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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냥하던 일본애는 어데로 갔을가?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0.09.14일 09:56
  자전거를 타고 서성진을 경유해 룡문호로 가는 길이였다.서성진에서 한 동네를 지나다가 밥동냥하는 일본어린애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무릎을 딱 꿇고 앉아서 밥을 먹는데… 기차게도 마지막까지 흐트러짐 하나 없더라” 어머니가 어린시절 겪었던 일이라면서 오래전에 들려주던 옛말이였다.밥동냥을 온 어린 일본애가 너무 불쌍해 밥을 줬더니 두 무릎을 꿇고 앉아 곱게 밥을 받아 먹고는 골백번 허리 굽혀 인사하면서 가더라는 것이였다. 1945년 8월, 일본천황이 무조건 투항을 선포한 후 광복을 맞은 후의 화룡현 이도구에서 있었던 일이였다.당지에서는 “서성 10대”라고 불렀던 마을인데 그 마을에 30년대말부터 40년대 중반까지 일본인들이 모여살았던 일본개척단이 있었다는 것이다. 광복과 함께 풍비박산이 난 일본인들의 운명은 그렇게 어린 애들까지도 도처로 류리걸식하게 만드는 비참한 현실이였던가 본다.

  



이도구일본인개척단이 있었던 마을의 현재모습.

  일본인개척단이 있었다고 하는 서성 10대는 내가 다니던 서성중학교의 바로 뒤마을이였다. 희미한 기억이지만 80년대 중반까지도 일본인들이 살았다는 판자집 건물은 소나 말을 키우는 마구간으로 사용되였던 기억이다.사료에 따르면 괴뢰국가인 만주국을 세운 일제는 1932년부터 만주개척단이란 이름으로 일본인들을 대대적으로 만주지역에 이주시킨다. 저들의 침략에 껄끄러운 항일군대와 그리고 무법천지 마적단과 맞써 싸울 수 있는 군대식 무장개척단이 가장 처음이였다.일본개척단은 관동군 식량보급 등의 병참기지와 병사 공급원, 자원개발, 국경경비 등의 역할을 맡았다. 1932년부터 1941년까지 10년간의 식민 제1기 동안에 괴뢰만주국에 이민한 일본인은 10만 5000호, 52만 5000명에 달하였다. 이어 1942년부터 1951년까지 10년간을 또 식민제2기로 정한 일본정부는 1951년에 이르러 제2기 이민계획으로 일본인 이민 총수 100만호에 인구 500만명을 채워 괴뢰만주국 총 인구의 8분의 1을 차지하게 하려고 야심찬 계획을 세웠으나 무조건투항하는 바람에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사료에 따르면 1936년을 전후로 화룡현 이도구, 왕청현 배초구 등지에 일본사람들이 거주하는 일본개척단이 세워지기 시작했다고 하니 일제가 제5차로 파견한 개척단인셈이다. 이도구에 들어온 일본개척단은 초기에 50여세대에 200여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모두다 일본 아끼다현(秋田县)사람들이였다고 한다.일본개척단이 이도구에 들어온 목적 역시 이곳의 넓고 기름진 평강벌과 풍부한 산림자원에 눈독 들이고 영구적인 침략과 략탈, 식민지통치를 이어나가기 위해서였다. 개척단은 이도구에 들어온 후 당지 룡포촌 농민들이 애써 일구어놓은 엄청난 면적의 옥답을 일전 한푼 내지 않고 차지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자기들은 농사를 짓지 않고 부근의 땅없는 조선족농민들에게 밭을 세놓아 다루는 착취방식을 취했다는 것이다. 적잖은 일본 남자들은 또 부근의 오도양차 림장에 가서 당지 농민들을 삯군으로 내세워 목재채벌부업을 했는데 대량의 목재가 팔가자 삼림소철을 통해 련속부절히 일본으로 실려갔다고 한다.

  



과거의 이도구 일본개척단 마을에서 바라본 기름진 평강벌.

  당지 백성들은 모두 일본개척단 주택구를 ‘일본단’이라고 불렀으며 그곳에 감히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사람들은 또 권세를 믿고 마음대로 당지 백성들을 우롱하고 괄세했다고 한다.자료에 따르면 이도구의 일본개척단은 해방전에 마을 동쪽에 또 50호를 용납할 수 있는 주택구를 세우고 개척단을 더 받아들이려 했지만 광복이 나면서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모두다 뿔뿔이 도망치는 운명을 면치 못하게 되였다.당시 쏘련군의 진공앞에 관동군이 방어선을 남쪽으로 후퇴시킨 가운데 수많은 일본인들이 쏘련군들에게 체포되여 쏘련으로 압송된채 억류생활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이도구에 있던 일본개척단의 일본사람들은 광복이 되여 2년쯤 후인 1947년도에 우리당의 인도주의 정책에 의해 일본으로 돌아 갔다고 한다.어머니가 어린시절 보았다는 밥동냥하는 어린 아이도 당시 이도구의 일본인 개척단의 일본아이였을 것이며 그 난리판에 류리걸식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다가 어데론가 사라졌을 것이다.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밥동냥하던 불쌍한 어린애가 눈에 얼른거리는듯 하다. 필경 아직 어린 애들에게야 무슨 죄가 있었겠는가?!

  



과거 일본인개척단 마을의 현재모습 일각.

  행여 과거 일본인개척단의 흔적이라도 찾을수 있지 않을가 싶어 마을에 들어 섰으나 마을은 한여름의 땡볕아래 쥐죽은듯 고요했다. 요행 마당에서 풀을 뽑고있는 60대 녀인을 만났으나 그는 이 마을에 옛날 일본개척단이 있었다는 말에는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이였다. 본마을 토배기가 아니고 후에 이 마을로 이사온 사람이라고 했다.마을을 떠나면서 묻혀버린 이야기들을 파내지 않는다면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다는 몰라도 아는 것 만큼이래도 적어두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 같다는 자아위안이 들기도 했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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