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빈) 리홍규
베란다를 정리하며
구석에 놓인 박스 하나 열었더니
사과향기가 물씬 코를 찔렀다
박스에 살던 사과들의 향기가
아직 남아있는 모양이구나, 하며
또 하나의 박스를 열어보니 이번엔
슴슴한 향기조차 맡을수 없다
역시 과일박스였는데..., 중얼거리며
방금전의 그 박스를 다시 열어보니
향기는 여전히 뭉클하다
웬 영문일까 하얀 포장지들을 걷어내니
밑바닥에 사과 한알 남아있었다
더는 탱탱하지 않지만 아직
홍조가 희미하게 어려 있는
사과 한알 가만히 만져보는데
손끝에 전해오는 이름 못할 감촉
속살이 바야흐로 썩고 있었다
바야흐로
바야흐로 속살을 무너뜨리면서
홀로 불타오르면서
하늘빛 향기가 뭉클 뭉클 타래쳐오르면서
술래잡기 하다 잊혀진 아이처럼 울컥 울것만 같다
내가 바로 그 술래였던것처럼 나도 그만 울컥 울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