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지난 29일,왕청현당위 선전부, 현후대관심위원회가 주최한 김상화렬사 추모활동이 대흥구진 후하촌에서 성대히 거행되였다고 두만강신문이 전했다.
후대들에 대한 애국주의교양을 강화하고 렬사들의 혁명정신을 대대손손 이어가게 하기 위한데 취지를 두고 조직한 이번 좌담회에는 “5로”대표와 소학생대표, 현인민무장부, 현국가세무국, 대흥구진의 민병대표 240명이 참가했다.
왕청현 후대관심사업위원회 최금철 부주임이 렬사순국의 시대배경과 영웅업적을 소개하면서 후대관심사업책임자들이 애국주의교양기지건설과 수축에 중시를 돌리고 청소년들에 대한 전통교양을 강화하길 희망했다.
회의 참가자들은 또 현성과 60여리 떨어진 후하촌에 자리잡고있는 김상화렬사기념비와 렬사가 희생된 곳을 찾아 렬사를 추모했다.
1900년 2월, 길림성 연길현의 한 빈곤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난 김상화렬사는 1924년에 왕청현 하마탕향으로 이주해 1930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 1931년에 중공왕청현위 제2임서기로 임명되였다.
1931년 2월 2일, 그는 하마탕 대방자촌에서 북하마탕 당지부서기 한영호와 함께 무장력량을 확대할데 대해 연구하다 일제토벌대에 체포되였다.
적들은 김상화의 두 엄지손가락을 쇠고리에 끼워 나무에 매달고 혹독하게 때렸다.
두 손가락은 뼈까지 들어 났으나 그는 의연히 당의 비밀을 고수하기 위해 한마디도 루설하지 않았다.
적들은 또 고추물을 코구멍에 부어넣고 손톱눈에 참대바늘을 찌르는 등 참혹한 형벌로 김상화를 구타했다. 1931년 2월 5일, 적들은 사방산밑에서 김상화를 살해한후 작두로 그와 한영호의 머리를 잘라 대방자촌중심에 있는 나무에 달아 효시했다.
하마탕향 항일군민들은 적들의 위협에도 굴함없이 중화민족의 해방사업을 위해 렬사들의 피어린 발자취를 따라 항일투쟁을 계속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