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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왜 '연길감옥항일투쟁기념비'를 세웠을가?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6.01.21일 09:46

(흑룡강신문=하얼빈) 윤운걸 길림성 특파원=연길시에서 국내외 예술단체들이 공연할때면 어김없이 '연변예술극장'(후에 로동자문화궁으로 개칭,이하 극장으로 약칭)을 리용한다. 그런데 이 극장터가 바로 일제시기에 악명높았던 연길감옥옛터라는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 극장 남쪽에는 '연길감옥항일투쟁기념비'가 우뚝 서있어 극장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럼 이 기념비를 누가 세웠는가?

  한 항일투사의 자녀가 사재를 털어 2000년도에 25만원(건축비용 및 부지비용)이라는 거금을 들여 세운것이다.

  그 자녀의 이름이 바로 김진옥(1956년생)녀사로서 연길감옥탈옥을 주도한 항일투사 김명주의 3남4녀중 막내딸이다.

  지금은 물론 그때에도 얼마안되는 월급에 의해 근근히 생활해온 김녀사가 왜 이렇게 큰 돈을 들여 기념비를 세우게 되였을가? 그 리유를 알려면 우선 김녀사의 아버지 김명주, 어머니 서순옥항일투사의 사적부터 알아야 할것이다.

  김철수 전 연변박물관관장이 2012년에 항일투사 김명주 탄생 100돐 및 서순옥(김명주의 부인) 탄생 91돐 기념문집 '불멸의 투사'란 390만자의 장편실화를 펴냈는데 이 저서의 한단락으로 김명주의 항일사적을 요약한다.

  "김명주는 1930년에 길림성 연길현 차조구 풍흥동 (지금의 안도현에 속함)에서 혁명에 참가한 항일투사이다. 그는 그해에 체포되여 연길감옥에 갇힌 뒤 옥내 중국공산당조직의 계발과 가르침을 받아 점차 견정한 혁명전사로 성장, 1935년에는 결사대를 조직해 감옥내의 수난자들을 지휘하여 옥문을 짓부시고 탈옥에 성공한후 항일부대에 참가하여 일제와 싸웠다.

  그는 항일련군 제2군 제6사에서 선후로 반장, 패장직을 맡고 활약했으며 1937년 음력 7월 7일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그후 그는 선후로 유명한 무송현전투, 장백현 리명수전투, 간삼봉전투,돈화현 륙과송전투, 화룡현 홍기하전투 등 수많은 크고작은 전투에 참가해 용맹을 떨쳤다.

  1940년 10월에 부대를 따라 소련국경지대로 이동한 후 1941년부터 항일련군소부대에 참가하여 적의 봉쇄선을 넘나들며 여러가지 임무를 수행하여 본부로부터 '명예상장'울 수여받았다.

  가렬처절한 전투에서 그는 선후로 일곱번이나 부상을 입어 전우들은 그에게 '칠성배기'라는 별명을 지어주기까지 했다.

  광복후 그는 선후로 길동군구 경비대 련장, 중국인민해방군 제10종대 제 89퇀 영장, 독립 제4사 사부 작전참모 등 직을 력임하였다.

  1949년 2월에 신체정황으로 전업하여 지방에 온후 선후로 연변전원공서 무장과 부과장, 연변조선족자치주 민정처 처장 등 직을 맡고 사업하다가 '문화대혁명'시기에 박해를 받아 사망하였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아버지는 루명을 쓰고 투쟁을 당했습니다 "

  기자를 만난 김명주렬사의 막내딸인 김진옥녀사는 이렇게 서두를 떼면서 어린시절에 직접 보고 들은 사실을 피력했다.

  ...아버지(김명주)께서는는 그제날 일제와 싸우던 가렬처절한 나날에 입은 부상때문에 몸이 망가질때로 망가져 지방에서 사업하면서 줄곧 병원문을 집문을 나들듯했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해에도 아버지는 입원해 치료를 받다보니 미처 피할새도 없이 반란파조직에 고스란히 붙잡혀나왔다.

  당시 아버지께서는 연변당교 3층에서 매일 투쟁을 당했는데 어린나이지만 김진옥씨는 거의 매일마다 아버지를 보러 갔다. 아버지는 가느다란 쇠줄에 달린 나무판패쪽을 목에 걸고 있었으며 반란파들이 벽돌장을 패쪽에 함께 달았놓아 가느다란 철사가 목살을 여지없이 파고 들어갔다. 아버지는 매일 반란파들에게 뭇매를 맞아 피에 질퍽하게 젖은 옷을 매일 갈아입지 않으면 안되였다.

  1969년 8월 17일, 큰 오빠로부터 아버지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김진옥은 맨발바람으로 어머니와 함께 병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혁명위원회측에서는 면회를 거절했다. 어른들이 서로 밀치고 닥치고하면서 싱갱이질 하는 사이에 진옥씨가 틈새를 타서 입원실에 들어가보니 아버지의 몸우에는 흰천이 덮여있었다. 기겁한 진옥씨가 울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소리치자 그제야 혁명위원회측에서는 가족 면회를 허락했다. 흰천을 벗겨보니 아버지의 얼굴은 온통 피멍이 든채 숨져 있었다.

  혁명위원회측에서는 아버지가 자살했다고 했다. 농촌에 하향 내려가 있는 다른 오빠, 언니들에게 소식을 알리는 한편 정부에서 마차를 보내줘 아버지 시체를 집에 모실수 있었다...

  김명주씨의 부인인 서순옥씨 역시 항일투사이다.김철수가 주필한 저서의 한단락으로 서순옥의 항일투쟁사를 요약한다.

  "서순옥(1921년)녀사는 1936년에 길림성 장백현에서 항일련군에 참가하여 제2군 제6사에서 작식대원으로 있었으며 선후로 조선 보천보전투, 장백현 간삼봉전투, 가재수전투 등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여 견강한 혁명전사로 성장하였다. 그는 1940년 11월에 부대를 따라 소련국경지대로 이동한후 부대의 야영훈련에 참가하기도 했다..."

  "아버지께서가 잡혀가 매일 투쟁을 맞고 있을 때 어머니 역시 거의 매일이다싶이 투쟁을 당했습니다." 김진옥씨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 때를 회억하면 계속 말을 이었다. "연길시 신흥가두에 자리잡고 있었던 단칸방인 우리집은 투쟁장소였습니다. 가두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집에 쳐들어와 투쟁대회를 열기를 밥먹듯 했고 도망을 칠가봐 창문이란 창문은 몽땅 대못을 쳐서 문도 열지 못하게 했습니다. 쌀, 남새를 사러 가려면 간수들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지요..."

  1974년도에 김명주씨의 자녀들은 정부에 찾아가 아버지를 혁명렬사로 추대해 줄것을 강경히 요구했다. 그러자 정부에서는 혁명렬사증을 내주면 무휼금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무휼금을 못받아도 좋으니 렬사로 꼭 추대해 달라고 강하게 요구해서 겨우 혁명렬사증을 타게 되였다고 한다.

  억울하게 생죽음을 당한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반드시 기념비를 세워야겠다고 작심한 김진옥씨는 2000년에 연변박물관, 연변당안국 ,연변조직부, 연변선전부, 연변민정부 등 부문을 발이 닳도록 찾아다니면서 연길감옥옛터에 기념비를 세우자고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좋은 생각이지만 현재 돈이 없다"면서 "정 기념비를 세우려면 자기절로 돈을 내여 세우라"고 했다.

  그래서 김진옥씨는 언니 오빠들고 상의한 후 자체로 25만원을 모아 연길감옥 옛터에 기념비를 세웠다.

  김진옥의 어머니 서순옥씨는 2009년 4월 18일에 림종하셨다. 림종을 앞두고 "어머니는 자식들이 련루될까바 그때 일을 더는 말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께서는 우리가 광복을 위해 싸웠는데 언제든지 력사는 밝혀질것이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취재를 마치면서 김진옥씨는 "지금 큰 오빠, 큰 언니를 비롯한 형제들은 모두 그리 변변치 못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특히 큰 오빠는 병환에 계서 경제난으로 힘겹게 생활하고 있단다."고 말하고 나서 "기념비는 세워졌지만 구체적으로 관리하는 부문이 따로 없어 지금도 그의 형제들이 손수 돌보고 있다"며 "일제하에 악명높았던 연길감옥옛터를 왜 흔적없이 없애버렸는지 리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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