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민상식 기자]지난해 무직 A(54) 씨 등 4명은 비정액 수표(금액이 정해진 수표 이외의 자기앞수표)를 이용한 수표위조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A 씨는 지난해 2월 중순께 경기 남양주시 농협중앙회 한 지점에서 비정액 자기앞수표 13만원권 8매를 발급받았다.
같은 시기 위조책 B(58ㆍ무직) 씨는 브로커를 통해 농협발행 1억원권 수표 복사본 3매를 입수했다. B 씨는 13만원권 자기앞수표 3매의 수표번호, 액면가를 특정 화공약품으로 지웠다. 이어 칼라잉크젯으로 번호, 금액을 1억원으로 위조해 총 3매를 출력했다.
지난해 2월 16일께 인출책 C(41ㆍ무직) 씨는 위조한 1억원수표 3매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태평로지점에서 은행창구를 통해 자신의 계좌로 입금했다. 이어 타지점에서 현금 3억원을 인출했다.
사건 당시 위조수표 감별기는 위조수표를 구별해내지 못했다. 13만원권 진본 수표에 금액, 일련번호만 바뀐 일명 ‘쌍둥이수표’였기 때문에 감별기가 인식을 하지 못한 것이다. 위조수표 감별기는 종이의 질과 수표 뒷면의 위조방지 형광물질 만을 인식할 수 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13만원권 자기앞 수표 3매의 금액과 일련번호를 고쳐 1억원짜리 수표로 위조해 입금한 뒤 3억원을 현금으로 인출한 혐의(위조유가증권행사 등)로 A 씨와 C 씨를 구속하고, 알선책 D(60ㆍ대부업체 운영) 씨에 대해서는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13일 밝혔다. 경찰은 현재 달아난 위조책 B(58) 씨의 행방을 쫓고 있다.
농협 태평로 지점 관계자는 “사건 당시 수표가 아주 정밀하게 위조돼 은행창구의 직원도 구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경우처럼 수표번호, 액면가만 정교하게 위조하면 사람 육안으로 구별이 불가능하다”면서 “이 사건 이후 발행 수표마다 암호를 부여하는 등 위조방지 대책을 보완했다”고 덧붙였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위조단은 검거에 대비해 점조직으로 활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위조단 상호간 실명도 모른채 ‘김사장’ 등의 호칭으로 불렀고, 주기적으로 번호를 변경한 대포폰으로 연락을 취했다.
경찰은 특히 비정액수표 위조사실을 금융당국 등에 통보해 지난해 9월부터 비정액 자기앞수표 1억원 이하와 1억원 이상의 수표색상, 두께, 특정문영 등을 바뀌게 했다. 경찰은 또 금융감독원, 조폐공사 등 관계기관에 위조수표 감별기에 대한 성능보완을 의뢰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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