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1999년에 연변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20년간 줄곧 시골소학교에서 담임교원사업을 해오면서 나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은 곧 사랑이라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되였다.
출국붐, 리혼률의 증가 등 여러가지 원인으로 조선족 학생수가 줄어들면서 부근의 여러개 시골소학교들이 우리 학교에 합병된 지 벌써 꽤 오래다. 각 촌에서 모여온 아이들의 편리를 위하여 우리 학교에서는 기숙제를 실시하였다. 고급학년 학생들은 그래도 괜찮은데 1, 2학년 학생들이 문제였다. 아침에는 일어나지 못하여 숙사관리원선생님이 직접 돌아다니며 깨워주어야 했다. 아침식사를 할 때면 반찬이 입에 맞지 않는다고 트집을 쓰는 애들도 있었다. 어떤 애들은 세수도 바로하지 않았다. 내가 신입생들을 갓 맡았을 때 몇몇 녀자애들은 날마다 머리를 제대로 빗지 않고 헝클어진 그대로 교실에 오군 했다. 하여 나는 날마다 그 애들의 머리를 빗겨주고 했다. 그들 중 어떤 애는 날마다 선생님을 수고시키는 것이 미안하다고 거두기 좋은 단발머리를 깎았다.
제일 걱정스러운 것은 아이들이 감기나 장염 같은 병에 걸리는 일이였다. 그럴 때면 나는 젖먹이 딸애를 친정어머니에게 맡겨놓고는 기숙사에 가서 앓는 애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병을 보이군 했다. 또 숙제를 하는 것을 지도해주기도 했다. 우리 학급의 군이라는 애는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 집이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오고 있었다. 부모는 그 애가 어릴 때 리혼하다보니 부모사랑을 모르는 애였다. 나는 군이에게 늘 관심을 돌리고 가끔 머리를 만져주기도하고 어깨를 다독여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맛나는 간식을 사다 주기도 했다. 어느 한번 군이는 나에게 “지난번 감기에 걸렸을 때 선생님이 사다 주신 맛있는 간식을 가득 먹으니 아프지 않습디다.”라고 하였다.
소학교 5, 6학년이 되면 어떤 녀학생들은 달거리가 생긴다. 이 ‘불청객’은 늘 애들을 괴롭히군 하였다. 부모가 곁에 없는 녀학생들은 달거리가 오면 무서워서 어쩔 줄 몰라한다. 나는 녀학생들만 따로 모아놓고 월경에 관한 위생상식과 생리대 선택에서 주의해야 할 점을 세세히 알려주었다. 그리고 핸드백에 늘 생리대 몇개씩 준비해가지고 다니면서 미처 생리대를 준비하지 못한 녀자애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남자애들은 무더운 여름이면 학교 뒤에 있는 압록강에 나가 물놀이를 하기 좋아하였다. 그런데 물살이 세거나 물이 깊은 곳에 빠질 위험이 있었다. 강에 가지 말라고 늘 강조했지만 아이들은 가만히 강에 가서 물놀이를 하군 했다. 하여 나는 아예 점심휴식시간을 물놀이시간으로 정하고 아이들과 함께 강에 나갔다. 아이들이 강에 들어가기 전에 거듭 안전에 주의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애들이 물놀이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수업시간이 가까워오면 아이들과 함께 학교로 돌아오군 하였다. 그 때 강에 가서 물놀이를 하던 애들은 이젠 모두 제법 헤염을 잘 치는 아마츄어 수영선수로 되였다…
할머니가 해보낸 것이라며 시루떡 한덩이를 내밀던 순이, 한국서 엄마가 사다준 쵸콜레트를 내 입에 넣어주던 군이, 감기에 걸린 나에게 민들레뿌리를 캐여다 주던 석민이… 인정 많고 마음 착한 아이들이 있었기에 나는 연변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단에 선 첫날부터 지금까지의 20년 세월이 항상 즐겁고 행복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이 너무나 고맙다. 더욱 아이들을 사랑해야겠다.
/장백현 12도구중심소학교 조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