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카트만두 시내 파탄두르바르 광장 인근 건물들이 지진으로 처첨하게 부서져 있다. 카트만두=서영희 기자
27일(현지시간) 네팔 수도 카트만두 일대의 땅은 사납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위로 온갖 건물이 부서져 내렸고, 산더미 같은 잔해 위로 비탄의 표정이 가득했다. 네팔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이 도시는 죽은 자들의 무덤으로, 산 자들의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생존자들은 살았다는 안도보다 삶을 파괴당한 슬픔과 고통, 그리고 여진의 공포에 몸서리쳤다. 이들은 ‘신들의 땅’으로 불리는 카트만두 계곡에 안기듯 모여들어 조밀하게 살아왔다. 거리에서 만난 주민들은 그 많은 신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는 얼굴로 기자를 보는 듯했다. 그 허망한 눈은 오래 들여다볼 수 없었다. 여자들은 길바닥에 주저앉았고, 남자들은 잔해를 파헤쳤다. 이날 오후 공항 사정이 여의치 않아 기자가 탄 비행기는 카트만두에 도착한 뒤에도 두 시간여를 상공에 머물러야 했다.
폭탄을 맞은 듯 부서져 내린 붉은색 돌담에는 핏자국이 검게 말라 있었다. 파헤쳐진 돌무더기 속에서 부옇게 먼지를 뒤집어쓴 사람의 몸들이 계속 드러났다. 이미 핏기가 사라진 손과 발들은 한눈에 봐도 차가웠다. 사람들은 맨발로 죽어 있었다. 흙과 돌무더기 속에 묻혀 있던 손들은 구조를 기다렸던 것처럼 반쯤 펼쳐진 채 발견됐다. 네팔 전역에서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이렇게 발견될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25일 지진 발생 이후 이날까지 당국이 파악한 실종자만 6000명이 넘는다. 주민들은 강가 풀밭에 나무와 짚을 쌓고 시신들을 화장했다.
잔해 속에서 제멋대로 삐져나온 철근들은 구조 작업자들을 위협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기운 건물이 곳곳에 보였다. 아치형 유리창이 눈에 띄는 2층 건물은 30도가량 왼쪽으로 기울어져 지붕 모서리가 2m쯤 떨어진 옆 건물에 닿았다. 한 5층 건물은 오른쪽 모퉁이가 녹아내리듯 무너졌다.
반파된 건물들은 그 시커먼 구멍으로 돌무더기를 토해낸 것처럼 보였다. 벽면에 기대어 있었을 가구들이 밖으로 쏟아져나와 잔해 위를 나뒹굴었다. 건물이 붕괴되면서 쏟아진 흙과 돌덩어리는 도로 곳곳을 뒤덮었다.
전봇대와 송전탑도 쓰러졌다. 도시는 전기와 수도가 끊겼다. 이동통신사는 새로운 가입을 중단했다. 상점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집을 잃고 말고를 떠나 모두 건물 밖으로 나와 거리를 배회했다. 건물들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져 더 이상 무너질 것이 없는 공터에 돗자리가 깔리고 천막이 세워졌다. 언제 또 여진이 밀려올지 알 수 없는 탓이다. 네팔 정부는 생존자들에게 집 밖에서 지내도록 했다. 사람들은 언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답하지 못했다.
삶은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인가. 삶이 이렇게 쉽게 무너져도 되는 것인가. 이 절망 속으로 얼마나 깊숙이 손을 집어넣어야 희망을 건져낼 수 있을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네팔 정부가 이날 오후 파악한 전국의 지진 사망자는 4000명에 육박했다. 이번 지진으로 사망자가 1만명을 넘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카트만두=강창욱 특파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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