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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전 시 세미나]남영전과 장백산잡지사,길림신문사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07.30일 15:20
ㅡ길림신문사 사장 겸 총편집 홍길남

1948년에 출생한 남영전시인은 농민에서 로동자로,선전부 간부로 있으면서 우리 나라 문화사업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다.퇴직년령이 된후에도 남영전시인은 장백산잡지사 사장,길림신문사 사장 겸 총편집으로 2년간이나 더 봉사를 해오다 2010년 3월에 퇴직했다.

남영전시인은 지금 미국세계문화예술학원의 명예 문학박사로 있으며 중국작가협회 소수민족위원회 위원,중국당대소수민족문학연구회 부회장,미국세계시인대회,영국국제전기협회 종신회원으로 있으며 미국국제전기협회연구위원회 명예고문,북경대학 조선문화연구소 연구원,중국조선족발전포럼 회장 등을 담임하고있다.

남영전시인은 1971년부터 여러 류형의 문학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는 《원융》을 대표로한 시집 16부,산문집 3부,역저 3부를 출판했고 국가급 문학상인 전국소수민족문학상을 3차례,길림성 장백산문예상 2차례 받았으며 여러 가지 문학상 44차례나 받았다.남영전시인은 또 한국세계계관시인상 4차례,영국,미국 국제전기협회 성과휘장 4매를 받았다.

나는 장백산잡지사와 길림신문사를 대표하여 여러 분들에게 두개 단위에서 근무할때의 남영전시인의 기여를 소개한다.

1980년 통화시 당위 선전부에서 근무하던 남영전시인은 조선문잡지 창건에 관한 통화문련의 임무를 맡았다.남영전시인은 당지 조선족작가들이 조선문잡지를 수요한다는 상황을 알아보고 조선문잡지 창건에 몸을 담그었다.당해 5월에 《장백산》잡지가 창간됐다.

창간초기 《장백산》잡지는 1년에 2기를 출판하다가 남영전시인의 노력으로 점차 계간으로 출판,지금은 쌍월간으로 출판하고있다.장백산잡지사의 편제도 2개의 전액편제로부터 지금은 5개 전액편제로 늘어났으며 운영경비도 해마다 늘어나고 성재정 조달로 운영하고있다.

1985년에는 장백산잡지는 발행최정상에 올라 3만부에 이르렀다.장백산잡지사의 더 넓은 발전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남영전시인은 잡지사의 장춘정착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1990년에 장백산잡지사는 통화시에서 장춘시로 옮겨오게 됐다.

《장백산》잡지는 선후로 북방우수간행물,성급우수간행물에 선정되고 2005년에는 국가신문출판총서로부터 《100가지 중점간행물》로 평정받았다.

창작을 극히 애호하는 작가로서 창작을 잠시 접고 간행물운영 지휘봉을 잡는다는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잡지와 신문은 우리의 마음을 표달하는 진지》라고 생각한 남영전시인은 단연히 창작을 접고 2005년에장백산잡지사 사장으로 있으면서 길림신문사 사장 겸 총편집에 임하게 되였다.작품창작을 할수 없고 임무가 과중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연히 조직의 배치에 복종했다.

여기서 민족잡지와 신문에 대한 남영전시인의 집착과 책임감을 엿볼수 있다.

길림신문사 사장을 겸한후로 남영전시인은 작품창작시간이 전혀 없었다.임명된후 얼마 안지나 남영전시인은 길림신문사 위치확인에 착수했다.그는 당시 길림성 성당위 부서기로 있은 전철수 등 성당위 주요 령도와 조선족간부들에게 이 문제를 제기했다.2005년 성당위 판공청으로부터 《길림신문은 길림성 조선문 성급당보》로 확정받고 정식자격을 획득했다.

길림신문사를 장상적인 발전궤도에 올려세우고 전액조달사업단위로 되게 하고저 남영전시인은 밤낮없이 보고를 쓰고 신청하고 여러 곳을 뛰여다니며 면담했다.그의 드팀없는 노력으로 2007년 길림신문사는 끝내 전액조달사업단위로 되였다.이는 길림신문사의 향후발전에 튼튼한 토대를 닦아놓았다.

그는 또 상급으로부터 100만원 되는 전문자금을 조달받아 인쇄설비를 갱신하고 채무를 청리했다.한편 남영전시인은 사회 각계 유지인사들을 동원해 모은 자금으로 길림신문사의 근무조건을 개선했다.

신문운영사상이 보다 앞선 남영전시인의 지도하에 꾸린 길림신문은 줄곧 광범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남영전시인은 최대한 길림신문사 종업원들의 적극성과 창조성을 발휘시키고저 합리한 건의들을 광범위하게 청취한 토대우에서 개방적인 사유로 신문개혁을 진행했다.

선후로 《연변 25시》,《창업과 취업》,《인성교육》,《송화강》등 전문란을 창설하고 중국길림넷 조선어프로를 개통해 여러 가지 대형행사때 온라인생방송을 했다.남영전시인은 또 《한국어촌》특간을 창간하고 길림신문모바일뉴스도 개통했다.

남영전시인은 조선족사회의 열점문제를 신문운영의 중점으로 삼고 조선족사회의 옳바른 발전과 사회안정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그의 지도밑에 길림신문은 점차 대외 선전의 중요한 창구,대표성을 띤 조선족여론매체로 발전했다.

남영전시인은 성 해당 부문의 전력지지밑에 당시 조선족사회의 열점문제로 되였던 《공항마구벌금》사건을 추적보도함으로써 광범한 조선족군중들의 실제적인 곤난을 해결하고 조선족들의 권리를 수호했으며 길림신문사의 형상을 높였다.

남영전시인은 겸손하고 선량하며 정직하고 진실하며 흉금이 넓고 자상하여 종업원과 조선족사회의 존경과 애대를 받았다.

임기기간에 남영전시인이 창설한 길림신문사,장백산잡지사발전연구회는 사회력량에 의거해 간행물을 경영,연구하고 발전시키는 선례를 열었다.

남영전시인이 신체건강하고 나라를 위해 조선족사회를 위해 더 많고 더 좋은 작품을 창작하기를 기대한다.

/사진 유경봉기자 찍음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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