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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산”이 왜 연변에 있었을가?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0.10.12일 11:05
  올해 국경절련휴기간은 시간을 내서 룡정시 삼합진으로 자전거려행을 다녀오기로 계획했다.10월 초순, 이맘때면 삼합가는 오랑캐령 천불지산에 울긋불긋 가을단풍이 곱게 물들기 시작하는것도 좋은 구경거리지만 삼합에 가면 볼수 있다는 “후지산”을 찾아 보는것도 의미있는 일 같았다.언젠가 룡정에 취재갔다가 중국조선민족사학회 리사이며 룡정시 전임 문화관 관장, 룡정3.13기념사업회 회장인 리광평선생한테서 전혀 뜻밖에 룡정에 과거 일본사람들이 명명해 불렀다는 후지산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적 있기때문이였다.후지산(富士山)이라고 하면 일본을 대표하는 명산이다. 후지산은 일본 도꾜 서남방향으로 96킬로메터 되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해발 3776메터로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일본의 신화에서는 후지산의 녀신과 하늘의 신의 자손이 바로 일본의 천황가라고 되여있다. 그만큼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후지산은 령산으로 간주되고 있다.그런 일본에나 있을법한 후지산이 왜 연변에 있었을가? 호기심이 부쩍 동했다.그 산은 룡정시 삼합진 소재지에서 서남쪽으로 1리가량 떨어진 청수촌 경내에 있다고 들었다. 전설로만 전해 오는것이 아닌 엄연한 사진기록으로 남아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였다. 지난세기 초, 일본이 조선반도를 강점하고 나서 호시탐탐 중국대륙침략에 박차를 가하면서 동북에 마수를 뻗치기 시작하던 20세기 20~30년대쯤 발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낡은 우편엽서가 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가토 키요마사가 "간도의 후지산"으로 명명했다는 내용이 담긴 우편엽서

  우편엽서에는 녀진정벌길에서 가토 키요마사(加藤清正)공이 후지산이 보인다고 기뻐하면서 "간도의 후지"라고 명명했다는 간단한 설명이 붙어 있었다. 사진은 두만강을 사이두고 원거리 촬영한것이였다. 조선을 강점하고 나니 이제 두만강건너로 바라보이는 기름진 땅이 욕심나서 어거지로 자기들의 산이름을 갖다 붙인 것이라고 리광평선생은 말했다.1932년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이 세워진후 일본의 정규군이 대량 연변으로 들어 오는데 그때 배를 타고 두만강을 건느면서 사진을 찍고 그 설명을 "간도 후지산"이라고 밝히고 있었다. 리광평선생은 일제가 이렇게 한것은 이 지대가 자기들과 인연이 있고 자기들이 이곳에 들어오게 된 것은 다 인연이 있어서 왔다는 식의 침략을 미화하기 위한 구실이라고 말했다.기실 일본 근대의 무장(武将)인 가토 키요마사(1562~1611)가 두만강 건너 타국의 산을 자국의 후지산으로 명명한것도 역시 력사적인 연연이 있었다. 일제가 중국동북을 침략하기에 앞서 일찍 1592년 4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은 불과 두 달여 만에 파죽지세로 평양과 함경도까지 점령했다.가토 키요마사는 조선을 침략한후 계속해서 북진하면서 결국은 그 해 8월 두만강을 넘어 중국에까지 기여든다. 일본군대가 중국침략을 가장 처음으로 시도한때가 이때라고 력사는 기록하고 있었다. 그때 가토가 인솔한 왜군은 조선 회령에서 두만강을 건느고 삼합을 지나 안민대골과 오랑캐령을 넘어 중국에 기여 들었다고 리광평선생은 소개했다.그때 왜장인 가토는 두만강건너 일본의 후지산과 비슷해보이는 산봉우리 하나를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자기들의 령토로 만들 욕심에 후지(富士)라고 명명했다는것이다.



  안민대골 입구에서 가토의 침략력사를 회고하는 리광평선생

  일본이 발행한 우편엽서에서는 당시 가토가 거느린 일본군대가 오랑캐령을 넘어 진격 토벌하면서 13개 성을 불살랐고 중국땅에서 일본인의 위용을 떨쳤다고 적고 있었다.당시 명의상으로는 명조의 우량하 건주 녀진부(兀良哈建州女真部)와 싸움이 있었고 가토는 처음에는 승승장구로 승리하기도 했다고 력사는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흩어졌던 녀진 각부가 다시 돌아 오면서 단합해 대처하자 그 위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은 패주해 두만강을 건너 도망쳤다고 한다.일본작가 기타지마 반지가 쓴 《가토 키요마사•조선침략의 실상》 이라는 책에서 보면 당시 국자가에서 전쟁이 있었는데 녀진종족이 사방에서 공격해오니 가토 키요마사 군단이 극히 큰 사상자를 내게 되였고 결국 두만강을 건너 함경도로 탈출했다고 쓰고 있다. 이 기록으로 볼때 일본인들이 가토가 당시 녀진인들을 정복했고 위용을 떨쳤다는 력사기재는 사실과 맞지 않다.그로부터 300년도 넘은 세월이 흐른 19세기초, 일본은 다시 삼천리 금수강산을 삼켜버리고 그 침략의 눈길을 중국대륙에 돌리였으며 두만강을 건너 대륙을 정복할 침략의 야망을 불태웠던 것이다.리광평선생에 따르면 중국에 기여든 일제는 만주국을 세운후 룡정에 가토의 300여년전 중국침략을 칭송하고 기리는 추사비까지 세웠다고 한다. 자기들 선인이 그때 벌써 이곳에 인연이 닿았다고 주장하면서 중국침략을 기념비에 새기고 정당화 했다는 주장이다.



  가토의 300여년전 중국침략을 칭송하고 기리면서 룡정에 세웠던 추사비(자료사진)

  한편 사료를 보면 30년대 중국침략을 전후하여 일본이 "간도 후지"이라고 명명한 무수한 우편엽서들이 발행된다. 가토가 과거 회령에서 두만강을 사이두고 중국쪽을 바라보면서 일본의 후지산을 닮은 모양의 산이라고 하면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명하에 많은 엽서들을 발행한것이다. 가토가 과거에 불렀던 것처럼 그 후세 침략자들도 그 산에 나름대로의 의미와 내용을 갖다 붙이고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한 엽서를 대량 발행한 것이였다.

  당시 발행되였던 우편엽서들리광평선생은 일본이 굳이 중국의 산을 후지산으로 부른데는 가토의 수백년전 침략을 미화하고 다시금 침략의 마수를 뻗쳐 기름진 두만강 너머 대륙을 자기들의 소유로 강탈하고 싶은 침략적 야망을 담은것이라고 해석했다.연길에서 삼합까지는 72키로거리, 아침 일찍 떠난 자전거행차가 점심때가 가까워 와서야 도착했다.



  일본인들이 후지산이라고 불렀던 산을 당지에서는 증봉산이라고 불렀다

  삼합진에서 보다 산을 잘 관찰하기 위해 마을 뒤쪽 렬사기념비가 세워져있는 언덕에 올라가 보았다. 시야가 환해졌다. 멀리 바라보이는 산은 어찌보면 후지산과 모양이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산은 이름이 따로 있었다.삼합진 길거리에서 마침 승지에서 태여났고 또 퇴직할때까지 쭉 삼합의 향진정부에서 사업했다는 김상진로인을 만났다. 올해 73세라고 했다. 김로인은 마을사람들이 산이름을 증봉산이라고 부른다고 알려 주었다.증봉산은 사실 조선어로 된 산이름이 한어로 번역되면서 생긴 한어명이다. “룡정현지명지”에 따르면 산봉우리 모양새가 흡사 시루같이 생겼다고 해서 일명 시루봉이라고 불렀다. 광서초기에 이미 그렇게 명명되였고 해발은 460.2메터라고 기재되여 있었다. 시루가 한어로 증(甑)자이고 산마루 봉(峰)자가 합쳐지면서 결국은 증봉산이 된것이였다.



  삼합진에서 만난 김상진로인

  마을에서는 이 산이 과거 일제침략자들에 의해“간도의 후지산”으로 불리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는것 같았다. 김상진로인도 삼합에서 태여났고 70년 넘는 세월을 이곳에서 살아 왔지만 난생처음 듣는 소리라고 말했다. 어린시절에도 어른들로부터 그런 소리는 결코 들어 본적이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일본침략자들이 자기절로 부르고 쓰고 명명하면서 붙인 자기들식 산이름이니 민간하고는 하등 상관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침략자가 만든 이름을 그 누구도 승인했거나 인정하지 않았기에 력사나 기억속에 남아있을리 만무하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멀리 바라보이는 증봉산

  필경, 그 산은 오래된 일본의 우편엽서속에서만 존재하는 왜곡된 력사와 침략의 부정당한 지명이고 부름일뿐이였다. 이와 함께 과거 연변에 있었다는“후지산”은 일본제국주의의 중국침략의 철같은 증거로 력사속에 기억되고 오래오래 경종을 울려야 될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단풍물이 들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아름다움의 절정을 향해 모습을 바꿔가는 증봉산은 어떻게 보아도 우리식 이름인 시루봉이 정겹고 친근해 보였다.

  /길림신문 안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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