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계 이민자가 많은 미국의 소도시에서 영어 간판 강제 규정을 놓고 인종차별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사태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파크 시의회가 조례를 고쳐 상점 앞 간판에 영어를 쓰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불거졌다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가 3일(현지시간) 전했다.
LA에서 동쪽으로 16㎞쯤 떨어진 소도시 몬터레이파크는 2010년 기준으로 아시아계 주민이 전체 인구의 67%를 차지하는 데다 이 중 대부분이 중국계다. 시의원 5명 중 4명이 중국식 성(姓)을 쓰는 사람일 정도로 중국계의 입김이 세다.
이들의 심기를 건드린 조례 개정안은 상점 간판에 A, B, C 같은 현대식 라틴 글자를 조금이라도 의무적으로 쓰도록 하고 있다. 현재 이 도시의 상점 간판 글자는 중국식 한자어가 많다. 이 때문에 긴급 출동한 경찰관과 소방관이 간판을 읽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는 게 조례 수정의 배경이다.
시의원들이 지난주 만장일치로 동의한 새 간판 조례는 정작 영어 단어를 쓰도록 한 기존 규정보다 느슨해진 것이다. 규정대로라면 지금까지는 ‘Store’처럼 완벽한 단어를 써야 했지만 앞으론 ‘R&B’처럼 다른 인종이 읽을 수 있게만 하면 된다. 하지만 애초 유명무실한 조항이었던 탓에 조례 수정은 중국계 주민의 반감을 촉발시키며 긁어 부스럼을 내는 부작용만 낳았다.
이 도시는 중국인 이민자가 급격히 몰려들던 1980년대에도 영어 간판 규정을 만들었다가 거센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중국계 시의원 한스 량은 “간판 글자는 여전히 민감하고 감정적인 문제”라며 “조례 제정보다 나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