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인 최초로 심청 연기하는 中 발레리나 팡멍잉
[동아일보]
“속눈썹 뗄까요? 떼면 안 예쁘나? 어쩌지….”
8일 오전 서울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 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난 발레리나 팡멍잉(方夢穎·23)은 인터뷰보다 사진을 어떻게 찍을지 고민이었다. 연습실 전면 거울에 찰싹 달라붙어 인조속눈썹을 뗐다 붙였다 하면서.
9∼12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되는 유니버설발레단(UBT) ‘심청’에서 그는 심청을 연기한다. 1986년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외국인 발레리노가 남자 주인공을 맡은 적은 있어도 외국인 발레리나가 여자 주인공 심청에 낙점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열 살 때 중국의 유명 무용학교인 베이징무도학원에 영재로 입학해 2006년 베이징 국제발레콩쿠르 1등상을 탔다. 이듬해 유니버설발레 유병현 예술감독의 권유로 UBT에 둥지를 틀었다.
중국 허난 성 출신인 그가 이번 심청에 발탁된 이유는 뭘까. 그가 건너편 거울을 힐끔 보더니 재빠르게 얼굴을 체크했다. “예뻐서 뽑힌 거 같아요(웃음). 다른 무용수보다 얼굴이 작고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어서 뽑힌 거 아닐까요.”
그가 졸업한 베이징무도학원은 3번 척추부터 엉덩이까지의 길이보다 엉덩이 아래쪽부터 발뒤꿈치까지의 길이가 10cm 더 길어야 입학할 수 있는 곳이다. 문훈숙 단장은 “심청은 연기가 중요한 서정적인 작품인데 팡멍잉은 스토리텔링이 뛰어난 데다 심청의 서정성과 어울리는 처연한 몸 라인을 갖췄다”고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4월 ‘백조의 호수’ 공연의 백조 오데트에 이어 주연은 이번이 두 번째. 입단한 지 6년 차라 발레단에선 나름 고참이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 궂은일도 많았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님을 따라 강의 시연을 비롯해 조그만 행사에 많이 나갔어요. 2009년 ‘라 바야데르’에서 군무와 솔리스트 배역을 함께 맡았을 땐 발톱이 다 빠졌죠. 지금은 발톱이 두껍게 나서 발이 미워졌어요.” 그는 평소에 토슈즈가 불편해도 뒤꿈치만 느슨하게 하고 발가락은 꼭 가린다고.
중국인 심청이 낯설 수 있겠지만 팡멍잉은 사실 심청을 많이 닮았다. 무남독녀 외동딸로 중국에 계신 부모님이 그리워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를 드린다. 게다가 나이도 10대 소녀인 심청에 가장 가깝다. 함께 심청 역으로 발탁된 강예나 황혜민 김나은은 모두 30대의 수석무용수인 반면 팡멍잉은 아직 솔리스트다.
“1막에서 인당수에 떨어지는 연기를 할 때마다 아빠 생각이 나요. ‘심청’은 드라마 발레라 표정연기가 중요한데 보고 싶은 부모님 생각을 하면 슬프고 애절한 심청에게 감정이입이 잘돼요. 감정연기는 자신 있어요.”
그가 중국 발레계의 러브콜을 거절하고 한국행을 택했을 땐 부모님의 반대가 격렬했다고 한다. 한국 발레의 매력에 대해 물으니 그의 눈이 반짝였다. “국제콩쿠르에서 뛰어난 한국 학생을 많이 봤어요. 중국 발레는 예쁜 외모가 중요하지만 한국 발레는 외모에 포즈, 감정, 테크닉 모두 뛰어나야 해요. 또 나 하나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잘해야 한다는 문화라서 협동심도 배웠고요.”
그는 11일 오후 3시 무대에 선다. “떨리지 않냐”고 물으니 그가 해맑게 웃었다. “전혀요. 아버지를 위해 전쟁터에 나간 중국 소녀 뮬란이 아니라 눈먼 아버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진짜 심청이 될 거예요.” 1만∼10만 원. 02-2280-4114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