 하는 차량 할부금과 지입료 등을 생각하면 시간을 쪼개고 쪼개 운전해도 모자란다. 또 저녁 8시부터 새벽 6시까지는 고속도로 요금을 50%까지 할인해준다는 사정도 있다. 매달 고속도로 요금만 100만원 넘게 쓰는 운전자들에게는 적지 않은 혜택이다.

또 한가지 따당을 뛰는 이유는 유류세 보조금 때문이다. “운행해봐야 남는 돈은 없어요. 잘해야 ‘똔똔’(수지 균형)이나 맞출까요?” 그나마 운행을 많이 하면 기름 사용량이 늘어, 리터당 345원씩 환급되는 유류세 보조금도 그에 비례해 많아진다. 매출이 많건 적건 ‘똔똔’이 될까 말까 하기 때문에 유류세 보조금 혜택이라도 많이 받아야 한다는 셈법이었다.

지출 가운데 기름값 비중이 워낙 높기 때문에 화물차 운전자들은 기름을 아끼는 데 총력전을 펼친다. 차가 워낙 무거워 조그만 차이에도 한달이면 수십만원씩 지출이 달라진다. 인천에서 부산으로 향하는데 영동~중부내륙~남해고속도로를 경유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차가 많지 않아 시속 70㎞ 정속 주행이 가능하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해 내리막에서는 기름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날 혼잡하던 영동고속도로를 지나 한적한 중부내륙고속도로에 들어선 뒤, 내리막길을 만날 때마다 강씨는 기어를 중립에 놓고 가속에 차를 맡겼다. 엔진이 쉬는 동안 기름값은 아끼겠지만, 문제는 차의 무게였다. 수십톤에 이르는 화물차가 탄력을 받기 시작하자 무섭게 속도가 붙었다. 내리막의 저점에서 시속 130㎞를 넘어서자, 닫힌 창문 밖에서 굉음이 들릴 지경이었다. 강씨는 “차가 워낙 무거워 이 상황에서는 제동도 잘 안 걸린다는 걸 알지만, 기름값 아끼려면 이렇게라도 해야 된다”며 “굶어 죽으나 사고 나서 죽으나 마찬가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날 오후 5시를 넘어 강씨의 트럭이 부산 항만에 도착했다. 1시간여 동안 컨테이너를 교체하고 파주로 돌아가야 하는 길, 강씨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그럴 법도 한 게 오늘만 10시간 가까이 좁은 차 안에서 운전대만 붙잡고 있다. 야간에는 졸음이라는 새 변수도 생긴다. 그는 어둠이 내리고 부산에서 돌아서야 하는 이맘때 가장 서러운 마음이라고 했다. 그는 “앞을 보고 달리긴 하는데 여기가 어딘가 하는 멍한 느낌, 잘 모르겠죠?”라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가장 큰 위안은 차량 안에 달려 있는 무전기를 통해 들리는 ‘화물연대’ 소속 동료 운전자들의 목소리였다. “30번 국도 따라 달리는데, 낙동강이 좋네요.” “동지들 졸음운전 조심하세요.” “나 지난달에도 50만원 ‘빵꾸’(적자) 났슈.” “다음주에 파업 들어가면 대차게 한번 해봅시다. 이번에도 밀리면 정말 칼 물고 엎어지는 수밖에 없어.” 쉴새없이 이어지는 동료 기사들의 넋두리를 들으며 잠도 쫓고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새벽 2시께 “난 경주 도착했슈. 동지들 잘들 주무세요” 하는 동료 운전자의 마지막 무전기 소리를 끝으로 이제는 무전기에서도 소식이 없다. 나란히 앉은 그와 기자 사이 대화도 끊긴 지 오래. 그저 목적지에 빨리 닿기만을 기다리는 시간이 1시간 넘게 이어졌다. 새벽 3시30분께 강씨의 트럭은 파주 엘시디(LCD) 단지에 도착했다. 그는 공장 한편에 차를 대자마자, 운전석 뒤쪽 80㎝ 너비 간이침상에 몸을 뉘었다. 침상은 한칸뿐. “내일 아침에 물류회사에서 전화 오면 또 부산에 내려가야 하니, 미안하지만 제가 좀 누울게요.”

이제 몇시간 뒤면 운송회사에서 ‘○○시까지 부산에 가는 일이 있는데 하겠느냐’는 전화가 올 것이다. 그 전화를 받기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는 그저 눈을 붙일 뿐이었다. 어색한 숨소리가 20여초 이어지더니, 강씨는 그새 코를 골기 시작했다. 기자를 배려해 켜준 오렌지색 실내등이 그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정주하지 못하는 그의 삶을 닮은 깊은 명암이었다. 강씨는 화물연대 파업 이틀째를 맞은 26일,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르고 인천 항만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 한겨레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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