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선양시 소가툰구 성교가두 대숙보촌 김영춘(74), 김정숙(73) 로부부는 모친을 50년, 큰엄마를 10년간 모시면서 화목한 4세대 가정을 이끌어가고있다.
1963년 중국야금부 체육훈련반의 축구운동선수인 김영춘씨와 선양케이블공장 로동자인 김정숙씨는 지인의 소개로 선을 보게 되였다. 선보는 첫날, 키가 훤칠하고 인물이 좋은 김영춘씨에 비해 김정숙씨는 인물이 수수하고 몸이 좀 통통한데다가 고아여서 시어머니로 될 석성남씨는 그녀를 마음에 썩 들어하지 않았다. 운명이라고 할가? 그들이 선보는 날에 온 동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며느리감이 좋다고 박수를 쳤다. 동네사람이 좋다고 하자 어머니는 마지 못해 아들 김영춘씨와 김정숙씨의 결혼을 허락해주었다.
시아버지가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한후에도 시종 부대에서 생활하다나니 시어머니는 아들딸들을 홀로 키웠다. 하여 성격이 매우 괴퍅하였다. 그렇지만 어린시절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못받으면서 어렵게 자라난 김정숙씨에게 시어머니는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존재였다. 결혼 첫날부터 그는 시부모를 친정부모처럼 잘 모시리라 마음먹었다. 매일 신경을 써서 시부모들이 즐기는 반찬을 만들어 공대하였고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혼자서 떠메였다.
1985년 시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시어머니는 고독한 삶을 지내야 했다. 다행히 집이 큰데다가 시어머니한테 친구들이 많아 매일 찾아와 동무해주어 시어머니는 그렇게 적적하지는 않았다. 하여 집에서는 매일 윷놀이와 화투판이 벌어졌다. 완전히 로인협회활동실이 된셈이였다. 다른 사람 같으면 시끄럽다며 얼굴을 붉힐지도 모르겠지만 김정숙씨는 오히려 시어머니가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로인들이 많이 찾아오는것을 원했다.
“무엇보다 부모님들이 건강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이렇게 말하는 김정숙씨는 50년동안 시어머니가 아무런 탈없이 건강하게 있어줘서 더욱 고맙다고 했다.
10년전 우홍구 양사촌에 살고있는 시댁 큰엄마가 그들 내외를 찾아왔다. 큰엄마는 젊은 나이에 남편이 저세상으로 갔고 또 아이를 낳지 못해 평생 홀로 외롭게 살아왔다. 생활이 너무 구차해 그들을 찾아왔는데 차마 돌려보낼수가 없었다. 이렇게 큰엄마를 돌본다는것이 어언간 10년이 되였다.
“우리 조카내외는 세상에서 제일이요! 그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벌써 바깥에서 얼어죽었을지도 모릅니다.” 큰엄마가 눈굽을 찍으며 말하였다.
현재 92세인 시어머니와 95세인 큰엄마는 한방에서 같이 살고있다. 2년전만해도 두 로인은 가까운 동네는 함께 놀러다니군 하였는데 작년부터는 뜨락에서 해볕쪼임을 할수밖에 없다. 요즘 두 로인은 화장실도 혼자서 갈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시어머니는 눈이 잘 보이지 않고 큰엄마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두 로인은 때로 로망을 하여 바지에 실례를 한다. 그래도 김정숙씨는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남편과 함께 두 로인의 옷을 벗기고 깨끗이 목욕을 해드리고는 깨끗한 옷을 바꿔드린다. 어떤 때 두 로인은 별것아닌 일로 말싸움을 한다. 그때면 김정숙씨는 중간에서 두 로인의 마음을 풀어주어야 했다. “년세가 점점 많아짐에 따라 시어머니와 큰엄마는 점점 어린애 같아요. 잘 달래야 해요.”
요즘 김정숙씨도 몸이 편치 않다. 그래도 매주마다 남편과 함께 두 로인에게 목욕을 시켜주는것만은 꼭꼭 견지하고있다. 밥을 하고 옷을 갈아주는 일은 더욱 말할것 없다.
김영춘, 김정숙 로부부는 아래로 아들, 손자까지 도합 일곱식솔을 이끌고있다. 아들은 몇해전 귀국해 집앞에서 자동차수리공장을 운영하고있고 큰손자는 심조1중에 다니고있으며 4살난 작은 손자는 만융유치원에 다니고있다.
주말이 되면 김영춘, 김정숙 로부부의 집은 떠들썩해진다. 심조1중에서 다니는 큰 손자가 집에 돌아오고 사위와 딸도 작은 손자와 외손녀를 데리고 온다. 이런날이면 로부부는 상다리가 부러지게 맛나는 반찬을 만들어놓고 온 집안이 둘러앉아 손자손녀들의 장기자랑을 보면서 웃음꽃을 피운다./요녕조선문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