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살만 왕세자 곧 왕위 승계" 보도 잇따라]
- 英매체 "이번주 왕권 교체"
최근 '피의 숙청' 사태는 권력 이양을 위한 작업
국왕 종신제 유지하는 아랍 왕가 전통 깨질 듯
- 美서도 우려 목소리
"숙청·내전 개입 등 지나치게 급진적"
중동정세 악화 가능성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32)이 아버지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82) 국왕으로부터 왕위를 조기 이양받을 것이란 관측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16일(현지 시각) 사우디 왕가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왕권 교체가 오는 20~25일 무렵 이뤄질 계획"이라면서 "살만 국왕은 퇴위하며 '두 성지(메카·메디나)의 수호자'라는 상징적인 타이틀만 갖고 영국의 여왕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아랍권 매체 라이 알욤도 최근 "빈살만이 지난 4일 부패 혐의로 유력 왕자와 전·현직 장관 등을 대거 체포한 것은 권력 이양을 위한 작업"이라면서 "조만간 살만 국왕이 물러나고 빈살만이 즉위한다는 공식 발표가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사우디 정부는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영 방송인 알아라비아가 지난 8일 '속보: 빈살만 왕세자, 국왕 즉위 임박'이라는 메시지를 트위터에 올렸다가 급히 삭제하는 '실수'를 해 왕위 조기 이양설은 점점 확산하고 있다. 아랍 일간 알 마나르는 소식통을 인용해 "빈살만이 지난 9월 살만 국왕의 건강 문제를 이유로 왕권 이양 대책반을 꾸려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며, '왕실 내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요 인사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라'는 지시를 정보부에 내렸다"고 보도했다. 알 마나르는 "빈살만 왕세자의 최근 조치는 단순한 반부패 운동이나 권력 강화가 아니라 왕좌에 도달하기 위한 발판 닦기 작업"이라면서 "그의 즉위는 시간문제"라고 했다.
빈살만이 왕권을 조기 이양받는다면 사우디 왕실은 물론 아랍에미리트(UAE)·쿠웨이트·바레인·모로코 등 아랍 왕정국가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아랍권에서는 쿠데타로 축출되지 않는 한 국왕은 종신직을 지키는 것이 전통이다. 아랍 왕가의 우두머리 격인 사우디가 이 전통을 깬다면 비슷한 사례가 다른 나라 왕가에서도 도미노 현상처럼 나타날 수 있다. 2013년 카타르의 하마드 국왕도 이 전통을 깨고 30대 아들인 타밈에게 권력 계승을 한 전례가 있다.
미국 정부 내에서는 빈살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미국 언론이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정부 내에서 빈살만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빈살만의 열렬한 후원자이지만, 일부 미 외교관은 '빈살만의 충동성 때문에 중동 정세가 악화할 것'이라고 걱정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필립 고든 전 백악관 중동·아프리카 담당 특별 보좌관은 NYT에 "빈살만이 왕자들과 정권의 기둥(장관)들을 너무 많이 제거하고, 예멘 내전과 같이 비용 지출이 큰 지역 문제에 계속 개입하다간 외국 투자자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빈살만이 국왕에 오르면 그는 '사우디는 이슬람의 종주국이자 중동 패권국'이라는 입장을 재천명하고, 맞수인 이란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우디 정부 고위 관계자는 데일리메일 인터뷰에서 "MbS(빈살만의 영어 약칭)의 다음 목표는 이란과 친(親)이란 레바논 무장 정치조직인 '헤즈볼라'에 대한 공격"이라면서 "걸프 아랍 왕가의 연장자들이 '그러면 안 된다'고 말리고 있지만, 전혀 듣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쿠웨이트의 알 사바(88) 국왕이 MbS를 '성난 황소'에 빗댄 것"도 "이란에 대한 그의 강경한 자세 때문"이라고 했다. 빈살만은 이스라엘에 '헤즈볼라를 쳐달라'고 요청하고 있으며, 직접 헤즈볼라를 칠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최근 예멘· 이라크·시리아·레바논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며 사우디를 위협하고 있다.
[노석조 기자 stonebird@chosun.com]
출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