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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이 문제라고? 당신 같으면 낳고 싶겠나”

[기타] | 발행시간: 2012.09.04일 12:02
잇따른 아동 성범죄에 거리로 나온 엄마들… 자극적 언론보도에도 분개

“지금 안 나서면 다음 달에 더 심한 사건이 나올 겁니다. 엄마들이 얼마나 많이 모일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분노를 국회나 정부, 사법부에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저출산이 문제라고요? 당신 같으면 낳고 싶냐고 묻고 싶네요. 둘째 낳을 생각이 전혀 안 듭니다. 한 명 지키기도 힘든데 두 명, 세 명 늘어나면 엄마 한 사람이 지킬 수 있나요?” (인터넷 카페 ‘아동성범죄 추방을 위한 시민모임, 발자국’ 운영진 단아마미)

엄마들이 화났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아동 성범죄에 엄마들이 분노하고 있다. 가장 안전하다고 여겼던 집에서 잠을 자던 아이가 납치돼 성폭행당하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엄마들은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사건의 디테일, 피의자를 쫓아가는 언론과는 달리 엄마들은 피해자의 미래, 무너지고 있는 사회안전망을 우려하고 있다.

인터넷 카페 ‘아동성범죄 추방을 위한 시민모임, 발자국’은 지난 7월 말에 개설됐다. 경기도 여주에 사는 4세 여아가 40대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단신 기사가 발단이 됐다. 4세라는 나이가 충격적이지만 당시 언론에서 많이 다뤄지지 않았다. 범인 임아무개(41)씨는 부모가 생업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혼자 놀고 있는 여아를 아이스크림으로 유인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2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82쿡닷컴 회원들이 성범죄자 사형집행 및 강력범죄 엄정처벌을 요구하는 내용의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서있다.

2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82쿡닷컴 회원들이 성범죄자 사형집행 및 강력범죄 엄정처벌을 요구하는 내용의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서있다.

인터넷 카페 발자국 운영진 ‘단아마미’(33)는 3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4세면 정말 티 없이 맑은 아이이고 말도 어눌하고 소변도 못 가린다”며 “그런 아이가 성폭행을 당했다는데 언론이 무심해서 속상했다”고 말했다. 단아마미를 비롯한 세 명의 여성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카페를 개설했다. 단아마미 역시 4세 여아를 키우고 있다.

“조두순도 12년 밖에 선고를 안 받았잖아요. 여주 사건을 널리 알리려고 했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갖지 않았어요. 더 큰 사건이 터지면 주목을 받으려나 했죠. 그런데 한 달도 안 돼 나주 사건이 터진 겁니다. 이번 사건은 가장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는 집에서 벌어진 일이니 분노를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어요.”

단아마미는 지난 2일 서울 명동에서 열린 시위에도 참여했다. 이날 집회 신고를 낸 것은 또 다른 인터넷 카페 82쿡 회원 엄인경(36)씨다. 그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미혼 여성이다. 엄씨는 “예전에 쇠고기 촛불 때 몇 번 참석했다”며 “이번에 기사 난 것을 보고 가만히 있으면 그냥 넘어가겠구나 싶어서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고 말했다. 엄씨는 ‘즉흥적’으로 지난 달 31일 집회 신고를 냈고, 그가 올린 게시판 글을 읽고 40여명의 엄마들이 명동거리로 나왔다.

“예전부터 82쿡 회원이었는데 올해 봄부터 활동을 많이 했어요. 제가 사회 정치 경제 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그런데 이번 사안을 두고 남자들의 반응은 여자들과 달라요. 사이트에 ‘사형, 무기징역’ 이런 구호를 올려놨더니 남자들 반응이 ‘사형은 너무 심하지 않느냐’ 그러더라고요. 술자리 성희롱도 일어날 수 있는 실수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 자체를 뜯어고쳐야 해요.”

엄씨는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화학적 거세 같은 방법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성폭력 대책 중 하나로 “가정과 결혼을 보호하고 권장하는 사회환경”을 언급한 것에 대해서도 분통을 터트렸다. 엄씨를 비롯해 시위에 나선 여성들의 한결같은 지적은 우리나라 성폭행범들의 형량이 턱없이 낮다는 점이다.

“서민 아이들만 피해를 당하니까 국회의원이나 판검사나 윗분들에게는 딴 세상 얘기겠죠. 미국 의료보험 따라갈 생각하지 말고, 인천공항 매각할 생각하지 말고 선진국에 가서 성폭행범 형량이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파악해서 법 좀 바꿨으면 좋겠어요.”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하고 있는 필명 토끼이모(34)씨 역시 처벌 형량 현실화를 근본 대책으로 꼽았다. 그는 “지금 형량이 해외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어서 분노하는 부모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만족스러운 부분”이라며 “다만 그것을 사형이다, 무기징역이다 규정짓기보다는 형편없이 낮은 형량을 높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 역시 미혼이다.

“그것과는 별도로 재판부가 판결을 내릴 때 초범이라고, 술을 마셨다고 정상참작을 너무 많이 해줍니다. 합의를 했다고 해서 집행유예를 하는 경우도 있고요. 이런 저런 이유로 감형할 수 있는 것을 없애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그는 최근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도 지적했다. 최근 사건들이 아주 특수한 사이코패스, 정신질환자, 아동성애자의 특별한 케이스로 비춰질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사건들은 특이한 한 사람이 저지른 것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 자체가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형편없기 때문에 벌어진 문제”라고 비판했다.

“가정형편이 안 좋은 아이들, 방임아동이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근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대책을 분명히 마련해야 해요. 국회의 법 개정이나 입법 추진 상황에 대해서도 모니터링 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극적인 소재만 따라가는 언론 보도 행태를 비판했다. “아동성폭력 사건이 하루 3건 이상 일어나고 있는데 여주 사건처럼 전혀 조명 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사건은 이불 째 보쌈해갔다는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부분 때문에 언론이 벌떼처럼 달려드는 느낌을 받았다”며 “우리사회에 팽배해 있는 성범죄에 대해 오랜 시간 깊이 있게 취재하는 탐사보도는 실종되고 엽기적·자극적 다루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특히 피해 아이의 피해 정도를 너무 디테일하게 보도하는 것은 시간이 지났을 때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단아마미’는 역시 언론 보도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대책 논의가 아니라 자극적으로만 가니까 속이 터집니다. 피해자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어떻게 이런 범죄를 만들지 말아야 할지 논의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야동이 많다는 얘기는 맨날 듣는 얘기잖아요.”

그는 특히 인터넷 포털 기사에 오른 악성 댓글에 분노했다. 여주 4세 유아 성폭행 관련 기사에서 일부 네티즌들은 성폭행범을 옹호하고 부러워하는 듯한 댓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표현의 자유를 떠나서 그런 식의 악성 댓글은 못 올리게 해야 한다”며 “생각이 제대로 잡힌 사람들은 ‘미친놈’ 하고 그냥 넘어갈 수 있겠지만 초등학생들은 ‘멋있는 일이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다음 아고라에서는 ‘어린이 성폭행 뉴스 악플러를 고발한다’는 서명이 진행되고 있다. 3일 현재 1만여명이 참여했다. 인터넷 카페 발자국 회원들은 9일까지 공동 고소인을 모집해 악플러들을 고소할 예정이다.

82쿡, 발자국 등 인터넷 카페 회원들은 4일 오후 7시 서울역 광장에서 아동성폭력 추방을 위한 촛불을 든다. 8일에는 대전과 부산, 9일에는 광주에서도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단아마미는 온라인에 글만 올리다가 직접 거리로 나서게 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기사에 댓글만 다니까 점점 더 심각한 기사만 나왔어요. 이제는 성폭행범이 대문을 부수고 들어올 것 같아요. 엄마가 한눈 판 사이 아이를 데리고 갈 것 같습니다. 강아지처럼 묶어놓을 수도 없고 도대체 애를 어떻게 보라는 것인가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요. 범죄는 자꾸 진화하잖아요.”

조현미 기자 | ssal@mediatoday.co.kr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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