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안혜신 기자] 세계 최강국 미국의 대통령이 문자 그대로 허리를 `직각으로` 굽혔다. 그것도 이제 고작 다섯살밖에 되지 않은 흑인 꼬마 아이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백악관 서관(West wing)에 걸려있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사진 한 장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고 2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지난 수십년간 백악관 서관에는 대통령의 직무 수행 모습 등이 담긴 사진이 전시된다. 사진은 항상 가장 최근 것들로 신속히 교체되는 것이 관행. 하지만 그 자리에서 무려 3년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진이 있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다섯살 꼬마아이 앞에서 무릎을 꿇고, 꼬마아이가 대통령의 머리를 만지고 있는 사진은 백악관 서관에 3년동안 이례적으로 전시돼있다.
한 흑인 남자 아이 앞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90도로 깍듯하게 인사를 하듯 허리를 숙이고 있는 사진이 그것이다. 정장차림을 한 아이는 허리를 숙인 오바마 대통령의 머리를 귀엽다는 듯(?) 쓰다듬고 있다.
사진 구도는 엉망이다. 왼쪽에 서있는 아이 아버지의 머리는 잘려버렸고 아이의 형은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릿하게 처리됐다. 하지만 이 사진은 3년째 백악관을 방문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끌고 있다.
꼬마 아이는 컬럼비아에 사는 제이콥 필라델피아. 사진은 그의 아버지이자 전 해군이었던 칼튼이 2년 간의 백악관 근무를 마치고 떠날 때 찍힌 것이다. 당시 아이의 나이는 다섯살이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당시의 대화를 더듬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제이콥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내 머리카락이 아저씨 머리카락과 (촉감이) 비슷한지 알고 싶어요"라고 말을 던졌다. 처음에는 너무 작은 목소리라 대통령이 알아듣지 못해 다시 한 번 말해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직접 만져서 확인해보는게 어떨까?"라는 답과 함께 망설이는 제이콥의 눈높이까지 머리를 숙이며 "만져보렴 꼬마야"라고 권유했다. 제이콥이 머리카락을 만지는 순간 사진이 찍혔으며 오바마 대통령의 "어떻게 생각하니?"라는 물음에 제이콥은 "내것과 똑같아요"라고 답했다.
평소 인간적인 면모가 심심치 않게 부각됐던 오바마 대통령이지만 이번 사진이 새삼 화제가 된 것은 대선을 앞둔 이미지 만들기도 어느 정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NYT는 그동안 일부 흑인 지도자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 젊은이들을 위한 정책을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난해왔고, 따라서 흑인 꼬마 아이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진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이 흑인들의 상징과 같은 존재이며 지지자라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려 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과는 별개로 사진 자체가 주는 독특한 느낌은 여전히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끌고 있다.
사진을 찍은 피트 소우사 백악관 전담 사진사는 "사진가들은 사진을 찍을 때 평범치 않은 순간에 대해서는 눈치를 채기 마련이지만 이 사진을 찍을 땐 그런 생각을 못했다"면서 "아마 미국 대통령이 어린 아이 앞에서 기꺼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인 모습이 사람들의 인상에 깊게 남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 미디어다음
안혜신 (ahnhye@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