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생 100만명 시대] [1] 대학 문화가 된 휴학
전국 4년제 대학 전수 조사 - 휴학률 50% 넘는 학과 249개
군·일반 휴학 몰리는 2·3학년, 한 학번이 통째 비는 경우도… MT 등 학과 활동 꿈도 못 꿔
지방 대학 더 심각 - 다른 학교 편입 준비생 많고 미래 걱정 탓에 애교심 없어
학교 재정에도 큰 부담 - 국립대 기성회비 18억 줄기도… 등록금 분할 등 재학생 붙잡기
서울의 한 사립대 A학과 '북한의 대외관계사' 강의는 학생 6명만이 듣는다. 또 다른 전공 수업인 '북한의 헌법과 법체계'도 단 7명이 수강생이다. 두 강의 모두 55명이 앉을 수 있는 대학 본관 강의실이 배정됐는데, 좌석이 10% 남짓 채워졌다.
강의실이 이렇게 휑한 이유는 수업이 인기가 없어서가 아니다. 들을 학생이 없어서다. 현재 A학과 학생 절반 가까이 휴학 중이다. 지난 학기 104명 중 56명(53.8%)이, 이번 학기는 112명 중 54명(48.2%)이 휴학 중이다.
텅 빈 강의실… 지난 9월 24일 오후 서울의 한 사립대학 A학과 전공 수업 시간의 모습. 55명이 들어갈 수 있는 강의실에 9명의 학생만이 수업을 듣고 있다. 수업을 진행한 이모 교수는 “죄다 스펙을 쌓는다고 휴학을 해 같은 과 학생들이 한데 모이는 학과 행사도 유명무실해졌다”고 말했다. /채승우 기자
높은 휴학률은 학교의 문화를 바꿔놨다. A학과 학생대표 김모(26)씨는 "학기 초에도 과실(科室)을 찾는 학생이 없고, 매년 축제 때 열던 주점도 작년이 마지막이었다"고 말했다. 개강·종강 총회, MT, 농활 등의 학과 활동은 꿈도 못 꾸는 처지다. 이 학과 이모 주임교수도 "취업을 앞두고 '스펙 쌓기'에 한창인 2007학번은 80%가 휴학 중"이라며 "요즘 강의실이 텅텅 비어 대학 수업이 아니라 마치 소그룹 과외를 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휴학 대란'은 다른 학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의 또 다른 사립대 공공인재학부는 재적생 639명 중 290명(45.4%)이 휴학 중이다. 학생회장 김모(24)씨는 "고시 준비, 해외 어학연수, 대기업 인턴이 필수 코스가 되면서 '칼졸업(휴학 없이 졸업)'하는 사람이 사라졌다"며 "군 휴학과 일반 휴학이 몰리는 2학년이나 3학년의 경우에는 한 학번이 거의 통째로 비어 버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B대학 기계공학과는 재적 학생 95명 중 79명이 휴학을 신청해 83%의 휴학률을 기록했다.
본지 취재팀이 전국의 216개 4년제 대학의 8069개 학과의 휴학률을 전수 조사한 결과, 휴학률이 30%가 넘는 학과는 총 3390개(42.0%)에 달했다. 이 중 휴학률이 40%대인 학과는 753개였고, 휴학률이 50%를 넘는 학과도 249개나 됐다.
지방 대학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경남의 한 국립대 중국학과는 현재 4학년 학생 50명 가운데 24명이 휴학 중이다. 4학년 김모(25)씨는 "다른 학교로 편입하려는 친구들이 많고,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학교에 대한 애착심도 없어 주변 친구들이 휴학하면 덩달아 더 휘둘리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처럼 높은 휴학률은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비정상적으로 만들 뿐 아니라 학교 재정에도 큰 부담을 초래하고 있다. 등록금을 내고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줄면서 자연히 학교의 수입도 줄어든 탓이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이 지난 6월 전국 4년제 198개 사립대학의 올해 예산 수입을 분석한 결과, 재학생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61.7%에 달했다. 학교 재정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이들 대학 가운데 등록금 의존율이 90%에 달하는 대학도 있었다.
각 대학은 현재 등록금 분할 납부, 어학연수 비용 부담 등 지원책을 꺼내 들면서 '재학생 붙들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휴학생 수는 줄지 않고 있다. 한 국립대학 재정기획팀 관계자는 "휴학생이 늘면서 학생들이 내는 기성회비가 작년보다 올해 18억원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채창균 센터장은 "휴학생이 하나의 계층으로 형성되는 나라는 전 세계에 한국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