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사회 > 사회일반
  • 작게
  • 원본
  • 크게

월 1000원 못 버는 공중전화 … 서울역 광장 30여 대서 거의 퇴출

[기타] | 발행시간: 2013.09.28일 07:09

사라지는 공중전화, 변신하는 공중전화

공중전화 옆에 은행 현금지급기를 설치해 전화 부스의 활용도를 높였다. [중앙포토]

지난 2일 늦은 오후 서울역 서쪽 출입구(옛 서부역). 매일 이맘때 여행장병라운지 부근 공중전화엔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날도 나란히 4대가 붙어 있는 전화부스에 군복 차림의 군인들이 길게 줄지어 섰다.

 “나 이제 부대로 들어간다. 가서 전화할게.”

 딸깍 전화가 끊어지면서 동전 반환구가 또르르 잔돈을 토해냈다. 닷새 휴가를 보내고 육군 25사단에 복귀하려던 장익진(20)씨는 쉽게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했다. 장씨에게 공중전화는 애틋한 존재다. 입대 직전 만난 여자친구와의 끈을 2년여 이어준 게 공중전화라고 했다. 하늘색 전화부스만 보면 여자친구 생각이 먼저 난단다.
한 층 위 전화부스에선 미국 시애틀에서 온 교포 피터 리(29)가 기차에 오르기 5분 전까지 수화기를 붙들고 서 있었다. 부산에 사는 단짝 친구의 사망 소식에 급히 귀국한 그에겐 공중전화가 휴대전화 대용이었다. 그는 “이렇게 휴대전화가 없고 위급한 상황에선 공중전화가 구세주”라고 말했다.


"주차공간 모자란다” 철거 요청도

사용하지 않는 전화 부스에 책을 채운 서울 금천구 호압사의 '풍경소리 도서관. [중앙포토] 1990년대 전화부스는 삐삐(무선호출기)에 찍힌 번호로 전화를 되걸려는 사람들로 늘 붐볐다. '국민의 전화'였다. 그랬던 공중전화가 휴대전화가 기하급수적으로 보급되면서 사라져가고 있다. 이용률이 저조해서다. 그나마 전화 수요가 많은 서울역에서도 광장 담벼락에 늘어서있던 30여 대가 8년 전부터 차례로 철거됐다. 한 달 사용액이 1000원에도 못 미치는 부스부터 없앴다. 이제 출입구 바로 앞에 2대뿐이다. 이 부스에는 은행 현금지급기(ATM)가 설치돼 있다. ATM에 돈을 찾으러 온 고객들에 의해 근근이 수익이 난다.

 역 안팎의 공중전화 이용률은 천차만별이다. 군인들이 주로 쓰는 옛 서부역의 공중전화는 지난 5월 최고 82만원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인접한 지하철 4호선 서울역 안에 있는 다른 공중전화는 월 수익이 3000원이다. 이 공중전화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이곳 유지보수 담당자는 “오갈 데 없는 노숙자들이 들어가 자거나 유리를 깨고 노상방뇨까지 해 훼손된 부스를 복구시키는 게 큰일”이라고 털어놨다.

 공간 확보를 위해 철거되기도 한다. 최근 서울 노원구의 인제대 상계백병원에선 응급의료센터 앞 공중전화가 모두 없어졌다. 병원 측이 “주차 공간이 협소하다”며 2대 다 철거해 달라고 KT 측에 요청해서다. 병원 정문 근처 전화부스들도 대리주차 사무실이 생기는 과정에서 절반 가량 철거돼 3대만 남았다. 노모가 4년 전 쓰러져 이 병원에 장기 입원 중이라는 김숙자(51)씨는 “응급실에 공중전화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며 정문까지 나가 줄 서서 전화했던 아찔한 기억이 있다”고 했다.

서울역 광장에 있던 30여 대의 공중전화는 8년 전부터 차례로 철거됐다. 사진은 철거 이전인 2003년 서울역 광장 전화 부스의 모습. [중앙포토]



공유지의 공중전화도 '흉물'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 올해 초 서울 지하철 1호선 석계역 광장의 공중전화는 철거 위기를 맞았다. 역을 관리하는 노원구청은 노점 상인들과의 마찰로 철거를 원했다. 한종찬 KT링커스 서울 강북지사 과장은 “구청이 강제 철거하겠다는 것을 역 유동인구의 사용률이 높다고 설득해 수차례 위치를 바꿔가며 겨우 존속시켰다”고 말했다. 한씨는 수락산 요양원에 머물던 80대 노인을 기억했다. 요양원에 하나뿐인 15년 된 공중전화가 노인에겐 유일한 통신 수단이었다. 그는 “요양원 측에서 쓸모없다고 해 철거했더니 이후 건물주가 자동판매기를 설치했더라”며 “그 노인이 어떻게 가족들과 연락했는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씁쓸하다”고 했다.

"통신 약자 위해 공중전화사업 유지”

 KT에 따르면 전국의 공중전화는 2009년 9만4000여 대에서 매년 급감해 현재 7만4000여 대로 추산된다. 서울엔 1만5400대로 그나마 가장 많이 남아 있다. 부산·대구·인천·광주광역시 등 일부 대도시에서만 3000대 이상 운영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측은 “첨단 통신기술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계층을 위한 보편적 역무로서 공중전화 사업을 유지하되 부스 재활용을 통해 새로운 이용가치를 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공중전화는 살아남기 위해 변신하고 있다. 일부 전화부스들은 첨단화되기 시작했다. 은행 현금지급기가 접목된 멀티형 부스가 대표적이다. 경인선과 경부선, 과천선, 안산선 등 수도권 주요 역사에 이미 보편화됐다. 낡은 옷을 벗고 도시 미관에 맞는 새로운 옷을 입고 재탄생하기도 한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의 공중전화는 3년 전 단순한 갈색 유리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서울 이태원 공중전화의 경우 진회색 외벽에 어느 아마추어의 그래피티 아트(낙서 예술)가 덧입혀져 이태원다운 감성을 갖췄다.

 동네 명물이 된 폐부스도 있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 광장에 가면 무인도서관 '책뜨락'으로 변신한 전화부스를 볼 수 있다. 성동구는 지난해 2월부터 폐부스에 책 200여 권을 채웠다. 주민들에게 도서를 자율 대여하고 있다. 서울 금천구에는 산책길 옆에 '산사도서관'이 있다. 서울 둘레길을 끼고 있는 호압사의 '풍경소리 도서관'이다. 이 역시 금천구가 지난해 6월 폐부스를 다시 꾸민 것이다. 서울 송파구에서도 이용률이 낮은 전화부스 8개 정도가 주민들의 도서관으로 쓰이고 있다.

 폐부스는 자전거 라이더들의 쉼터가 되기도 한다. 경기도 김포시 아라김포터미널에 위치한 부스엔 4대강 자전거도로를 종주한 라이더들을 위한 무인인증센터가 마련됐다. 군인들 바람막이 용도로 쓰도록 재활용한 군 초소형 부스도 있다.



이지은 기자 jelee@joongang.co.kr

중앙일보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여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 관련 태그 기사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4월 29일, 기자가 중국철도할빈국그룹유한회사(이하 '할빈철도'로 략칭)에서 입수한데 따르면 '5.1' 련휴 철도 운수기한은 4월 29일부터 5월 6일까지 도합 8일이다. 할빈철도는 이사이 연 301만명의 려객을 수송하고 일평균 37만 6000명의 려객을 수송해 동기대비 3.2%
1/3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브리트니 스피어스, 남친과 몸싸움 끝에 구급대 출동" 무슨 일?

"브리트니 스피어스, 남친과 몸싸움 끝에 구급대 출동" 무슨 일?

"브리트니 스피어스, 남친과 몸싸움 끝에 구급대 출동"[연합뉴스] 미국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42)가 호텔에서 남자친구와 몸싸움을 벌이다 가벼운 상처를 입어 구급대가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고 미 CNN 방송과 연예매체 페이지식스 등이 2일(현지시간) 전했다.

"5살때 母 교통사고, 얼굴 몰라" 선예, 안타까운 가정사 고백

"5살때 母 교통사고, 얼굴 몰라" 선예, 안타까운 가정사 고백

원더걸스 출신 선예가 자신의 가정사를 언급해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방송된 KBS2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시즌3' 에서는 2000년대를 강타한 걸그룹 '원더걸스' 출신 선예가 출연했다. 이날 선예는 자신의 가정사를 언급하며 할머니의 손에 자랐다고 해

"자식들이 날 돈으로 봐" 전원주, 금 10억원치 있지만 '마음은 공허'

"자식들이 날 돈으로 봐" 전원주, 금 10억원치 있지만 '마음은 공허'

재테크 고수로 알려져 있는 배우 전원주가 "가족들이 나를 돈으로만 보는 것 같아 속상하다"는 고민을 털어놔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2일 방송된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는 억대 자산가 국민 배우 전원주가 방문해 근황을 전했다. 이날 전원주는 오은영 박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