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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24]연변의 발파왕 한명구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1.11.28일 10:20
특별기획: 중국조선족기업인[24]


전국적으로도 알아주는 발파전문회사로 기업을 키우고 싶습니다

한명구, 남, 1953년 7월생, 공산당원


연길시력통발파공정유한책임회사 총경리


연변주정협 11기위원회 위원


중국공정발파협회리사(유일한 조선족)


길림성발파협회상무리사




연변의 산천경개를 넘나드는 허다한 철도와 도로 및 하루가 다르게 우후죽순마냥 일떠서고있는 도시의 건축물 등의 순조로운 공사진행을 위해 앞에서 먼저 정상적인 작업준비를 위한 일로 분주한 사람이 있다.


바로 연길시력통발파공정유한책임회사 총경리 한명구이다. 한명구총경리가 연변의 허다한 토목공사들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는 그와 그의 회사를 상세히 소개할 필요가 있다.


한명구는 1971년도에 참군한후 23년간이나 군인생활을 해온 전업군인이였다. 군복무기간 한명구는 3등공을 3차나 세웠으며 여러차 성군구와 사, 퇀, 그리고 부대 주둔지 정부의 우수공산당원, 뢰봉학습표병, 쌍옹모범 등 영예를 받아 안았다.

1982년 한명구는 부대의 선발추천을 받아 중국인민해방군서주공정학원에 가서 발파기술을 학습할 기회를 가지게 되였다. 공부하는 기간 한명구는 자기에게 차례진 학습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면서 밤낮이 따로없인 열심히 발파기술을 련마했으며 자기의 발파리론과 기술수준을 부단히 제고시키기 위해 애썼다.


한명구가 발파령역에서 소문을 내게 된것은 지난 1990년대초, 룡정시에서 변경도로를 건설할 때부터였다. 당시 룡정시무장부에 근무하면서 연변예비역사 포병퇀 후근처 처장으로 일하고있던 한명구는 룡정시에서 변경도로를 건설하면서 애로에 봉착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변경도로 시공을 시작한지 석달이나 되는데 길을 뚫어야 할 암석단을 단 1메터도 제거하지 못한것이다. 길을 빼는 곳이 이국과 강 하나만을 사이에 둔 변경지역이라 폭파위험이 존재하고 폭파로 인한 국제분쟁까지 우려되는 곳이여서 전문발파일군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던것이다.

당시 사정이 몹시 긴박하고 어려웠던 까닭에 당지 교통국에서 국장이 직접 부대를 찾아와 한명구에게 도움을 부탁했다. 한명구가 군에서 발파기술을 장악한 발파명수라는 소문을 미리 료해했기때문이였다.


부대에서도 지방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적극적인 태도로 한명구에게 모든 부대일을 제쳐놓고 지방의 어렵고 절박한 발파임무를 해결하도록 지시했다. 군인정신으로 무장되여있던 한명구는 곧 명령을 받들고 발파현장에 달려가 자세한 측량과 계산을 거친후 준확한 발파설계안을 내왔으며 설계대로 발파가 잘돼 지방정부의 고도로되는 긍정을 받았다.


첫번째 발파에서 한명구의 발파기술을 보아낸 룡정시 해당부문에서는 아예 변강도로 전 구간의 발파임무를 몽땅 한명구에게 부탁했다. 시의 주요지도일군까지 직접 동원되여 부대에 사정하는 바람에 퇀장의 동의하에 한명구는 다시 정식으로 발파대오를 거느리고 발파현지에 장막을 쳤다.

그때가 바로 1991년 6월이였다. 그해 년말까지 한명구는 도로건설이 마무리될때까지 발파현지에서 풍찬로숙하면서 변경도로건설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이듬해 백금-삼합구간 변경도로 건설이 시작되자 한명구는 또 지시를 받들고 지방건설을 도왔으며 전반 변경도로건설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큰 기여를 했다. 지방정부에서 수고했다고 살림집 한채까지 장려할 정도였다.

1992년 룡정변경도로 발파작업 현장 바로 옆에 흐르는 강이 국경을 사이한 두만강이다

부대에 있을 때 한명구(좌측 두번째)씨는 변경도로 발파작업현장에서 붙어 살았다


90년대초의 3년간 한명구는 도문-백금 변강도로건설과 룡정-삼합 통관도로 건설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밤낮이 따로없이 발파현장에서 사업했으며 그때 지방건설을 위해 적극적으로 뛰여다니던때가 인생에서 가장 큰 보람과 의의가 있었다고 지금도 감개무량해하군 한다.


1993년 한명구는 전역한후 연변주인사국 전역군인판공실에 배치받아 연변전역군인발파공정회사를 세웠으며 이로 인해 심양군구로부터 《표현이 돌출한 전역간부》로 통보표창을 받았다.


1998년 중앙의 《기업과 당정기관을 탈리시킬데 관한 유관 문건정신》에 따라 한명구는 새로운 민영기업인 연길시력통발파공정유한책임회사를 세웠다. 대담히 철밥통을 버리고 창업의 길에 나선것이다.


민영기업으로 된후 한명구총경리는 군사기술발파라는 기술적인 특장을 내세우면서 자신의 탄탄한 발파기술실력과 다년간 쌓아온 기업경영 경험으로 기업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간고하게 창업하면서 부단히 발전장대해졌다.


한명구총경리는 줄곧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자료, 선진적인 설비의 인입과 리용을 주장하는데 틈만 나면 종업원들에게 발파 및 설비조작기술을 강습시켰으며 수시로 국외에 나가 선진적인 경험과 기술들을 고찰, 학습하게 했다.

현재 연길시력통발파기술유한회사는 본지역 발파기업가운데서 수속이 가장 구전하고 전문기술인재가 제일 집중됐으며 각종 전문기술설비가 가장 선진적인 전문발파기업으로 업계와 사회의 한결 같은 인정을 받고있다.


세계경제위기가 닥치기 전인 지난 2008년 한명구총경리는 청도에서 열린 중국발파협회 대표대회에 참가했다가 국가 야금부 해당지도일군의 연설을 듣게 되였다. 지도일군은 세계경제위기의 새로운 형세하에서 우리 나라가 향후 기초시설건설에 큰 힘을 기울일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초시설건설이 중시되면 그만큼 공정량도 많아지게 되고 공정량이 많게 되면 발파작업도 많아질것이라는 판단이 서자 발파기업발전에 신심이 생겼다.

그러나 발파작업이 많아질것이라는 판단이 섰다고해도 모든 일이 다 내게로 차례진다는 보장은 없다. 남보다 더 우월한 기술력과 선진적인 장비가 있어야 모든 발파일거리들을 따낼수있기때문이다.


더는 미물수없다고 생각한 한명구총경리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나가 선진적인 공정설비를 구입해들여왔는데 발파공정능력이 원래의 년간 30만평방메터로부터 일약 150만평방메터로 제고됐다.


아니나 다를가, 곧이어 허다한 기초시설공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작됐다. 업계에서도 가장 선진적인 기술력과 장비를 갖춘 한명구총경리에게 더 많은 일거리가 차례지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준비하고있는 사람은 항상 기회가 차례졌을 때 놓치지 않게 되는 법이다.


회사가 설립된 이래 한명구총경리는 참으로 많은 발파공정들을 완수하였는데 이를 테면 연길담배공장 2호차간, 원도문시 시당위 청사, 도문고무공장, 왕청현빈관, 왕청철물공사 등 건물들의 발파철수공사는 물론 연길시해란호골프장, 중조변경도로건설과 본지역 고속도로, 1,2급도로건설과 동북동부철도건설 등 대형공정들의 발파임무도 원만히 완수하여 량호한 사회적, 경제적 효과를 거두었다.

왕청현빈관 철수 발파현장

철도와 겨우 20메터 거리밖에 안돼 고도의 발파기술이 필요했던 안도현 명월진 남쪽출구 발파작업현장


한명구 총경리는 기업경영에서 성공한후 사회공익사업에도 적극 뛰여들었다.


그동안 한명구총경리는 10여만원을 투자하여 룡정시 지신진 신동촌에 길이가 33메터이고 너비가 3메터인 농용 《편민다리》를 놓아주어 농민들의 나들이에 편리하게끔 했으며 신동촌 20여세대 농호들에 전화와 유선텔레비죤을 가설해주어 농민들의 문화생활에 이채를 돋구어주었다.

최근에는 또 연변소방지대 기능훈련연습중의 각종 폭발모의 시물레이션을 설계하고 지원해주고 있다.

한명구총경리가 룡정시 지신진 신동촌농민들을 위해 세워준《편민다리》


연변주정협 정협위원인 한명구총경리는 또 해마다 적어도 2건이상의 가치있는 정협제의안을 써서 당위정부에 군중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는데 올해에도 《룡정-삼합구간에 지역력사와 민속우세를 리용한 력사민속문화장랑을 건설할데 관한 제의안》을 제출하여 룡정시 관광 및 지역경제발전에 기여할 타산이다.


《발파전문회사는 한치의 오차도 허용할수 없습니다. 발파는 애들 장난이 아닙니다. 까딱 잘못하면 한방에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릴수도 있으니까요》한명구총경리의 발파작업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있는 말이다.


《연변을 벗어나 길림성 나아가 전국적으로도 알아주는 발파전문회사로 기업을 키워나가고 싶습니다》철저하고 빈틈없는 군인정신으로 무장된 한명구총경리의 솔직한 향후 타산이다.

편집/기자: [ 김성걸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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