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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을 미치게 만든 영덕 ‘촌놈’-박태하

[조글로미디어] | 발행시간: 2015.11.03일 20:42

중국 2부리그 꼴찌팀 옌볜 창바이산을 1년 만에 우승팀으로 만들고 1부리그로 승격시킨 박태하 감독의 마음으로 하는 축구


류청 <풋볼리스트> 기자


결국 모든 게 사람이 하는 일이고, 마음을 얻어야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 여기 마음으로 사람과 축구공까지 움직인 남자가 있다. 꼴찌 옌볜 창바이산(장백산)을 1년 만에 우승팀으로 만든 박태하 감독이다.

“형, 박태하 감독님 옌볜 가기 전에 대전에서 중학생들 가르친 거 알아?” 우연이 필연을 부를 때가 있다. 박태하 감독은 지난 9월 옌볜 창바이산을 이끌고 대전으로 넘어와 대전 시티즌(K리그 구단)과 친선경기를 치렀다. 그 경기를 취재하러 가는 길에 대전 시티즌에서 유소년 감독으로 일하는 후배에게 안부를 물으려 한 전화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박 감독과 몇 차례 인터뷰를 하고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라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국가대표팀 수석코치와 FC 서울 수석코치를 하다가 지방으로 내려와 직접 봉고차를 몰며 중학생 선수들을 가르쳤다는 이야기인데, 말도 안 되는 흐름 아닌가. 영화 <베테랑>의 형사(주인공)가 외치지 않았나.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대개의 축구인들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프로팀을 지휘하다 대학팀으로 가는 일은 있어도, 그 아래 단계로 내려가는 일은 드물다. 자존심이 상하니까.

국가대표 코치 하다 중학생 지도?

“그래. 여기서 내가 직접 봉고차도 몰고, 운동장도 빌리고 그랬지.” 몇 시간 뒤 마주 앉은 박 감독은 기자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박 감독은 전남 목포와 대전에서 ‘허정무·거스히딩크축구재단’ 소속 지도자로 중학생들을 가르쳤다. 포항 스틸러스가 가장 사랑하는 영웅, 축구선수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동통신사(017) 광고를 찍었던 선수, 국가대표팀 코치로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첫 원정 16강을 이룬 이가 바로 박 감독이다. 박 감독은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대표팀도 해보고 FC 서울도 해봤는데, 내가 별다른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팀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물 흐르는 대로 살려고 했다. 물론 가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내가 가르친 부분을 기억하고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찰나의 깨우침은 아니었다. 박 감독과 오래 인연을 맺은 이들은 하나같이 그를 “의리의 사나이”라고 부른다. 박 감독이 선수로 뛸 때부터 지켜본 팬인 한혜진씨는 박 감독은 뭔가 남달랐다고 기억한다. 한씨는 “선물을 들고 간 팬에게 ‘그 선물을 부모님께 갖다드리라’고 말하던 분이었다”며 “아직도 박 감독을 언급하면 눈물을 흘리는 팬이 많다”고 말했다.


박 감독의 오랜 팬인 국승하씨는 아직도 K리그 올스타팀 숙소였던 서울 명동의 타워호텔에서 박 감독을 만났던 것을 잊지 못한다. 국씨가 올스타전 경기 응원을 위해 포항 스틸러스 서포터즈 유니폼을 입고 있자 박 감독은 “밥은 먹었니”라고 말을 건넸다. 그리고 멀리까지 찾아와줘서 고맙다며 밥을 사줬다. 국씨와 박 감독의 인연이 시작된 계기다.

박 감독과의 대화는 보통의 선수와 팬이 나누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박 감독이 대전에서 유소년 코치를 하고 있을 때 국씨가 “형님은 더 좋은 곳에서 지도하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더니, “그건 네 욕심이지. 나는 여기서 잘 지내고 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박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실력도 실력이지만 다른 선수들을 다독이고 리드하는 모습이 멋졌다.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매사에 진실되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선수들 가정환경 살펴 보듬고 교감

“포항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말했던 포항 스틸러스의 레전드 박태하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다른 선수들을 다독이고 리드하는 모습이 멋진 선수였다. 뉴시스

축구 전문지 <포포투>의 배진경 기자는 박 감독이 누구인지를 가장 잘 알려주는 일화가 그의 은퇴(2011년)라고 했다. “당시 박 감독은 한국 나이로 34살, 몇 년은 더 뛰어도 문제없었던 시기다. 실제로 몇몇 구단에서는 박 감독의 영입을 바랐다. 그런데 박 감독은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포항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박 감독의 말에 팬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어른들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고 했다. 아무리 박 감독이 인성이 좋고 따뜻해도 축구가 선수 놀음이라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는 법이다. 옌볜은 2014 시즌 중국 갑급리그(2부 리그) 최하위를 했다. 30경기에서 단 3승만을 거뒀다. 감독은 3번이나 교체됐다. 3부 리그 강등이 확정되면서 옌볜축구협회에는 비상이 걸렸다. 축구는 조선족의 자존심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리광철 옌볜축구협회장은 포스코엔지니어링 중국 지사장으로 있던 박 감독의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박태하를 데려왔으면 좋겠다.” 옌볜의 팀 사정을 잘 아는 박 감독의 친구는 난감했다. 박 감독이 옌볜을 맡을 리 없고, 맡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친구의 전화를 받은 박 감독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박 감독은 고심 끝에 “어쨌든 만나보자”고 말했다. 옌볜으로 날아와 구단을 접촉한 박 감독은 10일 안에 답을 주겠다고 말하고 귀국한다. 그러고는 3일 만에 팀을 맡겠다고 했다. 모두가 말렸지만, 박 감독은 옌볜 지휘봉을 잡았다.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는 ‘내가 미쳤나. 거길 왜 가’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옌볜에 다녀온 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차피 성공 확률은 반반이었다. 지원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성공하면 좋은 거고, 실패해도 명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결단을 내렸다.”

박 감독은 도착하자마자 좋은 소식을 들었다. 갑급리그에 잔류했던 몇 팀이 징계를 받으면서 옌볜이 2부에 남게 된 것이다. 게다가 선수들의 실력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이 상황에서 박 감독이 구단에 가장 먼저 요청한 것은 다름 아닌 선수들의 가정환경을 조사해달라는 것이었다. 선수들은 기계가 아니니 이들의 성장 환경과 주변 환경을 알아야 잘 지도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처음에 팀에 가서 선수들을 파악하려고 가정환경을 조사하다가 가슴이 찡했다. 선수들 중에 부모와 같이 유년 시절을 보낸 선수는 20~30%밖에 되지 않았다. 부모가 돈을 벌기 위해 한국·러시아·미국 등으로 나가는 일이 많아서 아이들이 사랑을 받지 못하고 큰 것이다. 조부모와 지내면 그나마 다행인 편이다. 거의 혼자 지낸 아이도 많았다. 정답은 아니지만, 이 친구들에게 사랑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보듬어주고,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했다. 정서적으로 교감하려고 노력했다. 선수들이 감독을 속이기는 쉽다. 처음에는 잘 보이려고 열심히 하는 척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선수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려 했고, 아이들도 그걸 잘 받아줬다.”

박 감독은 선수들이 잘 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도 신경을 많이 썼다. 동계 전지훈련을 떠나기 하루 전, 선수 임금이 체불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박성웅 (신임) 단장을 찾아가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되도록 빨리 임금을 지급해달라고 요청했고, 박성웅 단장은 조속한 해결을 약속했다. 이후 박 감독은 선수를 모아놓고 “임금 문제는 내가 책임지고 빨리 해결하겠다. 대신 너희들은 열심히 뛰어라”라고 말했다. 구단은 3일 만에 밀린 임금을 모두 지급했고, 선수들은 박 감독의 말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21라운드 무패 행진… 관중은 10배 늘어

옌볜 창바이산이 우승을 결정하던 날, 한족 서포터들이 내건 걸개 그림. 류청


박 감독은 원정 숙소도 가장 좋은 호텔로 잡아달라고 했다. 땅덩이가 큰 중국에서는 원정도 일이다. 한국에서는 경기 하루 전에 원정을 떠나는데, 중국은 이틀 전에 떠나야 한다. 가장 거리가 먼 신장위구르자치구까지 가려면 비행 시간만 10시간 정도가 걸린다. “잘 쉬어야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 게다가 좋은 숙소를 잡는다고 해서 그렇게 많은 돈이 더 드는 것도 아니다. 결국 감독이 해야 할 일은 관리다. 실력을 끌어내기 위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박성웅 단장은 기자를 대전에서 처음 만났을 때 말했다. 박 감독을 초빙하면서 바란 것은 우승이 아닌 잔류였다고. 선수 구성도 지난해와 거의 비슷했다. 9년 동안 이기지 못했던 리그 개막전(옌볜은 추운 날씨 탓에 리그 다섯 번째 경기까지 원정으로 치러야 한다. 2015년부터 3라운드까지만 원정으로 치르는 것으로 바뀜)에서 승리했을 때 구단 직원들과 팬들이 모여 케이크를 자르며 기념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점점 지지 않는 경기 수가 늘어나더니 21라운드까지 무패로 내달렸다. 22라운드에서 하얼빈 이텅에 첫 패배를 당했을 때, 이미 팬들의 기대치가 하늘만큼 높아져 있었을 정도다. 박 감독은 당시를 생각하며 “사람 눈이 그렇게 빨리 올라가는 거다”라며 웃었다. 박 감독과 선수들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선수단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골키퍼 윤광은 “사실 우리도 처음에는 이렇게 좋은 성적을 거둘 줄 몰랐다. 5라운드가 지나면서부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성적이 좋아지자 팬들도 늘어났다. 지난해 2천~3천 명이던 평균 관중은 올 시즌에 2만 명을 훌쩍 넘었다. 옌볜의 한 서포터 조직의 회장인 박미화씨는 “선수 구성이 지난해와 80% 정도 같다. 외국인 선수가 다 바뀌고, 감독이 새로 온 게 전부”라며 “박 감독이 기적을 만들었다”고 했다.

감독에게 금일봉 건네는 할머니 팬

옌볜 창바이산의 열성팬인 일명 ‘수박 할머니’가 박태하 감독에게 금일봉을 전달한 일은 옌볜 현지에선 유명한 얘기가 됐다. 류청


박 감독은 지난 9월 기자와 경북 포항에서 만나 옌볜의 분위기를 설명하다 격한 표현을 썼다. “옌볜은 정말 축구에 미쳤다.” 실제로 겪은 옌볜의 축구 열기도 그랬다. 10월22일과 23일 직접 훈련장에서 팀 훈련을 지켜봤는데, 평일인데도 조선족과 한족 가릴 것 없이 많은 팬들이 운동장에 나왔다. 돌도 되지 않은 아이를 데려와 박 감독에게 안아달라고 말한 젊은 부부도 있었다. 당시 팬들은 박 감독이 옌볜을 떠날까봐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기자에게 감독의 거취를 묻는 이도 많았다. 박미화씨는 “떠난다고 해도 못 보낸다. 못 떠나게 공항이라도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옌볜은 10월24일 경기에서 4-0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결정지었다. 이날 한족 서포터들은 “박태하 옌볜 인민의 영웅. THANK YOU”라는 문구가 들어간 큰 걸개를 준비했다. 박 감독은 경기 뒤 기자회견에서 옌볜 잔류를 선언했다. 나이가 지긋한 한 기자는 눈물을 흘렸고, 한 사진기자는 걸어가는 박 감독을 향해 큰절을 했다.

옌볜 이주와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한 노년층은 축구와 박 감독에 대한 애정이 더 크다. 경기장까지 1시간 넘게 걸어와 선수들에게 냉면과 수박을 사주라며 1천원(약 20만원)을 내민 ‘수박 할머니’와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생활비 5천원(약 100만원)을 모아 구단에 전달한 ‘맹인 할머니’ 일화는 옌볜 현지에서 매우 유명하다.

10월25일 우승 축하연에서 실제로 수박 할머니와 만났다. 수박 할머니는 구단 직원의 제지에도 박 감독에게 ‘금일봉’을 전달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는 구단 직원의 제지에 수박 할머니가 “네 돈도 아니고 내 돈이다. 네가 뭔데 막아서느냐”라고 말하자 주위에 있던 공안들까지 웃음을 터뜨렸을 정도다.

리광철 옌볜축구협회장은 “축구는 조선족들의 자존심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축구에 대한 자부심은 정말 대단한 지역이다. 1997년 고 최은택 선생님이 오동팀(당시 옌볜 구단 이름)을 이끌고 4위를 차지했을 때도 옌볜 인민들이 모두 기뻐했다. 2015년에 박태하 감독이 그 뜻을 이어서 우승까지 차지하니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과 옌볜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한 사업가는 옌볜의 축구 열기를 조금 다르게 설명했다. “이들은 항상 조선족이 한족보다 우월하다고 하지만, 실생활을 보면 한족들에게 무시당하는 일이 많다. 말하지 못하는 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축구로 한족팀을 모두 꺾었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옌지시 공안국장은 박 감독을 가리켜 외교관이라 했다. 한국어(조선말)를 함께 사용하지만, 옌볜과 한국의 거리는 가깝지 않았다. 한국은 옌볜을 무시했고, 옌볜 동포들은 한국인들의 이중성을 싫어했다. 보이스피싱의 진원지로 옌볜조선족자치주가 지목되면서, <개그콘서트>에서는 이를 비꼬는 ‘황해’라는 코너가 생겼을 정도다.

옌볜 사람들은 이 ‘황해’ 코너를 매우 싫어한다. 박 감독의 통역을 맡고 있는 리철씨는 “영화 <황해>는 사실에 기반한 것이니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개그콘서트>의 ‘황해’는 옌볜 사람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 그 사람들은 옌볜 오면 정말 큰일 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옌볜에서 만난 이들은 한목소리로 박 감독이 축구를 통해 양쪽의 심리적 거리를 상당 부분 좁혔다고 말했다. 10월24일, 우승이 확정된 직후 위장룡(한족) 옌볜주체육국장은 “박 감독이 옌볜과 중국을 존중했기 때문에 이런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하며 건배를 제의했다.

“박 감독이 한국인에 대한 인상도 바꿨다”

박성웅 단장은 “선수들이 감독을 아버지처럼 따른다”고 했는데, 이는 그저 입에 발린 말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위 체육국장의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올 시즌 옌볜의 전 경기를 취재한 김룡 <길림신문> 기자는 “박 감독은 옌볜 사람들이 싫어하는 한국인의 조건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선수들도 구단 직원들도 모두 좋아한다. 박 감독이 한국인에 대한 인상을 상당 부분 바꿨다”고 말을 보탰다. 박 감독은 마음으로 선수들을 움직였고, 이는 옌볜을 울렸다.

류청 <풋볼리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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