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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기획12]오뚜기정신으로 삶을 수놓는 조선족녀강자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6.02.07일 10:20
대형계렬보도 “두만강은 말한다”(12)

—연길서시장 국수판매원 김영옥의 30년 장사인생


“누가 뭐래도 ’국수팔이’는 제가 선택한 최상의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국수 팔아 두 자식의 뒤바라지도 했으니 고마울수밖에 없는 국수이지요.”

마른국수 한근을 팔면 15전이라는 리윤이 나온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적은 장사라도 외면하지 않고 엎어지면 다시 일어서면서 강인한 오뚜기정신으로 열심히 가정과 자식들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녀인, 그가 바로 연길시 서시장에서 30년이라는 기나긴 국수장사의 외길만을 고집해온 김영옥(57세)이다.

“단결로시장 길옆에서 눈과 비를 동무하여 보냈던 다섯번의 사계절을 잊을수 없습니다. 비록 그때도 국수매대였지만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닥치는대로 팔아야 했어요. 마른국수를 불려 만든 온면과 랭면, 감자지짐, 차닭알, 국밥, 옥수수죽... 길가는 행인들의 발목을 잡으려면 여러가지 품목을 늘여놓을수밖에 없었습니다.”

낮장사를 시작으로 팔다가 시원치 않았던 수입에 김영옥은 늦은밤 야시장이 펼쳐지는 시간까지 천막을 거두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팔아 돈을 모아야 했다. 밖에서 하는 장사는 항상 고달프고 외롭고 추웠지만 그녀에게는 항상 소박한 꿈이 있었다. 하루빨리 밑천을 마련해야 실내매대 하나라도 임대맡아 더 좋은 환경에서 장사를 더 크게 할수 있다는 욕망때문이였다.

5년동안 그렇게 길거리에서 언발을 동동 굴러가며 어렵사리 밑천이 마련되였다. 5년을 아껴먹고 아껴쓰면서 소영시장 실내에 들어가 국수매대 하나를 세맡을 자본을 간신히 축적하게 되였던것이다. 그런데 짧은 밑천으로 일년치 매대세를 물고나니 정작 팔 물건을 구입해들일 길이 막막했다. 연길에 있는 국수공장들은 모조리 돌아다니며 동냥하다싶이 국수를 먼저 팔고 후에 물건값을 지불하게끔 청을 들었으나 어느 한곳도 외상으로 주려 하지 않았다. 일루의 희망을 품고 용기를 내여 한 공장을 더 가보기로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손이 발이되게 사정사정해서 옥수국수와 메밀국수 각각 스무근을 내주면서 먼저 팔아보라는 맘씨 착한 한 공장장부부가 나졌다.

그렇게 시작된 국수공장과의 끈끈한 인연으로 꿈에도 그리던 따뜻한 실내매대에서 장사를 시작할수 있게 되였다. 다람쥐 채바퀴돌리듯 부지런하고 재빨랐던 그녀의 장사수완과 일솜씨가 하도 뛰여나 주변 장사군들은 혀를 차며 그녀를 “국수선수”라고 불렀다. 한메터가 채 되나마나한 매대였지만 늘 질좋고 국수 몇오리라도 더 얹어주는 그녀의 후한 인심에 손님들은 다시 발길을 돌려 고마운 단골이 되여주기도 했다.

2005년 좀이라도 더 벌어볼 욕심으로 소영시장에서 연길서시장으로 옮겨앉으며 그녀는 장사계획을 좀 더 크게 짜보았다. 하루에 강냉이국수 천근씩 팔면서 눈덩이처럼 굴려 한푼두푼 모으니 돈주머니도 불룩해졌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제일 어려울 때 인정을 베풀어 국수를 외상으로 내주던 국수공장 지인으로부터 다급한 련락이 왔다. 사업때문에 돈이 급히 필요하니 담보를 서달라는 부탁이였다. 어려웠을 때 흔쾌히 나서주었던 사람이라 그녀는 남의 일처럼 여기지 않고 자신이 아글타글 모은 돈 30여만원으로 선뜻이 담보를 서주었다. 가는정이 있으면 오는정이 있다고 그동안 외상으로 먼저 국수장사를 하게끔 도와준 고마운 지인들에 대한 믿음과 신뢰에서였다. 그런데 며칠이면 된다던 약속시간은 무한정 흘러갔고 결국 지인은 김영옥의 돈을 못 갚은채 야간도주해 종무소식이 되여버렸고 김영옥은 하루아침사이에 30여만원이란 거액을 날려버리고 빈털털이로 되였다.

“하늘이 무너지고 억장이 내려앉는것같았습니다. 눈앞이 캄캄해났지요. 정말 죽고싶었습니다.”

그때를 회억하면서 김영옥은 후- 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믿음과 신뢰를 저버리고 도망간 지인들이 야속하고 미워지기도 했지만 그렇다고해서 맥을 버리고 눈물로만 세월을 보낼수는 없었다.

결국 그녀는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기로 마음을 더 강하게 굳혔다. 깡으로 버틴 그녀에게는 맨주먹도 무기였다. 어림짐작으로 쳐도 국수 한근에 15전씩 떨어지는 리윤으로 국수를 200만근을 팔아야 30만원을 겨우 모을수 있었다.

돈을 하루라도 빨리, 많이 벌자면 출국 돈벌이도 생각해보았을법 했지만 그녀는 무엇보다 자신의 가족이 늘 마음속 1순위였다. 푼돈벌이를 하더라도 가족과 함께 할수있다면 행복할것같았다. 그녀는 결국 국수처럼 가늘지만 긴 “가족사랑”을 택했다. 손찌검을 밥먹듯이 해대는 남편이라도 옆에 있어주어 마음 한켠이 든든해났고 고생하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 일찍 헴이 들어버린 두 아들도 공부를 잘해 항상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복은 쌍으로 오지않고 화는 홀로 오지 않는다더니 그무렵 엎친데 덮친격으로 49살밖에 안된 김영옥은 자궁암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진단을 받게된다. 얼마후 남편마저 저세상으로 떠나가버리다나니 가정의 중임은 그녀 혼자의 몫이였다.

그래도 고꾸라진 맨땅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면 이때까지 손에 익은 국수판매에 악착같이 매달려보는수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그녀와 국수와의 기나긴 “전쟁”은 또다시 시작되였다.

국수와 함께 파는 가래떡도 그녀의 손을 거쳐 떡국이 된다. 수십년이나 떡국을 썰어온 그녀의 손마디마디는 고달픈 세월에 시달려 이미 꺼츨꺼츨해졌다. 요즘은 그래도 서비스쎈터가 생겨나 주문이 들어온 배달은 남의 손을 빌려서도 할수 있지만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직접 국수를 머리에 이고나가 주문업체들에 돌리던 그녀에게 자전거는 무엇보다 고마운 “애마”였다.

현재 그의 단골중에는 연길시민들도 많지만 외지고객도 많다. 려행차 연길에 들렀다가 연길의 특산품을 사러 서시장에 왔다가는 그의 국수매대에 들러 국수를 사가는 손님들도 점점 늘어났다. 전국각지에서 걸려오는 주문전화도 끊임없어 아침 일찍 우정국으로 달려가 물건을 부쳐보내는 일도 꽤나 빈번하다.

장사를 시작하기전 그녀는 복장공장에서 하루 10시간씩 다림질도 해보았고 모 병원의 보이라실에서 보이라도 때보았으며 비닐공장에서 역겨운 비닐냄새와 사투를 벌이며 일한적도 있었다. 또 14년간 홀시어머니를 모시며 나약한 녀자몸으로 한 가정을 위해 모진 애를 써왔다. 추운 겨울, 세집을 17번씩 옮겨다니면서도 그는 오직 가정을 파멸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기 위해 오늘날까지 이를 악물고 고투해왔다.

고생끝에 락이라고 현재 국수를 팔아 두 아이를 남부럽지 않게 키워낸 김영옥은 혼자힘으로 두 아들을 대학에 보냈고 큰 아들을 미국류학길에도 오르게 했으며 작은 아들 결혼식 때는 90여평방되는 신혼집까지 장만해주었다.

“재물을 많이 모아야만이 부자가 되는게 아닙니다. 마음의 부자도 역시 부자입니다. 하도 힘든 일을 많이 겪다보니 병마마저 저절로 물러서더라구요.” 십년전 병마와 사투를 벌이던 나날도 완강하고 굳센 의력을 가진 그녀 앞에선 결국 고개를 숙이고 완치에 가깝게 치료되였다는 좋은 소식이다. 남들보다 억세게 살아온 세월을 돌이켜보면서 순간순간이 고난과의 련속이였지만 김영옥은 조금의 후회도 없다고 했다.

“초년고생은 돈주고도 못산다고 하잖습니까? 두번 다시 겪기 싫을 젊은 시절의 고생들이지만 지금의 강인한 저를 있게 한 밑거름이 되였습니다.”

어린시절 제때에 걸을수 없었던 그가 간고한 노력으로 걸음마를 탈수 있었던것도, 남보다 불행했던 결혼생활도, 은혜를 믿음으로 갚았다가 결국은 사기를 당했던 일도, 병마와 싸우며 지켜온 보귀한 생명도... 수도 없이 되풀이 되는 허다한 역경속에서도 그녀는 절망하지 않았고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때일수록 그녀는 역경과 어려움을 피할수 없는 운명과 현실로 달갑게 받아들였다.

“세월이 약이지요. 사람이 살면서 어찌 어려움 하나없이 순탄하기만 하겠어요. 어려운 역경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과감히 맞받아 나가다보면 인생도 행복해질 때가 있기마련이지요.” 김영옥의 30년 역경인생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였다.

좌절과 실패에 굴하지 않고 한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는 오뚜기정신으로인생의 험난한 역경과 도전하고 참된 삶을 새롭게 개척하고 살아가는 사람, 김영옥과 같은 우리 시대의 녀성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조선족녀성들의 삶의 본보기가 아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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