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선전하는 한국 작가들]
세밀하게 손 많이간 그림 선호
홍경택 '연필Ⅰ' 9억여원 낙찰, 강렬한 인물화 그리는 강형구, '청바지 작가' 최소영도 인기
덩달아 국내서도 몸값 상승… '팔리는 작품'만 양산 우려도
지난 5월 26일 홍콩 크리스티 '아시아 20세기 현대미술' 이브닝 세일(고가 미술품 경매). 홍경택(45)의 유화 '연필Ⅰ'이 663만HKD(약 9억8400만원·이하 수수료 포함)에 팔리며 홍콩 크리스티 역대 한국 작가 낙찰작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 작품은 지난 2007년 5월 경매 때도 한국 작가 작품 최고가(648만HKD·당시 약 7억8000만원)에 팔렸다. 홍경택은 국내보다는 홍콩에서 더 인지도가 높은 작가. 배혜경 크리스티 한국사무소장은 "홍경택은 명실공히 '홍콩의 스타'다. 이미 한 번 최고가에 팔렸던 작품이라 작품 값이 떨어질까 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의외로 전화 입찰이 많이 들어왔다"고 했다.
◇중국의 '취향'을 잡아라
홍경택, 강형구(58), 김동유(48), 최영걸(45), 최소영(33)…. 홍콩 크리스티가 주목한 덕에 덩달아 국내 시장에서 몸값이 오른 작가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중국 미술시장의 취향'에 부응한다는 것. 홍콩 경매시장을 좌지우지하는 화교(華僑) 컬렉터들이 이들의 작품에 크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최영걸이다. 바늘처럼 가느다란 붓으로 그리는 그의 수묵 풍경화는 매우 사실적. 오히려 한국 컬렉터 중에는 이질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홍콩에선 "중국에선 문화대혁명 이후 맥이 끊긴 송(宋)대 사실주의 화풍을 재현했다"며 환영받는다. 2005년 11월 홍콩 크리스티에 낸 첫 작품이 추정가 두 배가 넘는 가격에 팔리면서 그는 고교 미술 교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들어섰다.
강렬한 눈빛의 극사실적 인물화를 그리는 강형구도 국내 시장보다는 홍콩에서 인기가 높다. 큐레이터 김지연씨는 "우리나라에선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인물화를 집에 잘 들여놓지 않지만, 인물화 전통이 강한 중국은 사정이 다르다. 특히 강형구처럼 파워풀한 작품이 인기를 끈다"고 했다. 강형구 작품 '녹색의 먼로'는 이번 경매에서 147만HKD(약 2억1800만원)에 팔렸다.
◇섬세한 손맛과 명확한 이미지가 관건
추상이나 개념보다는 섬세한 손맛과 명확한 이미지.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인기를 끄는 한국 작품들의 특징이다.
'청바지 작가' 최소영은 손이 많이 간 작품으로 인상을 강하게 각인시켰다. 부산 동의대 출신인 그는 청바지 조각을 캔버스에 일일이 꿰매 풍경화를 만들어낸다. 데님 천의 거친 질감은 물론이고 지퍼와 호주머니, 상표까지 작품의 일부로 흡수된다. 공을 많이 들인 제작 과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업. 이번 경매에선 작품 '부산 영도 다리'가 추정가 최고치의 3배인 135만HKD(약 2억원)에 팔렸다. 최소영은 2004년 10월부터 꾸준히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 초대받으며 '완판 행진'을 이어갔다. 크리스티 측은 "워낙 잘 팔리기 때문에 경매에 나갈 작품을 모으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홍경택·강형구·김동유의 강점도 강렬함과 깔끔한 마감 처리다. 박혜경 에이트인스티튜트 대표는 "연필을 그리는 작가들은 많지만 홍경택의 '연필'이 비싸게 팔리는 것은 빛살처럼 쏟아지는 색채의 미감(美感) 덕이다. 그만큼 스케일이 크면서 아름다운 색감을 보이는 작가도 흔치 않다"고 했다.
우리 작가들이 해외시장에서 인정받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홍콩 크리스티 인기작가=흥행 보증'이라는 공식에 우려를 나타내는 시선도 있다. 소위 '추격 매수'로 만들어진 거품은 언젠가 사그라진다는 것이다. 김순응 아트컴퍼니 대표는 "해외 컬렉터 취향에 맞춘 작품만 양산되다가 한국 미술의 '색채'가 사라지면 결국 미술시장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이어져 한국 미술품 전반의 값을 떨어뜨리게 된다"고 했다.
[곽아람 기자]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