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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건강 클리닉] 친구라는 건

[조글로미디어] | 발행시간: 2014.09.20일 21:36
명절은 또다시 지나갔다. 새로운 자양분을 얻어 다시 일상에 몰두해야 할 때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내려가 송편과 전으로 에너지를 충전했겠지만, 나를 충전해 주는 수단이 비단 정 가득한 음식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정감 어린 사람들, 산해진미가 있어도 같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가족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랴.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친구의 존재. 친구를 만날 수 있어 설레는 고향으로의 길. 그러고 보니 요즘 세상에 친구라는 단어가 새삼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에게 친구란 단지 부산 사투리 넘쳐나는 엄청나게 흥행한 한국 영화의 제목으로만 그치는 것은 아닐까.



친구가 인생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부모만이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한 아이는 학교에 들어가고 많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사람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다. 부모에게 점점 거리를 두는 반면 친구들과의 가까운 관계를 더욱 원하는 것이다. 부모에게는 비밀이 많지만 친구에게는 비밀이란 게 없다. 친구랑 놀기 위해서 가족여행을 포기한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점점 자신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하는 아이를 보면서 부모는 짐짓 섭섭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지만 이것은 자연스러운 발달의 과정이다. 언제까지 아이를 품 안에서만 키울 수는 없는 법. 자연스럽게 아이는 부모에게서 멀어져 가고 부모는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다가도 성인이 되면 친구의 의미는 또 바뀐다. 직장에서 일해야 하며, 가정을 돌봐야 한다. 직장 동료들은 어디까지나 내가 잘 보여야 할 사람,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사람이지 그들을 친구라 보기에는 애매한 면이 있다. 내담자들과 면담을 진행하면서 "혹시 친한 친구 좀 있나요?" 물어보면 대부분 생뚱맞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몇 명 있기는 한데 요즘은 연락을 잘 하지는 않아요. 볼 시간도 없기도 하지요". 요즘 사회인들에게 인생의 중요한 덕목 몇 가지를 대라고 하면 아마도 배우자와 아이, 부모, 일, 돈 등 몇 가지 나오고 난 이후에야 친구라는 단어가 나올지 모를 일이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친구란 존재는 점점 나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다. 나이 먹어서도 친구 좋아하면 '가족에게 무책임한 사람'이라 낙인 찍히기 쉽다. 친구 만나 놀고 늦게 들어오는 배우자를 격려해줄 남편이나 부인도 없을 것이기에.

그런데 따지고 보면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데 드는 노력과 비용이란, 부부관계나 부모자녀관계를 잘 유지하는데 드는 노력에 비해서는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부부간에 그렇게 많이 다투고, 부모자식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서로에 대해 정성을 쏟지 않기 때문이다. 부부는 결혼을 하면 더 이상 연애 때처럼 서로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미 내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정성 들여 부부관계를 잘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부모자식 관계도 마찬가지다. 사람관계라는 것이 마치 매일 화분에 물을 주는 것과 같은 정성이 필요한 법인데 직장 상사나 밖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정성을 쏟으면서 정작 가까운 사람들은 등한시한다. 사실 가까운 사람이야말로 그런 정성이 더욱 필요한 법인데 말이다.

그렇게 보면 친구는 마치 선인장과 같다. 일 년에 몇 번 연락도 못하고 볼 수 있는 기회도 손에 꼽을 정도지만, 어쩌다 한번 보더라도 그렇게 반갑고 기분이 좋아질 수 없다. 잊혀질 즈음 다시 만나 물을 주더라도 그 옛날의 느낌이 다시 되살아나고 호기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피를 나눈 것도 아닌 남남이었던 우리가 이렇게 강한 유대로 엮여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 걸까? 왜 나는 너를 보기만 해도 이리 기분이 좋은 것일까?

나에게 있어 죽마고우란 내 기억과 추억을 함께 나누는 존재가 아닐까. 우리는 항상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에 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당부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카르페 디엠'이 삶의 모토인 사람들이 많지 않나. 그들은 과거에 얽매이는 사람들을 구태의연한 사람들이라 한다. 하지만 모든 이의 뿌리는 과거에 있는 법. 누구나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즐거웠던 과거를 통과하며 살아 왔다. 그 과거의 일부분을 공유해 온 존재가 있다는 것, 시시콜콜 내 과거를 설명해 주지 않아도 다 알고 있으며 그 경험 속의 일부로 존재해 온 내 친구.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그 과거로 같이 손잡고 돌아가서 때로는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기억들을 다시 재경험하는 과정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나의 기억과 비밀을 공유하는 존재로서 친구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특별하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사람이다. 필연적, 우연적으로 나와 엮어진 가족과 친지의 존재가 물론 중요하지만, 피 하나 섞이지 않고도 나와 과거와 현재를 공유하는 친구의 존재는 얼마나 특별한 것인가. 친구에게는 커다란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내가 항상 너를 생각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는 큰 에너지가 들지 않는다. 친구에게 연락하는 데 자존심 세울 필요도 없다. 내가 먼저 연락한다면 그 친구는 나에게 더욱 속으로 감사하며 아마도 다음 명절 때는 먼저 연락해 올 것이다. "언제 밥 한번 먹자"는 얘기는 너무 뻔하디 뻔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누구나 그렇게 얘기를 들으면서 너와 나는 앞으로도 밥 못 먹을 것이라 생각한다. 친구라면 만나서 밥을 먹든 술을 먹든 해야 한다. 우리는 고리타분한 관계가 될 수 없기에.

친구와 어깨동무하며 뻘짓거리를 하고 다니던 철없던 시절을 누구든지 추억으로 생각한다. 현실이 힘들수록 사람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기 마련이다. 미래는 어찌될지 알 수 없지만 과거는 언제나 내 기억에 잔존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과거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존재인 친구. 그러기에 가까운 벗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내가 힘들 때 언제든 불러내서 칭얼거리고 투덜거릴 수 있는 친구가 몇 있다는 것. 그런 친구의 존재는 인생을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증거다. '삶의 질' 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벗의 존재이다. 더 멀어지지 않도록 내가 신경 써야 한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의 소중함을 너무나 잊고 살기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술에 취해 노래방에서 안재욱의 '친구'를 부른다. 친구와 어깨동무하며. 너와 내가 함께라면 나는 호기로워지고 세상을 다 가진 듯하다.

세상에 꺾일 때면 술 한잔 기울이며

이제 곧 우리의 날들이 온다고

너와 마주 앉아서 두 손을 맞잡으면

두려운 세상도 내 발 아래 있잖니

칼럼니스트 : 전문의 이승민(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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