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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수기]나는 행복을 느끼며 산다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9.02.27일 10:58



리경 (할빈시도리조선족중심소학교)

  (흑룡강신문=하얼빈)누군가 인생의 행복도 별 것 아니고 인생의 즐거움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사람이 꼭 물질적으로 부유해야만 행복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밝은 두 눈이 있어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고 건강한 두 다리가 있어 원하는 곳을 돌아 다닐 수 있으면 즐거운 것이며 목 마를 때 시원한 물 한모금만 마실 수 있어도 행복한 것이다. 그렇다.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도 있고 사소한 것에도 있으며 언제, 어느 곳에나 있다. 그건 각자의 느낌 나름에 달렸다.

  나는 교원이라는 직업에서 무한한 행복을 느낀다. 세상은 넓고 할 일도 많아서인지 이 세상에는 별의별 직업이 다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마음속에 스승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의 권고라 할가, 내 마음 속의 우상으로 살아오신 어머니의 삶을 지켜보아서일가, 내가 어머니의 뒤를 이어 코흘리개 아이들의 선생이 된지도 어언간 27년이다.

  나는 가끔 내가 교사가 아니였더라면 무슨 일을 지금처럼 잘 할 수 있을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엄격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융통성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곧은 성격 때문인지 내게는 언제부터인가 '호랑이선생'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나니기 시작했다. 내가 새로운 반급을 맡을 때마다 처음 며칠간 이 융통성이 없는 선생 때문에 학생은 물론 학부모들까지 나의 기색을 살피군 하였는데 그것은 잠시에 그쳤다. 사랑과 협동, 화목과 대화는 그들에게 기쁨을 주고 보람을 주고 희망을 주었기에 나는 그들의 눈에 '종이호랑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사소한 일이나 어떤 일에도 만족 할 줄 아는 사람만이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보다. 몇년전, 9월 새학기를 맞으며 4학년 담임을 새로 맡았는데 며칠 후 우리 반에 리용욱이라는 남자애가 전학하여 왔다. 용욱이는 2학년 때 한국에서 류학 온 학생인데 오는 날 부터 친구들과 다투고 때리며 싸우는 개구쟁이로 동네방네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몇달 후 일터가 옮겨지는 아버지를 따라 청도로 상해로 떠돌아다니다가 4학년 때 이렇게 불쑥 나타났으니 참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알고보니 용욱이도 불쌍한 아이였다. 엄마 젖을 떼기도전에 부모들의 리혼으로 지금까지 엄마 얼굴 한번 못 보고 자랐으니 한편 불쌍한 마음에 가슴이 짠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풀어놓은 망아지 같은 용욱이를 때로 회초리로 실컷 때려주고 싶은 울분을 억누를 수 없어 진짜 호랑이로 돌변하기도 했다.

  (아이고, 저런 애가 왜 우리 반에 와서 이렇게 날 미치게 하는건지?)

  그러다가도 선생님의 꾸중소리에는 일언반구없이 기가 죽어있는 용욱이를 보노라면 괜스레 마음이 저려나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낮아지고 번쩍 치켜들었던 손이 살며시 내려진다. 내가 사랑 할 사람도 없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도 없을 때 그 사람의 존재와 생활은 무의미와 무가치로 전략하고 만다고 한다. 사랑이 메말라버린 용욱이에게는 믿음의 빛과 애정의 향기, 달콤한 샘물이 간절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무실을 제집 나들듯 하는 용욱이가 또 교무실에 호출되였다.

  "용욱아, 선생님이 어디서 들은 소리인데 용욱이는 엄마 얼굴을 본 기억이 없다면서?…"

  "네."

  고개를 푹 숙이고 기여들어가는 소리를 내 뱉은 용욱이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더니 똘랑똘랑 눈물을 떨구는 것이였다.

  "그랬었구나! 음, 그렇다면… 엄마가 많이 그립겠네. 그럼 혹시 선생님이 용욱이 엄마가 되여주면 어떨가?"

  "네?… 선생님이… 네."

  의아한 눈길도, 당혹한 눈길도 잠시 용욱이는 금새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래, 좋아. 그럼 이제부터 난 용욱이 엄마고 용욱이는 내 아들이다. 우린 이제 한집식구인거다. 알겠지?"

  나는 용욱이의 손을 살며시 끌어당기며 포근히 감싸안았다. 용욱이는 언녕 바라기라도 한듯 덜컥 내 품에 안기였다. 순간 나와 용욱이는 동시에 눈물을 왈칵 내 쏟았다.

  (그래, 이렇게 자주 안아주고 다독여주어야지.)

  행복인지 괴로움의 시작인지 우리는 이렇게 '모자간'이 되였다. 아들이 하나 더 생긴 나는 용욱이가 숙제를 하지 않으면 함께 완성했고 공공물을 파손하면 내가 배상했으며 친구들이나 어른들한테 못할 짓을 했으면 내가 직접 찾아가서 깍듯이 사과까지 했다. 반급에서 친구들의 축복을 받도록 생일케익도 사다주고 달리기를 잘하는 그 애의 재능을 살려 자신감을 심어주고저 체육선생님께 간절히 부탁하여 특별훈련을 받게 하였다. '정성이 지극하면 천년 묵은 고목에도 꽃이 핀다'고 용욱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도리구 소학생봄철달리기운동회에서 일등의 영예을 따안았다. 어디 이것 뿐인가? 그가 쓴 "선생님도 엄마다"라는 글이 한국KBS에서 주관한 재외동포중소학생글짓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사랑과 격려는 기적을 낳고 사람을 일어서게 한다고 지금 중학교에 다니는 용욱이는 시간만 나면 날 보러 찾아온다. 그는 선배랍시고 후배들에게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며 짧은 '특강'을 하는데 집에서는 아버지께 효도하는 효자로 학교에선 바르고 착한 학생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용욱이처럼 처음에는 '호랑이선생'이라고 멀리서 그림자만 보아도 자취를 감추던 애들이 졸업 후 선생님이 보고 싶다면서 과일구럭이며 예쁜 꽃다발을 한아름씩 안고 찾아오는 애들이 부지기수다. 심지어 '늦둥이' 내 아들을 보고 자기도 결혼해서 딸을 낳으면 사돈을 맺자며 간이 큰 롱담을 건네는 제자도 있다. 교사라면 아마도 거의 비슷한 경력을 가지고 있겠지만 해살 같은 따뜻한 마음을 지녔다면 설사 뛰여난 말주변이나 천재와 같은 재능이 없어도 오직 가족같은 사랑으로 주변을 돌볼 줄 아는 진정 지혜로운 사람답다는 소리를 들으며 행복한 삶을 살 것이다.

  나만의 행복을 찾으며 살 줄 아는 정신의 소유자가 되면 혹시 누군가는 아주 하찮게 생각하는 일에서도 얼마든지 제나름의 소중한 행복을 느낄 수 있듯이 나는 내가 조선어문교원이라는 것이 행복하고 자랑스럽다. 어쩌면 중국이라는 이 대국에서 소수민족의 언어인 조선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교사로서의 영광이고 사명이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조선어를 외국어공부하듯 힘들어 하는 산재지구의 아이들에게 정확한 발음소리가 나오게 하려면 읽고 말하기를 수없이 반복하느라 목에서 겨불내가 날 지경이다. 더우기 문장의 뜻을 리해시킬 때는 아무리 긴 문장일지라도 한마디, 한구절씩 먼저 중국어로 번역해서 설명한 후 다시 우말로 수업하는 방식을 택하는데 거기에다 리해하기 쉬우라고 때로는 개그맨 노릇까지 꺼리김없이 해야 한다. 하학종소리가 울릴 때면 송골송골 맺혔던 땀방울들이 뒤잔등에 싸늘하게 쫙 스며들기도 하는데 가르침의 어려움 때문인지 저도 모르게 찾아오는 안타까움과 허탈감에 몸과 마음이 지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교사들중 동북3성의 조선어문교원들이 제일 고생이 많고 제일 아름답다."는 말은 지난해 10월, 연길에 조선어문교사연수를 갔을 때 한 교수님이 연설에서 한 말인데 그 당시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래, 세상에서 가장 허망한 약속이 바로 '나중에'라고 하는데 나에게 주어진 '현재'라는 선물에 즐거워하며 행복을 느끼자!)

  그렇다! 우리말 우리글을 가르치는데 좀 힘들면 어떻고 좀 괴로우면 어떠할소냐? 이렇게 평생을 조선어문을 가르치면서도 싫증 한번 느끼지 않은 나, 내 마음속에 느껴지는 행복은 이렇게 순간순간 달콤하기만 하다.

  사실 주관적인 감수로서 사람마다 조금씩은 차이가 있겠지만 행복이란 별 것이 아니다. 별로 좋은 직업이 아니여도 남들처럼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직업에 종사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신이 즐겁다고 느끼면 행복한 것이고 그의 인생은 행복으로 충만되여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조금은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가정에는 언제나 여유있는 표정을 지으며 항상 나만 바라보는 사랑하는 남편과 귀여운 두 아들이 있어, 학교에는 초롱초롱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아들딸들이 있어 더없이 행복하다. 한편 김씨 가문의 종가집며느리로서 20여년동안 시댁식구들과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해마다 제사상 몇번씩 꼬박꼬박 챙기면서도 깔깔깔 웃음을 잃지 않는 나의 즐거운 인생, 나는 내 평생의 직업인 교육사업에 충실하는 건 물론 언제 어디서든 우리 조선민족의 소중한 전통문화를 지켜간다는 자부심에 늘 행복하기만 하다. 이 순간도 나는 내 눈에 보이는 사람들, 동물과 식물, 지어는 길가에 나뒹구는 작은 돌멩이마저 귀엽고 사랑스럽다. 모든 사물이 매력 덩어리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아쉬움도 많았고 후회와 회한으로 가득한 시간들도 있었지만 힘들면 잠시 쉬여가고 막히면 한발 더 돌아서 가다보면 앞에는 분명 새날의 새로운 소망과 희망이 있는 것이다.

  나의 사전에는 '나중'이란 단어가 없다. 지금 느끼고 있는 이 시각의 행복 뿐이다. 집에도 학교에도 어디에나 행복이 차넘친다. 나에게 주어진 지금, 나는 어떤 상황에 부딪치더라도 지금 당장 실천하여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일을 만들어 갈 것이다. 이제 곧 향긋한 봄 내음이 내 코로, 내 가슴으로 들어와 향기로 넘칠 것이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늘어가는 내 이마의 주름을 스쳐지날 때마다 따뜻한 해살이 내 눈가의 주름마저 다림질 해 줄 것이다. 아마도 마음속까지 살며시 스며들면서 평온과 행복이 저절로 찾아 올 것같은 느낌에 나는 벌써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나는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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