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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미식생활] 뒤섞임의 미학 그야말로 맛있는 짬뽕

[기타] | 발행시간: 2012.03.26일 15:19
[주간동아]

짬뽕은 일본어에서 온 말로 ‘뒤섞다’라는 뜻을 지닌다. 채소와 해물을 달달 볶다 소, 닭, 돼지 등의 뼈로 낸 육수를 더하고 여기에 면을 말아내는 음식이다. 여러 재료가 뒤섞였다는 뜻에서 짬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면 짬뽕이 일본음식인가. 아니다. 중국음식이다. 채소와 해물을 달달 볶으려면 중국 조리기구 웍이 필요하니 중국음식이 분명하다. 짬뽕이라는 이름 때문에 흔히 이 음식이 일본의 중국집에서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짬뽕 같은 조리법을 가진 음식이 중국에도 있다. 재료를 웍에서 볶다가 육수를 더하고 이를 면에 붓는 음식을 차오마멘(炒碼麵)이라 한다. 물론 들어가는 재료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그러니까 짬뽕은 일본의 중국집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차오마멘이 일본으로 건너가 짬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1950~60년대 일상에서 사용하던 일본어를 한국어로 바꾸는 국어순화운동이 거세게 일었다. 사시미를 회, 스시를 초밥, 우동을 가락국수로 바꾸는 일이었다. 그런데 짬뽕은 이 운동 대상에서 빠졌다. 중국집에서 쓰는 말이니 일본어라는 관념이 없었을 수도 있고, 그 당시 짬뽕이 중국집의 주요 음식이 아니어서 관심 밖에 놓였을 수도 있다.

1980년대 짬뽕이 일본어니 이를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짬뽕은 원래 중국음식이며, 중국에서는 차오마멘이라 쓰니 초마면이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정부의 ‘국어순화자료집’에도 초마면이 올랐다. 그러나 한국인은 이 초마면을 낯설어 했다. “짬뽕은 일본어야, 쓰지 말아야 해” 하면서도 이를 초마면으로 바꾸지 않았다. 그때 짬뽕은 이미 단순히 음식 이름으로만 쓰이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 ‘국어순화’에 큰 방해가 됐다. 짬뽕은 한국사회의 온갖 ‘뒤섞임’을 표현하는 말로 널리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술을 섞어 마시는 것을 ‘짬뽕한다’고 표현했고,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으로 채워진 정부를 ‘짬뽕 내각’이라 불렀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끼리 뒤섞여 있다는 느낌이 들면 무조건 짬뽕이라는 말을 갖다 붙였다. 그 뒤섞임이 어처구니없는 형국일 때는 ‘웃기는 짬뽕’이라고도 말했다.

짬뽕이 초마면으로 바뀌지 않자 새로운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중국어인 초마면을 쓸 것이 아니라 기왕이면 한국어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얼큰탕 또는 얼큰면이 의견으로 나왔다. 그러나 대중의 반응은 냉담했다. 순화라기보다 억지로 읽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한국인은 짬뽕이라는 말을 쓴다.

‘사진’은 전북 전주의 한 짬뽕 전문식당에서 찍은 것이다. 해물을 주재료로 하고 맑은 육수를 더한 짬뽕이다. 그런데 그릇이 한국 전통식 대접이다. 이 대접 덕인지 짬뽕에 꽂아놓은 쑥갓이 잘 어울린다. 짬뽕이라고 하지 않으면 한국식의 맑은 생선국 정도로 보일 수도 있다. 중국에서 비롯해 일본어 이름을 갖게 된 음식이 한국 그릇에 담긴 것이다. 그야말로 짬뽕이다.

음식문화에는 국경이 없다. 국가 또는 민족의 경계를 제 마음대로 넘나든다. 그 경계를 넘으면서 출신지의 특성을 유지하는 것도 있고, 이민지 환경에 맞춰 출신지의 특성을 다 버리는 것도 있다. 이런 유지와 탈피를 결정해야 할 때 가끔씩 특정 의도를 가진 집단이 조작을 하려 드는 경우가 있다. 음식문화를 통해 국가주의 또는 민족주의를 강화해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챙기려는 이들이다. 한식의 세계화도 그 속내를 보면 이 조작에 든다 할 수 있다.

음식문화란 짬뽕과 같다. 그 뒤섞임이 자연스러워야 음식문화가 맛있어진다. 인위적인 조작으로 그 뒤섞임을 어색하게 만들면 ‘웃기는 짬뽕’이 될 뿐이다. 한국 전통 대접에 담긴 짬뽕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은, 아니 멋스럽기까지 한 것은 ‘민간인’이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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