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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아 성추행범 몰려 283일간 억울한 옥살이

[기타] | 발행시간: 2013.05.14일 06:03
ㆍ병원 방사선실 근무 30대에 대법 “4650만원 지급하라”

ㄱ씨(31)는 2010년 1월 병원 당직근무를 하던 도중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ㄱ씨가 일주일 전 복통으로 병원을 찾은 5살짜리 여자아이를 성추행했다고 했다. ㄱ씨가 성추행범으로 몰린 것은 집에서 엄마와 TV를 보던 아이가 “의사 선생님의 고추가 점점 옆으로 갔다”고 한 것이 발단이었다. 엄마는 아이가 병원에서 성추행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전 아이의 복통 때문에 찾았던 병원을 떠올렸다. 자신의 딸과 단둘이 있었던 의사는 방사선실에 근무하던 ㄱ씨뿐이라고 판단했다.

경찰은 ㄱ씨를 범인으로 단정짓고 조사했다. 검찰 역시 마찬가지였다. ㄱ씨는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피해자에게 범인이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도 거치지 않았고, 피해자나 피해자 어머니와 대질신문을 하지도 않았다. ㄱ씨는 그대로 구속기소됐다.

ㄱ씨는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불과 5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어떻게 성추행 상황을 꾸며서 진술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ㄱ씨는 항소했다. 방사선실 문에는 잠금장치도 돼 있지 않았고, 부모가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성추행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2심 재판부는 꼼꼼히 따져본 뒤 ㄱ씨의 손을 들어줬다. 먼저 방사선실에서 아이와 ㄱ씨가 단둘이 있었던 시간은 8분도 채 되지 않았다. 방사선실 문은 고장이 나 완전히 닫아도 0.5~1㎝의 틈이 벌어져 눈을 가까이 대면 안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는 겨울이어서 ㄱ씨는 긴팔을 입고 있었는데, 아이가 말한 의사는 반바지에 반팔티를 입고 있었다. 아이는 항소심 재판에 와서는 자신이 진술한 내용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서울고법 형사10부는 2010년 10월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은 이 판결을 확정했다.

무죄가 확정되기까지 14개월 동안 ㄱ씨는 많은 것을 잃었다. 성추행범으로 몰려 직장을 잃었고, 가족들까지 성추행범의 가족이라는 오명을 쓴 채 살아야 했다. ㄱ씨는 국가를 상대로 피해보상을 청구했다.

서울고법 형사4부(문용선 부장판사)는 “국가는 ㄱ씨에게 465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고 13일 밝혔다.

재판부는 ㄱ씨가 구치소에 갇혀 있는 동안 받은 손실의 정도와 정신적 고통, ㄱ씨의 연령 등을 모두 고려해 하루당 보상액을 16만4400원으로 책정했다. 그는 283일간 구치소에 갇혀 있었다. 대법원 통계를 보면 지난 한 해 ㄱ씨처럼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들에게 지급된 형사보상금은 363억여원에 달한다. 2010년 90억여원이던 형사보상금 지급액은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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