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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우리들의 섬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3.11.14일 10:40

1

안개와 함께 그녀는 새벽이 끝나며 아침이 시작되는 경계에 내앞에 나타났다. 안쪽으로 걸어두었던 사슬키를 풀고 문을 땄을 때 그녀는 문앞에 서있었다. 땅속의 물을 빨아올릴 힘이 없어서 안개를 먹고 지탱해가는 문앞의 비틀어져가는 버드나무처럼 그녀는 말라버린 몸을 한껏 안개속에 내맡기고있었던듯싶었다. 농밀한 안개무리가 집안으로 날아들면서 그녀도 함께 떠밀려 들어왔다.

벼룩시장에서 맞춰온 깜장 쏘파만 달랑 있는 비좁은 대기실은 금방 휩쓸고 지나간 안개의 잔상으로 더욱 눅눅해졌다.

《선생님, 저 성형하고싶어요.》

그녀의 입에서 중국말이 떨어졌다.

그러나 나는 어두운 구석에 옹크린 고양이의 가릉거림을 듣고있었다. 두눈을 파랗게 켰을것 같은 고양이.

《선생님?》

녀자는 분명 나를 알고있는게 틀림없다. 끈적하게 나를 추적하고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각 나는 그녀가 찾아온 리유보다도 그녀가 부른 호칭으로 잔등이 서늘해졌다.

《저 얼굴 바꾸고싶다구요.》

당장이라도 고양이가 발톱을 내밀어올듯 목소리는 아주 작지만 앙탈스럽다.

《얼굴?…》

그때까지 나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쳐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매미 한마리가 그대로 붙어있는듯했다. 매미날개의 미세한 전률과 함께 맴맴 노래소리도 들려오는듯했다. 그녀가 매미날개처럼 엷은 눈까풀을 파들거릴 때, 나는 내 하체를 의식하게 되였다. 끌신에 신겨진 발가락이 꿈질거렸다. 왼쪽다리는 쌀알만큼의 구멍이 퐁 뚫린 내의에 감싸져있었고 오른쪽다리는 정갱이까지 내의가 건성으로 말려있었다. 하체의 핵심부위는 치사하게 내의속에서 륜곽을 드러냈다. 치부(置簿)의 발악은 뻔뻔함이리라. 나는 빈 가슴을 내밀며 그녀의 오기를 비틀어버리기로 했다.

《성형이라 변형(变形)이라? 여기는 변형이 아니고 변어(变语)하는 곳인데 말입니다. 얼굴 변형 먼저 의식 변형을 해야겠습니다.》

나는 그녀의 곤두선 매미의 촉각을 따버리고싶었다.

도드라진 그녀의 코끝이 움씰거렸다.

《의식 변형 먼저 변어부터 할려고요. 한국어 배워주세요.》

매미가 맴맴 애처롭게 애원을 해왔다.

2
《마라탕》간판을 건 내가 꾸린 한국어학원은 소학교 정문 맞은편 왼쪽으로 꺾어드는 골목, 난전이 시작되는 머리에 있었다. 《마라탕》한국어학원, 썰렁해보이지만 중국과 한국의 묘한 문화접목으로 근사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돈도 없는 마당에 허가증 등록이 까다롭거니와 비용도 만만치 않았고 간판을 새로 만들어 올리는 유난을 떨지 않아서 좋았으며 똥파리떼같은 조사들도 무난히 피해갈수 있는 방패라도 될수 있어서 원 식당의 간판을 리용하기로 했다.

《마라탕》한국어학원은 은밀한 아지트 아니면 위험한 섬같은 존재로 서있었다. 나른해지는 오후 1시경에야 피곤해보이는 아줌마 셋, 짜증 캐릭터(성격)의 아가씨 하나가 총총 다녀갈뿐 망해버린 식당으로 보기에는 그럴싸해보인다.

그날 아침, 안개를 몰고 온 매미 녀자는 안개에 젖어 날개를 더 펼수 없다는 식으로 《마라탕》학원에 들어붙었다. 매미 녀자는 시간이 없다는 리유로 오후 수강은 불가능하고 오전 수강 그러니까 단독 수강을 요청해왔다. 물론 수강료는 더 얹어주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매미 녀자는 단독수강으로 한국어를 배워갔다.

ㅏ, ㅑ, ㅓ, ㅕ…

ㄱ, ㄴ, ㄷ, ㄹ…

여름이면 나무꼭대기에서 시끄럽고도 귀찮게 낮잠을 설치게 하는 매미처럼 맴맴하면서 극성스레 그녀는 한국어를 배웠다. 청강을 마치고 나서는 매일마다 학원 대기실의 깜장 쏘파의 먼지도 털어내고 수강실에도 물질을 했다. 그리고 가끔 수강실 옆방에 있는 내 침실을 정리해주었다.

《고기, 두부, 하모니카, 미래, 기차, 차표, 시소, 어머니, 지도…》

하품과 함께 맥없이 길게 새버리는 내 낱말들은 매미 녀자의 청각으로 빨려들어가서는 신들린 매미의 노래소리로 울려왔다. 맴맴.

《매―미―》 하고 염소울음같이 내 입에서 흘러나가는 순간, 나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매미.》 하고 짧게 따라 소리냈지만 분명 나에게는 《맴맴》으로 들려왔다. 나는 눈을 감고 매미를 보고있었다.

어미 매미는 연필보다 좀 가는 마른나무가지에 구멍 몇개를 뚫고 400여개의 알을 낳는다. 이 구멍에 매미알좀벌은 자신의 알을 하나씩 낳아 매미알들을 먹어치운다. 매미알좀벌이 자기가 알을 낳은 구멍에 또 알을 낳는것도 모른채 어미 매미는 있는 힘껏 알을 낳은후 그대로 땅에 떨어져 목숨을 다한다. 한살이 된 맴맴이는 땅으로 떨어진다. 천적인 개미를 피해 좋은 땅을 골라 흙을 파헤쳐 그곳에 멋진 집을 짓고 땅속에서 살아간다. 맴맴이는 마른 흙을 오줌에 버무려 찰기가 있는 진흙으로 집을 짓고는 나무뿌리에서 나무즙을 빨아먹으며 오래동안 지낸다. 맴맴이는 4년 사이에 허물을 네번이나 벗은후 한번 더 벗기 위해 나무줄기로 올라가 사력을 다해 마지막 허물을 벗는다. 드디여 매미가 된 맴맴이. 맴맴맴 맴맴맴맴맴맴맴맴.

《매미, 매미, 매미, 매미, 매미.》 하는 그녀의 비명에 가까운 절규에 나는 눈을 떠버렸다. 기름때 자욱으로 얼룩진 벽에 붙여진 《가갸》표가 코앞에 걸려있었다. 때마침 밖에서 《김장배추 사세요.》를 피대 세워 웨치는 장사군의 스피커 사구려소리가 들려왔다.

《배추.》

나는 경직된 몸을 틀며 따라읽기를 이어가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앵무새는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빤히 나를 쳐다보고있었다. 그녀는 왼손으로 책상에 턱을 고이고 의자를 뒤로 젖히고 발로 땅을 짚고서 간들거렸다. 해일을 고스란히 기다리고있는 섬같이.

《선생님, 지퍼가 열렸네요.》

그녀는 오른손에 쥐여진 펜으로 내 하체쪽을 가리켰다.

나의 얼굴 전체에 불이 당겼다. 나는 하체를 움켜잡고 몸을 돌렸다. 그러나 지퍼는 멀쩡한 그대로였고 너무 꽉 틀어잡았던 탓에 내 하체만이 얼얼해났다.

3
매미 녀자는 파랗게 질려버린 가을하늘을 우러른다. 이마로 떨어진 머리카락을 가을바람이 쓸어간다. 그녀의 옆에 수탉 한마리가 목을 길게 빼들고 껑충하니 서있다가 팥알만한 눈알을 되록거리며 빨갛게 익어버린 볏을 출렁이면서 멀어져간다.

그녀의 백일수강이 끝나는 날, 나는 그녀를 따라 시골로 내려왔다.

《외도》라는 동네 이름이 그녀의 입을 비집고 나왔을 때 사람마다 품고있을 외로움과 고독, 서로에게로 다가가고싶지만 다가서면 되지 않기에 바라만 보고있어야 하는 섬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녀가 《외도》라고 불렀던 동네는 내가 살던 동네였다. 내가 살던 동네가 《외도》라면 《내도》는 어디에 있을가? 외로운 섬, 아니면 바람났다는 외도?

나는 그녀의 코트자락을 스쳐서 내게로 오는 가을바람을 손가락사이로 흘려보냈다. 내 손가락사이로 무수히 많은 시간들이 엉키고 설키고 나중에는 실타래가 풀려나가듯 빠져나갔다. 손가락 매듭이 시리고 아파났고 그 통증은 내 몸의 어둡고 깊숙한 곳으로까지 포진되여갔다.

나는 페교가 된 학교앞에 서있었다. 운동장은 잡풀들로 무성했고 언제나 왕성한 생명력을 과시하는 쑥들이 키돋움하고있었다. 그 쑥들사이로 가을 잠자리들이 부지런히 날아다녔다. 학교는 《식용균버섯기지》라는 패말과 함께 무덤의 적막으로 영원히 깨여나지 않을 잠속에 빠져있었다. 내가 가르쳤던 애들은 밀려가버리고 쓰다버린 균재배 쓰레기들이 나뒹굴고있었다.

페교와 함께 실업, 안해의 한국위장결혼과 함께 리혼, 이 모든것이 긴가민가 하는 새에 쓰나미로 닥쳐들었다. 눈을 다시 떴을 때 나는 섬에 버려져서 흰배를 번뜩이며 발악하는 생선이 되여버렸다. 그러나 우아하게 말해서는 섭외결혼 대비 초스피드 어학원 강사이다.

매미 녀자는 발부리의 돌을 주어 운동장의 우거진 잡초속에 던졌다. 그러자 잡초속에서 우글거리던 닭무리들이 날개를 퍼덕거리며 멀리 흩어져갔다.

《선생님, 우리 애도 여기 다녔댔어요. 그래서 선생님도 알고있구요.》

그녀가 강아지풀을 쏙 뽑는다.

《그런데 왜?》 하는것 같은 나의 의아한 눈길에 그녀는 상처처럼 난 보조개를 보여주며 말한다.

《잠간 통학을 했으니까요. 제가 매일마다 데려다주었구요. 저기 철길너머가 우리 동네였거든요.》

그녀는 긍정에너지의 눈빛을 나한테 쏜다.

《한족녀자한테 애 맡기면 한족애 된다고 기어코 애까지 한국으로 데려가더니만 소식 없잖아요. 저는 죽었다 깨여나도 조선족 얼굴이 아니라나요. 웃겨. 좋다고 결혼할 때는 내가 조선족으로 보였는지.》

그녀의 입가로 때아닌 씀바귀꽃이 피여갔다.

《한국 가서 성형할거예요.》

그녀의 입에서 씀바귀꽃잎처럼 무심히 떨어진 말은 메스가 되여 내 가슴을 슥― 그어버렸다. 메스가 지나면서 베여진 내 몸속에서는 매미 한마리가 맴맴 울고있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매미처럼 생긴 녀자를 미녀라고 생각했다는데 그녀는 아마 세월탓을 해야 할가부다.

《외도》에는 나만 외롭게 남았고 그녀는 졸업선물로 《마라탕》섬을 청소해준다며 떠났다.

4
《외도》의 빈 고향집에서 하루 묵고 오후의 강의시간을 맞춰 나는 다시 《마라탕》학원으로 향했다. 눈을 뜨고나면 생은 언제나 스스로 시작되고 이어지게 되여있는 법이니까.

《마라탕》학원앞에서 배추 장사하던 할아버지가 나를 보더니 손에 쥐고있던 배추를 땅에 떨어뜨렸다. 사스감염환자 피하듯 때가 덕지덕지 앉은 손으로 입가림을 하더니 침을 찔― 갈기는것도 잊지 않았다.

학원내는 테러공습뒤의 페허 같았다. 모든것들이 나뒹굴고 떨어져서 부서져있었다. 침입자들의 무서운 광기와 파괴의 스릴, 그 잔해속에서 나는 높은 벼랑에서 지옥의 나락을 향해 단숨에 추락해버리는것 같았다. 귀가로 스쳐가는 바람은 마귀들의 함성으로 들끓었고 입을 벌려 비명이라도 질러야 하는데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온갖 아픔들은 머리속으로 집약되였다가는 하얗게 부서져가면서 해저로 가라앉았다.

이명이 들리는가싶더니 사이렌소리가 학원앞에서 멈췄고 매미 녀자가 한 남자와 함께 경찰에 끌려나왔다. 나는 한눈에 매미 녀자옆에 있는 남자가 전화로 통역을 해주었던 매미 녀자가 사귀고있다던 한국 남자임을 알아보았다.

경찰들이 지어준 새 이름인 《마라탕》매음소굴에서 나는 끌려나와 매미 녀자와 그 남자와 함께 파출소로 실려갔다.

그때 나는 학원생인 짜증 캐릭터 아가씨가 한국 가려면 한마디는 배워야 되지 않겠냐 하면서 단즙이 다 빨려간 껌딱지를 찍― 내뱉으며 했던 말을 다시 중얼거렸다. 《쮸우밍아!(사람 살려요.)》

/(목단강) 조원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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