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귀가하던 여성을 납치해 성폭행한 범인이 현장에 남긴 담배꽁초 때문에 4년여 만에 붙잡혔다.
전북 전주에 사는 ㄱ씨(26·여)는 2009년 5월29일 밤 귀가 중이었다. 인적이 드문 심야 시간이라 ㄱ씨는 발길을 재촉했다. 인도를 걷던 ㄱ씨는 자신 뒤에 한 남자가, 차도엔 승용차 한 대가 저속으로 따라오는 것을 느꼈다. 겁에 질린 ㄱ씨는 골목길로 접어들면서 달리려 했지만 그 순간 뒤따르던 남자가 흉기를 들이댔다. 이어 또 다른 남자가 차에서 내리더니 ㄱ씨를 승용차에 강제로 태웠다. 이들은 ㄱ씨를 3㎞여 떨어진 공사장으로 끌고 갔다. 이들은 ㄱ씨를 협박해 카드와 통장을 빼앗고, 한 명은 성폭행까지 했다.
ㄱ씨의 신고로 수사에 나선 경찰은 현장에서 이들이 버린 것으로 보이는 담배꽁초를 발견했다. 곧바로 이들의 유전자(DNA)를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으나 일치하는 DNA를 찾지 못했다.
그로부터 4년 뒤 사건을 맡았던 전주 덕진경찰서로 목포교도소에 수감 중인 최모씨(31)의 유전자와 담배꽁초에서 나온 유전자가 일치한다는 통보가 전해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전국 교도소 수감자 등의 유전자를 모아둔 'DNA 은행'에서 최씨의 유전자를 찾아낸 것이다. 당시 ㄱ씨의 가방을 빼앗았던 최씨는 지난해 11월 인질 강도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었다. 경찰은 최씨로부터 범행사실을 자백받았다. 경찰은 ㄱ씨를 성폭행한 이모씨(31)를 수소문했으나 이씨는 지난해 1월 생활고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경찰에서 "나는 가방만 빼앗았고, 성폭행은 숨진 이씨가 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25일 최씨를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관계자는 "성폭행을 사망한 이씨가 했더라도, 최씨도 현장에서 위협적인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에 강간혐의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