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우리 노래 100년 이야기(10)
고향은 어머니와 함께 이 세상에서 가장 정답고 따뜻한 말이다. 고향, 이 한마디에서 많은 아름다운 정경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속에서 우리는 마을앞 동구밖에서 푸르른 가지를 늘어뜨리고 작은 바람결에도 설레며 서있는 한그루 수양버들도 만나게 된다. 고향의 수양버들, 그 정다운 모습을 중국조선족 대표시인 김성휘는 가사 《수양버들》에서 한폭의 그림으로 보여주었다.
반갑게 맞아주고 바래여주는
마을앞 수양버들 세월의 동무
세월은 흘러가도 변함이 없이
고향을 지켜선 새파란 수양버들
까치 우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친구들을 기다리는 고향의 동무
동구밖 시내물에 머리채 감고
큰길목을 바라보는 정다운 수양버들
고달프던 옛날은 없었던듯이
새 아침을 즐기는 마음의 동무
고향의 자랑을 한몸에 안고
밤낮으로 춤추는 랑만의 수양버들
김성휘 작사, 허원식 작곡으로 된 이 가요 《수양버들》은 1981년에 창작되였다. 이 작품은 작곡가가 지난세기 20~30년대의 대중가요 음조를 바탕으로 새롭게 구사한 작품으로 의미가 있다.
가요선률은 대중가요의 특징적인 잔잔한 음률에 예술가요적인 요소를 적절하게 도입하여 정서적이고 미적인 효과를 창출해내였다.
이 노래를 작곡한 허원식은 룡정 덕신향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여났다. 그는 변변한 악기 하나 볼수 없는 두메산골에 살다가 연변사범학교 음악반에 시험쳐서 붙어 시골의 자랑이 되였다.
1953년 7월, 학교를 졸업하고 연변가무단의 성악배우로 배치받아온후에도 음악리론공부를 멈추지 않았고 작곡관련 서적들을 탐독하였다. 1956년 9월 심양음악학원 작곡학부에 붙었고 1961년 9월 졸업과 동시에 모교에서 편곡법교원으로 교편을 잡고 일하다가 1963년 1월 연변가무단에 전근되여와서 창작실 부주임을 맡았다.
작곡가 허원식은 1954년 처녀작을 발표한 이후 바이올린협주곡 《나의 고향》, 교향곡《아침해 솟는다》, 기악곡《저녁노을》, 교성곡《두만강의 노래》, 성악협주곡 《유아자선생에게 화답합(모택동 시)》, 가극《고령감의 꿈》, 가극 《조만근》, 가요 《북산처녀(최정연 작사)》, 《벌판에 붉은 해 솟았네(리행복 작사)》, 《백산의 붉은 꽃(한원국 작사)》, 《사랑하는 내 나라(김응룡 작사)》 등 다양한 종류의 많은 작품을 창작하였다. 1983년 66수의 성악작품을 정선하여 묶은 가곡집 《꽃피는 우리 살림》을 간행하였다.
작곡가 허원식은 다년간의 음악창작실천가운데서 끊임없이 창작기교를 벼려왔다. 그는 가요창작에서 주제사상을 선명하게 표출하기 위하여 주도선률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관통시키는 수법을 사용하였다. 그의 작품은 음악동기가 생신하고 흐름이 거창하고 폭이 넓으며 들끓는 절주로 사람을 흥분시키는 매력을 가지고있다. 특히 선률에 민족음악의 정서를 도입하기 위하여 의식적으로 민요, 판소리, 창극과 많은 민속음악을 탐구하면서 민족음악의 진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자신의 작품에 유효하게 표현하였다.
작곡가 허원식이 창작한 많은 음악작품들은 중국조선족음악의 보물고에서 소중한 보석처럼 광채를 뿌린다.
/기고인 석화(시인)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