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생 성범죄, 6년 새 9배로 급증… 성폭행이든 성추행이든 징계도 큰 차이 없어]
학교 안팎 가리지 않고… 성인들 성범죄 모방하듯 동영상 찍고 협박하기도
"學暴으로 이어져 더 위험"
지난해 7월 광주광역시의 한 중학교 1학년 A양은 쉬는 시간 같은 반 남학생 B군으로부터 "보여줄 게 있다. 잠깐 시청각실에서 보자"는 말을 들었다. 시청각실에는 B군을 포함해 2명의 남학생이 있었다. 이들은 시청각실 문을 잠근 뒤 A양의 상의를 강제로 벗기고 성추행했다. 성추행은 이후 6개월 동안 계속됐다.
지난 5월 인천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은 같은 동네에 사는 1학년 여학생을 불러 "함께 뒷산으로 놀러 가자"고 꼬였다. 인적이 드문 곳에 이르자 남학생은 여학생에게 달려들어 성추행을 시도했다. 놀란 여학생은 남학생을 피해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다 넘어져 전치 2주의 타박상을 입었다.
충북의 한 고등학교 2학년 남녀 학생 5명은 1학년 때부터 1년간 같은 반 여학생 C양에게 '병원에 가서 숫처녀인지 검사해 백만원 내기를 하자'고 하는 등 성희롱했다.
◇학생 성범죄…6년 새 9.3배로 증가
전국 초·중·고등학생이 저지른 성폭행·성추행 등 성범죄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이에리사(새누리당)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받은 '2007~2012년 성 관련 사건 현황'에 따르면, 지난 6년간 학생 가해 성폭행·성추행 사건은 1141건이었다. 연도별 발생 건수는 2007년 65건에서 2008년 104건, 2009년 106건, 2010년 220건, 2011년 292건으로 급증세다. 올해 1~7월까지 이미 354건의 사건이 발생해 이미 지난해 발생 건수를 넘어섰다. 이런 추세라면 2007년 이후 6년 새 약 9.3배로 늘어나는 셈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지역별로는 대구가 173건으로 가장 많았고 광주 120건, 인천 108건, 전북 91건, 전남 83건, 경남 78건 순이었다. 한 청소년 성문제 전문가는 "일반적인 학교 폭력뿐만 아니라 학교 내 성폭력 사건도 대구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며 "지역사회의 권위적인 문화에 대한 일부 청소년들의 반항이 원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성폭행 동영상 찍어 협박
성폭행 후 금품을 요구하거나 협박하는 등 성인들의 성범죄를 모방하는 흉악한 수법도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경남의 한 고교 남학생이 채팅 사이트에서 알게 된 중학교 여학생을 불러 성관계를 맺고 이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남학생은 "동영상을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주겠다"고 협박해 30만원을 빼앗고, 자신의 친구들과도 강제로 성관계를 갖게 했다. 인천의 한 중학교에서는 남학생이 "네가 샤프로 찔러 다쳤으니 치료비를 내놓아라"며 수백만원을 요구했고 "돈을 내놓을 수 없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며 수업이 끝난 오후 5시쯤 남학생 탈의실로 여학생을 끌고 가 성폭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범죄가 흉악해지고 있지만 처벌이나 징계는 아직 미미하다. 피해자와 격리를 이유로 급히 전학을 시키거나, "아직 어리다", "학생이다"라는 이유로 교내 봉사 징계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성추행이든 성폭행이든 징계 수준이 큰 차이도 없다. 지난해 8월 같은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의 치마 밑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남학생은 학교 내 봉사 3일의 징계를 받았고, 같은 해 9월 술을 마시고 여중생을 성폭행한 부산의 한 고등학교 남학생도 학교 내 봉사 5일을 받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강은영 연구위원은 "성인은 돈이나 말로 유인하지만, 청소년은 그런 수단을 갖지 못해 상대적으로 무력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며 "청소년들의 성폭력은 학교 폭력과 연관돼 집단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