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협정 협상서 “원전 저장시설 지어 보관” 요구
“포화상태 문제 해결… 재처리 대신 美 방식 따라야”
저장시설 내구 연한 100년 불과해 美서도 비판 제기
미국이 한국과의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에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대신 이를 원자력발전소(원전) 부지에 저장시설을 지어 건식으로 보관하는 방식을 제안한 것으로 5일(현지시간) 확인됐다.
이번 협상에서 핵심 쟁점인 재처리 문제에 대해 미국은 한국 측이 기대하는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미국이 사용후 연료봉을 처리하는 방식대로 건식 저장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한국 측에 분명히 전달했다.
워싱턴 고위 외교소식통은 이날 “지난 4월 워싱턴에서 열린 6차 협상과 지난 3∼4일 서울에서 열린 7차 협상에서 재처리 문제에 대한 미국 입장은 확고했다”면서 “사용후 연료봉을 건식 재처리할 것이 아니라 그대로 건식으로 저장하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한·미 양국은 박노벽 원자력협정 협상 전담대사와 토머스 컨트리맨 미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담당 차관보가 수석대표로 참석한 가운데 협상했다.
협상 내용에 정통한 이 소식통은 “(미국 측이) 지구상에 사용후 연료봉을 모두 재처리하는 나라가 없고, 미국도 원전에 건식 저장시설을 만들어 쌓아두고 있다”면서 “사용후 연료봉을 재처리하는 것은 상업적으로 이득이 없기 때문에 한국도 미국 방식을 그대로 따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파이로프로세싱은 한·미 양국이 2020년까지 연구를 계속할 계획인 데다 성공 여부를 향후 7년 후에 알 수 있어 이것으로 재처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미국 측의 확고한 입장이다.
이 소식통은 “한국 정부는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이 2016년 포화상태에 이르기 때문에 이를 재처리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한국이 이를 수조에 넣어두는 습식 저장에 이어 건식 저장 방식을 택하면 포화상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미국 측이 강조했다”고 전했다.
미국은 1957년부터 상업용 원전을 가동하기 시작했고, 엄청난 고열을 내뿜는 사용후 연료봉을 일단 냉각 수조에 보관하다가 30년 정도 지난 뒤 열기가 식으면 영구 저장시설로 옮겨야 했다. 하지만 이런 시설을 짓지 못해 1985년부터 원전 구내에 지은 지상 6m 높이의 건식 저장소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건식 저장시설은 내구 연한이 길어야 100년 정도에 불과해 반감기가 수천년인 사용후 연료봉을 담아두기는 부적절하다. 또 저장시설이 테러공격을 받으면 ‘방사능 폭탄’(dirty bomb)과 같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이유로 미국에서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아직까지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