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위기 놓인 회사와 결탁해 가짜 계약서·공장 사진 제출
영광군·전남도·지경부까지 서류 무사통과… 보조금 내줘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총체적 관리 부실 속에 또다시 거액의 국고(國庫) 사기 사건이 벌어졌다.
전남 여수 시청 8급 공무원이 공금 76억원을 횡령한 사건에 이어 이번엔 전남도청 투자유치자문관이 기업 대표와 짜고 국가 보조금 7억여원을 가로챈 혐의 등으로 검찰에 구속됐다. 지자체와 계약을 맺고 기업 투자를 유치하면서 월평균 150만∼200만원씩 받던 투자유치자문관이 국가를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인 것이다.
2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조상철)와 전남도청에 따르면 도청 투자정책국 기업유치과 소속인 투자유치자문관 최모(43)씨는 작년 8월 부도 위기에 놓인 중장비업체 B사의 대표 김모(63)씨와 공모, 지방으로 이전하는 수도권 기업에 지급되는 국가 보조금을 가로채기로 마음먹었다. 이른바 '지방투자촉진 기업이전 지원 보조금'이었다.
수법은 간단했다. 김씨는 먼저 수도권에 공장이 없던 B사가 경기도 고양시·화성시에 공장을 갖고 있는 것처럼 속이기 위해 관련 서류를 위조했다. 공장 임대차 계약서는 물론, 'B사' 현판이 보이는 '가짜 공장 사진'까지 준비했다. 여기에 2013년 준공을 앞둔 전남 영광군 대마산업단지로 이전하겠다는 사업계획서와 보조금 신청 서류를 영광군에 제출했다. 자본금까지 바닥나 폐업을 앞두고 있던 B사는 영광 대마산단 3만3000㎡ 부지에 11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군은 김씨가 제출한 서류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최씨가 투자유치자문관으로 있던 전남도청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영광군·전라남도·지식경제부의 결재를 거쳐 올 초 B사에는 7억7000만원의 국가 보조금이 지급됐다. B사 대표 김씨는 이 중 2400만원을 최씨에게 따로 건넸다. B사는 보조금을 받은 지 한 달 만에 부도 처리됐다. 이에 영광군이 뒤늦게 김씨를 고발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B사 담당자로부터 범행 관련 자백을 받아냈지만, 그 사이 대표 김씨는 해외로 도주해버렸다.
검찰은 이후 사기 등 혐의로 최씨를 먼저 구속했다. 또 이 과정에서 최씨가 친구(구속)와 함께 수도권 기업 10여곳에 "국가 보조금을 받게 해주겠다"며 컨설팅 수수료 명목으로 2억3000만원을 받아챙긴 혐의도 새롭게 밝혀냈다.
영광군 측은 "서류상으론 하자가 없어 보조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전남도청도 "최씨가 대기업 근무 경력이 있는 데다, 도와 정식 계약을 맺고 수년간 일해온 자문관이라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경진 기자]
[안준용 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