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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치환, "중국 건아들 북경동계올림픽 좋은 성적 기대"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2.01.20일 14:03
  지난 19일 북경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기자는 동양인으로서 첫 세계빙속 우승을 따내 전세계를 놀래웠던 라치환(罗致焕. 조선족. 81)선생과 통화했다.

  라치환 선생은 지금 할빈에 거주하고 있으며 81세 고령에도 자가용을 몰고 다닐정도로 멋진 삶을 살고 있다.



동양인으로서 첫 세계빙속 우승을 따내 전세계를 놀래웠던 라치환 선생.

  기자와 통화하던 날에도 할빈에서 진행하는 북경동계올림픽 응원 행사 현장에서 바삐 보내고 있었다.

  그는 "그때 그 순간을 말로 표현할수 없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라치환 선생이 말하는 그때 그 순간은 1963년 2월 24일 일본 나가노(長野)현 가루이자와(輕井澤)에서 열린 제57회 세계빙속선수권대회에서 일어난 이변이다.

  당시 21살이였던 그가 스피드스케이팅 1500m 종목에서 구소련과 스웨덴, 노르웨이 등 쟁쟁한 유럽 선수들을 제치고 동양인으로서 첫 우승을 차지하는 일대 사건이 벌어졌던 것이다.

  중국 대표선수로 출전했던 라치환은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빙속의 벽'을 무너뜨렸다. 전 세계가 놀랐다. '동방의 병다리' 취급을 받으며 안중에도 들지 못했던 중국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니 말이다.



1963년 2월 24일 일본 나가노(長野)현 가루이자와(輕井澤)에서 열린 제57회 세계빙속선수권대회에서 라치환 선생이 금메달을 획득하고 수상대에 올랐다.



금메달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한국의 배기태 선수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1987년 네덜란드 세계빙속선수권대회 500m종목 우승을 차지했는데 그 보다 24년이나 먼저 세계 정상에 올랐다.



금메달 수상후 남긴 보귀한 사진.

  1941년 흑룡강성 해륜 (海倫)시 동태조선족마을에서 5남매중 중간에 태여난 라치환 선생은 마을에 있는 소학교에서 4학년까지 공부하다 그후 3년은 철려따꿔먼즈조선족소학교에서 공부했다. 소학교를 졸업하고 수화조선족중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교때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는 유화를 배웠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때 체육시간에 스케이트를 배우기 시작했고 뒤늦게 빙상운동에 입문했지만 금방 천부적 소질을 나타냈다. 1957년 치치할(齐齐哈尔)체육학원에 입학, 빙상 선수로서 본격 훈련에 돌입한 그는 1959년 할빈에서 열린 제1회 전국대회 빙속 1500m에서 2위를 차지, 이듬해 2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빙상선수권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당시 19세였던 그에게 세계의 벽은 높기만 했다. 500m 15위, 1500m 29위, 5000m 22위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혹독한 세계무대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그는 1962년 2월 모스크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500m 5위와 1500m 4위 등을 기록, 48명 참가 선수 가운데 개인종합 6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면서 세계 수준과 격차를 좁혔다.

  그는 당시 할빈에서 한달간 구소련 코치 스제인의 지도를 받았다.

  1963년은 빙상선수로서 화려한 전성기를 맞은 해였다. 그해 2월 일본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서 개최된 세계대회에서 노르웨이 선수를 따돌리고 1500m에서 마침내 1위에 오르는 감격을 맛봤다. 같은 대회에서 500m와 5000m에서도 각각 2위로 결승 테이프를 끊어 일약 세계 빙상계의 기린아로 떠올랐다.



금메달 정면과 뒤면.



금메달 획득 증서.

  유럽 선수들의 독점무대였던 세계대회에서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게다가 키가 170센치밖에 안되는 중국 조선족 출신의 그가 우승했다는 사실은 일본인에게도 커다란 놀라움을 안겨줬다. 지금도 가루이자와에 가면 당시 우승자들의 이름을 새긴 기념비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라선생은 "중국 빙상계는 한때 조선족들이 주도했는데 지금은 조선족선수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아쉬워했다. 그의 입에서 정홍도, 리태권, 박달화, 임세준, 김창복, 허명숙, 김영애, 최순자(길림성, 전국1등), 김미옥 등 이름이 줄줄 나왔다. 50~60년대 전국 대회에서 1등부터 6등까지 조선족 선수들이 독차지했다.

  그는 1971년부터 흑룡강성 코치로 사업하다 1985년부터 1996년까지는 중국 국가대표팀 코치로 활동했었다. 1997년부터 퇴직하던 2004년까지 다시 흑룡강성 코치로 활동했다.

  1984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35주년을 맞아 '가장 걸출한 운동원'으로 선정됐고 1988년에는 '신중국체육개척자'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리고 1994년에는 건국 45주년을 맞아 '45명의 영웅'으로 뽑히기도 했다. 1998년 35년만에 다시 나가노를 방문, 동계올림픽 성화주자로 참가했다.



2008년 북경올림픽 성화 봉송.



  "술도 못하고 담배도 안피웁니다. 퇴직후에는 등산도 하고 낚시도 합니다. 한주일에 2-3번씩 헬스장에 다닙니다. 가만히 있으면 몸이 불편합니다. 단련하면 땀이 나고 거뿐합니다. 체육인들은 움직여야 몸이 편안합니다"

  라치환 선생은 오늘도 북경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더욱 분망하게 보내고 있다.





북경동계올림픽 경기장에서 2021년 11월 22일 기념 사진을 남겼다. 바로 이곳에서 다음달 4일 북경동계올림픽이 열린다.



경기에서 입었던 유니폼.



출처:흑룡강신문

편집:김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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