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軍고위간부 "북한보다 한국과 국경 맞대는게 좋다"]
"北·中조약개정… 한국과도 동등한 수준 체결해야"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 기정사실화 하자는 기류도
'북한은 中의 완충지대' 라는 한반도 정책에 변화 조짐
中·北관계 달라지고 있으니 韓·美관계 수정하라는 의미도
중국 공산당과 정부 내에서 북한을 혈맹이 아닌 '부채'로 여기는 기류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군부 일각에서도 북·중 우호조약(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하고 남북한과 동등한 수준의 방위조약을 각각 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한 의원은 12일 "최근 중국을 방문한 한국군 고위 관계자로부터 '중국군 고위 간부가 지금은 (상호방위)조약이 북한에 편중돼 있는데 한국과도 동등한 조약을 맺는 것이 맞는다는 말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중국 육군을 책임지고 있는 이 중국군 고위 간부는 '북한보다 남한과 국경을 마주하는 게 좋다'며 남한 주도의 통일을 사실상 인정하고 기정사실화하는 말까지 했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군 내부에서 이런 얘기가 몇 년 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며 "북·중 우호조약을 수정하고 이와 동등한 수준의 조약을 한국과도 맺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내에서 남북한을 점차 등거리로 보려는 시각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지난달 말 여야 의원들이 중국 공산당 초청으로 베이징(北京) 충칭(重慶) 등을 방문했을 때 중국 측 인사들은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특수한 관계가 아닌 일반적 관계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북한은 반성해야 한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아 우리 의원들을 놀라게 했다.
중국의 대북(對北) 태도 및 한반도 전략 변화는 북한이 중국의 권고를 거부하고 계속 핵 국가의 길로 치닫고 있는 상황을 배경에 깔고 있다. G2 국가로서 위상이 높아진 중국이 미국과 협력을 강조하는 '새로운 강대국 관계'를 맺기 위해선 대북 노선 수정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셈이다.
◇중, '3불 1무'원칙의 변화
그동안 중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은 전쟁 방지, 북한의 혼란 방지, 한국에 의한 통일 저지, 비핵화라는 '3불(不) 1무(無)' 원칙을 근간으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북한이 중국의 완충 지대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론'도 정설처럼 돼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중국 현대화에 도움이 별로 안 되는 북한 현실을 고려해 볼 때 한국 주도에 의한 한반도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중국 내에서 공개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지난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의 대북 태도 변화는 더욱 근본적이고 강도(强度)가 높아졌다. 중국은 산하 정부 기관에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 준수 통지문’을 보내고 일부 은행의 북한 계좌를 동결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7일 첫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북핵 불용’을 중요한 합의 사항으로 발표했다. 미 뉴욕타임스는 지난 10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북한 핵 보유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이런 입장은 북한 핵이 중국의 중대한 전략적 이익을 손상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은 장기적으로 한반도를 자기들에게 우호적인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선 ‘한국에 의한 통일 저지’원칙을 재검토할 수도 있다는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군의 뿌리 깊은 대북(對北) 불신도 중국의 태도 변화와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6·25전쟁 때 막대한 인명 피해를 감수하면서 북한을 지원했지만 북한은 주체사상이 부각된 이후 중국군의 지원을 무시하는 태도를 취해 불만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군 고위직을 지낸 한 국방위 소속 여당 의원은 “중국군은 북한의 배은망덕에 대해 큰 불만을 가져온 반면 과거를 인정하며 미래 지향적 태도를 취해온 한국군에 대해선 반감이 적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대미(對美) 전략 차원에서 한국과 방위조약 체결을 검토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의 대미 군사 전략은‘A2AD’로 요약된다. ‘반(反)접근/지역 거부(Anti-Access/Area-Denial)’의 약어로 아·태 지역에서 미군의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고 중국군 활동 영역을 단계적으로 넓히겠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필리핀, 호주 등 태평양 5개국과 중앙아시아의 타지키스탄, 인도 등을 연결해 중국을 봉쇄하겠다는 전략이다. 한·미·일 3각 안보 동맹 추진도 그중 하나다. 중국이 한국과 방위조약을 체결해 안보 측면에서도 한국을 중국 쪽으로 끌어당긴다면 한·미·일 안보 협력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박승준 인천대 초빙교수는 “중국 입장에선 정식 수교국인 한국을 한·미·일 안보 동맹 틀 속에 내팽개쳐두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우리도 북한과 거리를 둘 테니 한국도 미국과 거리를 두라’는 식으로 한·미 동맹 수정을 한국에 주문하고 싶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주한 미군 주둔으로 상징되는 한·미 안보 동맹 등 때문에 중국군 내부의 이런 기류가 가까운 시일 안에 현실화되기는 어렵다. 한국이 중국과 군사조약을 맺으면 미국과 맺고 있는 안보 동맹 수정이 불가피하고 그런 상황을 현재 미국이나 한국 정부가 원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북·중 우호조약
정식 명칭은 조·중 우호협력 상호원조 조약으로 1961년 7월 11일 체결됐다. 한쪽이 무력 침공을 당하면 상대방이 지체 없이 군사 원조를 제공한다는 조항(2조)이 포함돼 있다. 2011년 조약 체결 50주년을 맞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축전을 주고받았다.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김봉기 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