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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리 물결 넘실대는 초록의 섬 ‘가파도’

[기타] | 발행시간: 2012.04.20일 21:00

우리나라에서 가장 낮은 땅인 가파도를 푸르게 물들인 청보리밭. 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처럼 넘실대는 모습이 장관이다. 멀리 시루를 엎어놓은 듯한 송악산이 보인다. | 서귀포시 제공

ㆍ높은 곳을 향한 마음의 짐, 낮은 땅에서 내려놓으시라

국토의 남단, 제주도 본섬과 마라도 사이에 가파도(加波島)가 있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 모슬포항을 떠난 여객선은 20분이면 가파도에 닿는다. ‘파도가 더해진다’는 그 이름처럼 바람이 세차고 파도는 유난히 거칠었다.

사람들은 ‘국토 최남단’에 발자국을 찍으러(혹은 짜장면 시켜 먹으러) 마라도(원래 가파리에 속했으나 1981년 마라리로 분리되었다)를 찾을 뿐 가파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가파도의 드넓은 청보리밭과 ‘보리밭 사잇길’로 난 올레길이 알려지면서 여행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가파도에서 촬영한 KBS <1박2일> 프로그램은 가파도를 알리는 데 결정적인 힘을 보탰다.

가파도는 지도로 보면 마름모꼴, 혹은 가오리처럼 생겼다. 해안선 전체 길이가 십리 남짓한 4.2㎞에 불과한 작은 섬. 그래도 마라도보다는 2.5배쯤 크다. 국내 최고봉(한라산), 국토 최남단(마라도)처럼 가파도도 기록을 하나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 유인도 중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낮은 섬이다. 높은 곳이 20.5m(마라도는 39m)에 불과하다. 섬에는 산은커녕 언덕 하나 없어 마치 바다 위에 얇은 방석을 펴놓은 것 같다.

해안과 마을 말고는 들판 전체가 청보리밭이다. 60만㎡(약 18만평) 넓이의 보리밭 지평선이 그대로 수평선으로 이어진다. 가파도 청보리는 어느새 훌쩍 자라 알이 배고 이삭이 패기 시작했다. 가파도의 보리는 ‘향맥’이라는 제주 재래종으로 일반 보리보다 키가 훨씬 커서 1m를 넘는다. 그러니 섬을 가득 채운 초록빛 보리가 바닷바람에 일제히 넘실대는 모습이 더 장관이다. 바람 불 때마다 바다의 파도와 같은 리듬으로 크게 물결친다.

우도에 이어 두 번째 제주섬 올레인 가파도 올레길(10-1코스)은 5㎞ 거리. 보리밭 들판을 따라 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과, 해안을 따라 한 바퀴 빙 도는 코스가 있다. 어느 길을 택하든 넉넉잡아 두세 시간이면 섬 전체를 고루 밟을 수 있다. 섬에서 1박을 하면 멋진 일출과 일몰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가파도는 한라산은 물론 송악산, 산방산, 단산, 고근산, 군산 등 제주의 6개 산을 모두 한눈에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가장 낮은 땅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을 조망하는 경험은 특별하다. 남쪽에는 마라도가 떠있다.

가파도는 상동과 하동, 중동으로 마을이 이루어져 있다. 100여가구 2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마을은 평화롭고 때 묻지 않은 섬 주민들은 친절하다. 시골집 담벽에는 소나무 그림 등 멋진 그림이 그려져 있다. 소박한 섬 마을이지만 그 속의 삶은 억세고 거칠었다.

이 섬은 ‘블루코너’라는 독특한 해저지형을 갖고 있다. 블루코너란 수심 10m 정도로 평탄하게 뻗어나가다가 갑자기 깎아지른 절벽이 있는 해저를 말한다. 조류가 세고 영양분이 많아 다양한 어류가 서식한다. 가파도 해녀들은 그런 거센 바람과 파도를 뚫고 전복, 해삼, 톳, 모자반, 성게 같은 것들을 건져올린다. 주민 가운데 70여명이 해녀다.

가파도 돌담은 바닷돌로 성글게 쌓아 ‘바람의 통로’가 되어준다.

해녀 대표인 강수자씨(53)는 “물살이 세서 물질이 힘들지만 그만큼 가파도 해산물이 맛이 있어서 제주도에서도 값을 더 쳐준다”고 자랑했다. 이런 황금어장 덕에 1970년대 부촌으로 유명했던 섬은 지금은 젊은이는 떠나고 주로 노인들만 남았다.

‘바람의 섬’ ‘풍랑의 섬’답게 옛날부터 배들의 표류와 난파가 잦았다고 한다. ‘정이월 바람살에 가파도 검은 암소뿔이 휘어진다’는 속담까지 있을 정도이니 오죽할까. 1653년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의 배가 난파된 곳을 가파도로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네덜란드 사람 하멜이 조선에서 14년 동안 억류돼 있다가 탈출한 뒤 귀국해서 쓴 <하멜표류기>에 등장하는 ‘케파트(Quepart)’라는 지명이 가파도라고 본다.

여객선이 닿는 상동에서 하동으로 돌아가는 북쪽 해안가에 무덤이 많다. 바람이 센 탓에 무덤은 다른 곳보다 낮게 썼다. 가파도는 제주도 새끼섬 중 식수가 가장 넉넉했다고 한다. 상동마을 옆 해안가의 고망물과 하동의 동항개물은 샘물이 솟던 곳으로 담수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주민 식수로 사용했다. 기묘한 형상의 검은 바위가 늘어선 해안 풍광도 볼만하다.

이 작고 바람 센 섬에도 선사시대 때부터 사람이 살았던 모양이다. 보리밭 사이사이 자리한 커다란 바위는 고인돌이다. 제주도에 남아 있는 180여기의 고인돌 중 무려 95기가 가파도에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가파도 출신 회을(悔乙) 김성숙 선생(1896~1979)이 민족교육을 위해 설립한 ‘신유의숙(辛酉義塾)’은 가파초등학교가 됐다. 학교 옆 회을공원에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가파도 돌담은 특이하다. 제주도는 대부분 검은색 현무암으로 담을 쌓지만 이곳은 바닷물에 닳은 마석(磨石)을 쓴다. 바닷돌 하나하나가 훌륭한 수석인데, 환경보호 문제로 제주도 밖으로 가져갈 수는 없다. 마을이나 방파제 곳곳에 훌륭한 수석들이 놓여 있다. 집담과 밭담은 제주도의 다른 곳보다 성글게 쌓았다. 가파도 센 바람이 숭숭 뚫린 구멍으로 지나가기 때문에 잘 무너지지 않는다. ‘섬 시인’ 강제윤은 가파도 돌담은 ‘바람의 방어막’이 아니라 ‘바람의 통로’라고 썼다.

햇살 맑은 날, 가파도의 봄은 참 싱그럽다. 걷기에 이만한 곳도 없다. ‘보리밭 올레길’을 따라 걷다보면 깊은 평화와 고요에 안겨있는 느낌이 든다. 높은 곳을 향하느라 무거웠던 마음의 돌덩이를 내려놓고 싶으면 가파도에 가자. 세상의 가장 낮은 땅, 청보리 넘실대는 봄날의 청정 가파도에서 아주 천천히, 여유롭게 거닐 일이다.

▲ 여행길잡이

■ 21일부터 5월20일까지 제4회 청보리 축제가 열린다. 청보리밭 걷기, 소망기원 돌탑 쌓기, 청보리 염색체험, 연 만들기와 연 날리기, 사생대회, 바릇·햇보말 잡이, 보말 까기 대회, 해녀 물질 체험, 수산물 경매, 특산물 판매장 운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서귀포시 관광진흥과 (064)760-3942, 가파리 (064)794-7130

■ 모슬포항에서 가파도행 삼영호가 다닌다. 축제 기간에는 증편 운행한다. 평일 오전 9시, 10시, 11시, 오후 1시, 3시, 5시 모슬포항 출발. 주말에는 낮 12시, 오후 4시에도 출항한다. 왕복 배삯은 어른 8000원, 어린이 4000원. 폭풍주의보가 내리면 배가 뜨지 않으므로 미리 배 시간과 일기예보를 확인해야 한다. 삼영해운 (064)794-5490

청보리밭 사이로 난 올레길.

■ 해녀촌(064-794-5745), 바다별장(794-6885), 올레길식당(792-7575), 춘자네식당(794-7170), 가파도민박(794-7083), 블루펜션(794-4300) 등은 민박과 식당을 겸한다. 가파 어촌계 해녀들이 직영하는 해녀촌에서는 ‘1박2일’ 출연자들이 먹었던 용궁정식과 해물정식이 유명하다. 4명 5만원. 해녀들이 금방 잡아온 자연산 문어, 소라, 전복 등을 통째로 냄비에 끓여 낸다. 소라젓, 자리젓, 멸젓(멸치젓) 등 각종 젓갈과 함께 미역, 톳, 성게, 보말 등 10여가지 음식이 따라나온다. 성게칼국수(1만원), 보말칼국수(7000원)도 맛있다.


<가파도(제주) | 김석종 선임기자 s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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