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의 첫장을 펼치며 한해동안의 계획에 마음이 벅찼던 날이 어제 같은데 어언 열두번째 장을 번지게 되는 오늘이다. 류수는 못잡는 법. 세월아 멈추어라는 더더욱 당치 않은 짓, 나한테도 이팔청춘이 있었고 이쁜 20대, 바쁜 30대가 있었고 여유로 맞는 40대가 막 지나려고 한다.
해마다 12월이면 그러하듯이 지난 한해를 돌이켜 보게 된다.
올 한해에 제일 인상적이였던 일중의 하나가 있다.
30대의 한 후배가 “젊은이들이 하는 일을 잘 리해해주시고 도와주세요”라고 나한테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솔직히 뭘 두고 그런 부탁을 했었던지 기억을 못할 정도로 쇼크였다. 뉴앙스로 보면 내가 늙었다는 뜻인것 같았다. 40대에 벌써 들을 소리가 아닌듯 싶어 마음이 불편했던 기억뿐이다.
무척 서운한 나머지 그날밤 잠을 설치게 되였다. 나이 40대 후반이라 하지만 생각하는것, 추구하는것에 뒤지지 않는다고, 그럴려고 이를 악물로 노력하는중이라고 자부를 해왔는데 엄청 존경을 받는 자신의 위치가 싫고 어찌보면 뒤에 둬발자욱 물러서서 젊은 사람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기만 하라는 뜻인것처럼 느껴졌다.
“리해해 달라”는 말은 잘못이 있어도 묵과해 달라는 말로 들렸고 “도와달라”는 말은 이젠 뒤자리에서 수습을 해달라는 말로 들렸다.
문뜩 연변 어느 정부기관에 출근하는 친구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하루라도 빨리 퇴직하고싶어. 주위에 맨 젊은이들 천지여서 재미도 없고 할 일도 없어…”
나이 갓 50인 친구가 어이없이 느껴졌었는데 그 마음이 리해될듯도 싶었다.
여태껏 아끼던 후배였는데 그날 이후로 마음이 건성건성해짐을 어쩔수 없었다.
그러던 며칠전 전철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자리잡고 앉은 내 눈앞에 60대 후반으로 추측이 되는 어머니 한분이 서계셨다.
인차 일어나서 자리를 권했다. 물론 고맙다면서 앉으실줄로 알았다.
“왜 그러세요?”
“어서 앉으세요.” 의아한 눈빛이 그분한테 전달이 될가봐 눈길을 피하면서 다시 한번 몸짓으로 권했다.
“나 그렇게 늙지 않았는데요…”
순간적으로 그분의 웃음띤 얼굴에 담겨있는 말귀를 느꼈다.
늙은이 취급 하지 말아 달라. 나 한두역전 정도는 문제없이 서서 갈수 있을 정도로 아직은 건강하다…
일순 어색하기 그지없는 분위기에 다시 앉지도 못한채 목적지가 아닌 다음 역에서 내리고말았다.
왠지 너무 리해가 가는 그분의 심정이였다.
나이가 드는 서글픔을 구태여 알려주지 않아도 매일매일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고 있음이 틀림없을것이다.
하지만 자리를 권하지 않을수 없는 나의 립장에도 틀림이 없을것이고…
공원벤치에 앉아서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생각을 해보았다.
저 별들… 하나 하나 자리다툼하지 않고 각기 제자리에서 빛을 내는 그들이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저들속에도 앞자리 뒤자리가 있을가.
오랜 별과 새별이 있을가.
제일 이쁜 별과 덜 이쁜 별이 있을가…
서로 다른 그래프이지만 대체로 누구나 비슷한 좌표축에 곡선을 그으면서 나중에는 점으로 끝나는것이 인생이 아닐가. 계절이 사계절인것처럼 인생도 태아로부터 로년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정해진 몫이 차례질것이다. 그 몫을 하나하나 다 챙기고 나는 이미 중년의 좌표에 도달했다. 아쉬움이 남은 자리에 연연하는 바보같은 욕심을 버려야 할것이다.
선배만을 챙기며 살아온 우리에게도 선배가 될 자격이 차례지고 그래서 그 대접을 받으라는데 노여움이 앞서는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작은 인간성때문이 아닐가.
생물적인 나이와 정신적인 나이의 차이를 피타는 노력으로 메꾸면서 사는 우리 중년의 모습이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목표가 될수도 있지 않을가.
“지나간 젊음을 아쉬워 말고 아름답게 나이를 먹자.”
래년의 목표가 정해진것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벤치에서 일어나면서 전화기를 눌렀다.
이쁜 후배가 그리워져서였다.
리홍매(일본거주 길림신문 특파원)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