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et] 서양에서는 팝스타가 녹음실에서 안방극장으로 넘어오는 경우가 드물다. 음악과 연기를 동시에 해보려고 했던 가수들은 대부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긴 하다. 래퍼 아이스티(Ice-T)는 미국 드라마 '로 앤 오더 (Law and Order)'에 출연해 음악 하는 연기자로 거듭났다.
반면 한국에서는 아이돌 가수들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수와 연기자를 병행하는 이들이 음악 활동과 드라마 촬영을 동시에 뛰면서 바쁜 스케줄을 어떻게 소화해 내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가장 대표적인 가수 겸 연기자로 배수지를 꼽을 수 있다. 인기 걸그룹 ‘미쓰에이’의 멤버인 수지는 지난 몇 년 간 드라마 섭외 일 순위 배우로 발돋움했다. 아이돌그룹 ‘제국의아이들’의 임시완도 2014년 방영된 tvN 드라마 '미생'에서 주인공 역을 맡아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어느 케이팝 그룹을 선호하던, 그 팀의 멤버 중 한 명 정도는 드라마 연기에 도전해본 경험이 있다고 보면 된다.
음악도 하고 연기도 하는 '연기돌'이 많아진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한국에 드라마를 제작하는 방송사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한국 드라마가 중국, 일본, 필리핀, 남미, 유럽 등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주요 수출 상품이 된 이후 많은 배급사들이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채널이 늘어나면서 재능 있는 연기자들을 섭외하려는 곳도 많아진 것이다. 연기자를 꿈꾸는 젊은 아이돌 가수들이 도전해 볼 수 있는 역할도 다양해졌다.
요즘엔 MBC, KBS, SBS 등 3대 지상채널 외에도 JTBC, TV조선, 채널A, tvN 같은 케이블 채널에서 인기 드라마가 탄생한다. 지난 2012년 tvN이 제작한 '응답하라 1997'은 솔로가수 서인국, 그룹 ‘에이핑크’ 멤버 정은지, ‘인피니트’ 멤버 호야를 주연으로 캐스팅해 큰 성공을 누렸다.
온라인에만 게재되는 웹드라마 시리즈도 늘고 있다. 일반 방송사보다 적은 예산으로 기획되는 웹드라마는 신세대 시청자들을 겨냥한 콘텐츠다. 적은 예산 때문인지 웹드라마 제작사는 연기 경험이 부족한 케이팝 아이돌도 선뜻 섭외한다.
이 전략은 양측 모두에게 일석이조인 셈이다. 가수들은 큰 부담 없이 연기에 도전해 볼 수 있고, 웹드라마 제작진은 출연자 명단에 유명인사를 올리게 된다. 네이버 TV캐스트에 방영된 웹드라마 '뱀파이어의 꽃'에는 아이돌 그룹 ‘에이젝스’ 멤버 네 명이 출연했다.
아이돌 가수들이 대부분 소속사와 전속 계약을 맺은 '직원'이라는 점도 의미가 있다. 소속사는 가수들에게 투자한 만큼 수익을 돌려받고자 할 것이다. 케이팝 연습생들은 노래, 춤 연습을 비롯해 연기 수업까지 받는다. 드라마에 출연하면 그만큼 수익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편 데뷔한지 오래됐고, 예전만큼 활동이 줄어든 가수들에게 드라마 출연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최근엔 데뷔한지 5년 정도 지난 가수들이 연기에 뛰어들고 있다. 드라마 '미생'으로 연기 실력을 인정 받은 임시완 외에도 ‘제국의아이들’ 멤버 박형식이 여러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아 활약하고 있다. 그는 12월 방송예정인 KBS 드라마 '화랑: 더 비기닝'에도 출연한다. 걸그룹 ‘에프터스쿨’의 나나도 tvN이 미국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굿와이프'에 출연해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드러냈다.
한국 드라마는 미국 드라마보다 방영기간이 짧기 때문에 촬영 기간도 단축된다. 촬영기간이 짧기 때문에 가수 겸 연기자 활동이 가능할 수도 있다.
해외에서 제작되는 '왕좌의 게임’, '셜록' 같은 인기 드라마는 여러 시즌을 걸쳐 방영되지만 한국 드라마는 몇 개월 사이 촬영과 방영을 동시에 마친다. 또 액션 장면은 야외 촬영보다 스튜디오에서 찍는다. 즉 한국 드라마는 배우가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비교적 적어서, 연기와 가수 활동을 동시에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이다.
한국 드라마에 관심을 갖는 해외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케이팝 아이돌이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 드라마를 보기도 한다. 이 점을 알고 있는 제작자 입장에서 아이돌을 섭외하지 않을 수가 없다.
크로스오버 활동을 하는 연예인을 향한 관심이 한국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사이 케이팝 아이돌로 시작해 멀티미디어 연예인으로 거듭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어버렸다. 독특한 시스템을 가진 한국 연예계에서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영국 출신 팀 알퍼씨는 한국에 살며 작가 겸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 이하나 코리아넷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