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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품고 사니 내가 산이 됩니다

[기타] | 발행시간: 2013.05.23일 15:25

[한겨레] [esc]살고 싶은 집

57년 서울 생활 청산하고 충북 옥천에 새 둥지 튼 한의사 고은광순의 힐링하우스

이 집의 ‘문제작’은 2층 다락이다

양쪽으로 창을 만들어

원없이 산과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다

불빛을 버리고 별빛을 선택했다. 한의사 고은광순(58·솔빛한의원) 원장은 “밤이 얼마나 고요하고 아름다운지 몰라요. 별도 있고요, 초승달도 있고요, 보름달도 있지요” 하며 소음과 네온사인에 시달리는 ‘서울 사람’을 약올렸다.

지난 18일 오전,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 삼방리에 자리잡은 그의 집을 찾았다. 옥천역에서 40분간 차로 달리면 최근 완공한 삼방리 저수지가 나온다. 그 푸른 물을 굽어보고 서 있는 ‘언덕 위의 하얀 집’이 바로 고은 원장의 새 삶터다.

그는 지난해 10월 이곳에 나무집을 완성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지 57년 만에 손수 도면을 그려가며 지은 집이다. 한의원과 살림집을 합치되, 소박하게 지으려 했다.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배려해 방을 많이 만들고, 전망이 최고로 좋은 곳엔 명상 치유방을 만들 것 등 몇가지 원칙만 세웠다.

“이 집을 방문하는 누구나 마음의 평안을 갖고 가길 바랐어요. 실제로 짓고 나니 그렇게 느낀다는 분들도 많구요.”

마음이 물질을 만든다더니, 첫 삽을 뜨고 난 뒤 다섯달 만에 꿈꿔온 바로 그 집이 눈앞에 들어섰다. 500평 땅에 집 건평은 40평 남짓. 한의원 20평, 살림집 20평으로 꾸며 그 사이엔 나뭇결이 예쁜 여닫이문을 달았다. 그가 소원하던 ‘명상 치유방’ 겸 거실에 들어서면, 창 너머 저수지의 푸른 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더 멀리엔 연꽃 같은 산봉우리들이 오종종하게 서 있고, 현관 옆 창밖에도 산허리 푸른 풍경이 펼쳐진다. 마루 어디 앉더라도 산과 들과 물과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지난달까지 집 주변이 온통 꽃천지여서 마치 무릉도원 같았다”고 한다. 집 뒤쪽 언덕배기에선 5월 이팝나무꽃 향기가 은은히 밀려왔다.

현관 맞은편 문 건너엔 부엌 겸 작업실이 나온다. 책상 위 붙박이 책꽂이엔 수백권의 책과 몇장의 사진이 놓여 있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권하며 새 세상에 대한 열정과 꿈을 불어넣어준 고 리영희 선생이 활짝 웃고 있는 사진과 2011년 세상을 떠난 어머니 사진도 가장 보기 좋은 곳에 자리잡았다. 그 아래서 고은 원장은 재봉틀을 돌려가며 “주경야침”을 한다. 웬만한 옷은 사지 않고, 필요하면 직접 만들어 입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집의 또다른 ‘문제작’은 2층 다락이다. 하얀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열댓명은 너끈히 누워 쉴 수 있는 큰 공간이 나온다. 양쪽으로 창을 만들어 원없이 산과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다. 창이 많아 좋지만, 문제는 겨울이었다. 산속이라 눈과 추위가 큰 난제이던 터, 무쇠난로를 들여놓고 바닥에는 전기로 쓰는 난방필름을 깔았다. 그나마 부분난방을 가능하게 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었다.

뒷마당엔 별채도 지었다. 미국에 사는 언니들이나 지인들이 와서 맘껏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싱크대와 화장실, 다락을 함께 넣었다. 집 뒷마당 가장자리는 10여마리 닭들의 천국이다. 아침에 닭장문을 열어두면 녀석들은 홰를 치며 기우뚱기우뚱 나온다. 집 근처 언덕 그늘에 가서 뭘 하는지도 모른다. “닭들이 어찌나 영리한지, 저녁때가 되면 바깥 짐승 무서운 줄 알아서 다들 집으로 찾아 들어온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커다란 까마귀가 닭장을 쳐다보고 있길래 방해 않고 놔두었더니 달걀이 4개에서 1개로 줄어 있더란다. 아마도 그놈들의 ‘소행’이라 생각하고 있다.

“닭 수명은 원래 30년 정도인데 그거 아는 사람 많지 않아요. 요즘은 알을 품는 닭도 별로 없어요. 우리집 닭들은 알을 품고 부화하는 게 자연스러워요. 오늘도 햇병아리들이 좀 보이던데.”

자연 속에서 완성된 풍경은 지극히 평온하고 아름답지만, 집 지을 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목수에게 집을 통째로 맡긴 게 아니라서 일일이 직접 해결했다.

“건축은 예상 밖의 변수가 많이 생기더라구요. 저는 직접 캐나다에서 집 지을 가문비나무를 수입하고 집 지을 때도 일당으로 비용을 지불해 그런지 기간이 사정없이 늘어났어요. 집을 지으려면 믿을 만한 목수에게 맡겨 한꺼번에 도급을 줘야 하는데, 그걸 몰랐죠.”

도급으로 일을 주면 정해진 기간 안에 애초 예상했던 가격과 비슷하게 집을 지을 수 있지만, 일당으로 계산했기 때문에 공사 기간이 늘고 비용도 곱절로 들었다. 첫 목수가 사정상 그만두게 돼 사람을 바꾸고, 한번 들어올 때마다 돈이 드는 포클레인도 생각보다 몇배는 더 많이 들락날락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산골이라 전기를 들여올 때 전봇대 비용도 따로 댔고, 인터넷과 전화선을 매달 기둥은 전봇대 옆에 또 따로 세워야 했다. 물을 끌어올리는 관정은 200m를 파고 들어갔다. 비슷한 동네 다른 집은 20~30m만 파면 물이 나왔지만 이 집은 암반이 있었던 것이다. “암반수라서 물맛은 어찌나 좋은지 몰라요. 물 끓일 필요도 없고 얼마나 속이 다 시원한지.” 수도를 콸콸 틀면서 그가 말했다.

고은씨는 ‘사회적 한의사’로 이름 높다. 이화여대 재학 때 긴급조치 9호 철폐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하다 제적당해 다시 한의대에 들어갔다. 1990년 서울 강남 신사동에 한의원을 열었고, 몇년 뒤 양재동으로 옮겨 2010년까지 운영했다. 그동안 약사법 분쟁에 뛰어들고, 호주제 폐지 운동을 비롯한 여성운동에도 앞장섰다. 병든 사람 몸뿐 아니라 사회의 병까지 고치는 ‘거리의 한의사’가 되었다. 실은 사람의 병보다 사회의 질병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러던 2008년 8월 지인의 소개로 명상모임에 참여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어 작심하고 충청남도 계룡면으로 이주했다. 두 아들과 남편은 서울에 두고, 치매로 몸져누운 어머니와 14년을 함께 살았던 강아지 ‘캔디’를 데리고 시골로 왔다. 서울과 동떨어진 그곳에서 어머니도, 캔디도, 함께 명상을 하던 지인도 떠나보냈다. 한꺼번에 인생의 큰 고비를 넘긴 셈이다.

혼자 살면 외롭지 않냐지만, 그럴 틈도 없다. 지난해 삼방리 집을 지어 이사온 뒤에는 ‘동네 사람’으로 잘 어울려살았다. 할머니들을 찾아다니며 건강을 돌봤고, 마을 아이들을 데리고 명상도 가르쳤다. “아이들을 만날 때 간식으로 식빵·계피빵·케이크를 구워 가는데, 요즘은 아이들이 치즈케이크에 맛을 들렸다”고 했다. 이 아이들은 얼마 전 ‘전국 짝짜꿍 동요제’ 참가 자격을 놓고 경합하는 ‘옥천 동요제’에 나가 장려상을 받았다.

“일정을 잘못 알아서 딱 두번 연습하고 부리나케 준비해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천사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노래를 불렀어요. 얼마나 재미있어하던지…. 부모들은 명상을 하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자존감이 높아졌다고 해요.”

요즘은 집 근처 스트로베일하우스(짚버무리집)를 짓고 사는 화가 지인에게 식물 세밀화를 배운다. 명상음악을 틀어놓고 잔잔한 미소로 사람을 다독거리는 모습을 볼 때면 그가 벼락같이 불평등의 문제를 꾸짖던 ‘전사’가 맞나 싶을 정도다. 남들 보기엔 전광석화 같은 변화일 수 있지만, 실은 긴긴 폭풍의 나날을 보내고 얻은 ‘평화의 집’이다. 대전이나 서울에서 침을 맞으러 일부러 찾는 이들이 있을 만큼 그의 집은 벌써부터 ‘힐링 하우스’로 지역의 명소가 돼가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며 그는 말했다.

“집 짓는 데 예산의 두배가 들긴 했지만, 서울 아파트 전셋값 정도예요. 도시에서 복닥거리며 살지 말고 산촌에서 태산을 품고 살아보세요. 휘둘리지 않고,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큰 산, 우리 모두 그런 산이 될 수 있습니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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