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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땅값 안 부럽던 이 동네, 왜 내리막길 걸었나

[기타] | 발행시간: 2014.02.22일 19:16
[오마이뉴스 김대홍 기자]

작은 특징 하나가 때때로 그 사람을 기억나게 한다. 도시나 마을도 마찬가지. 어처구니없는 기억 한 조각이나 사소한 풍경 하나가 그 때를 불러낸다. 때론 부분이 전체보다 힘이 세다. 그런 조각들로 도시를 여행하려 한다. -기자말-



▲ 부곡 온천단지에서 가장 유명한 부곡하와이. 80년대 TV광고를 할 정도로 전국구 휴양지였다.

ⓒ 김대홍

기억이란 때때로 겨울코트 속에 넣어둔 채 잊어버린 물건과 같다. 다시 그 계절이 돌아와서 확인하기 전까지는 까맣게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장소와 사물은 그래서 중요하다. 잊힌, 또는 잊었다고 생각한 기억을 되살리니 말이다.

경남 창녕에 있는 부곡온천을 처음 찾은 건 초등학생 시절인 198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부곡온천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온천휴양지였다. 면 단위에 불과한 작은 마을인데도 그 시절 이미 서울에서 직통 고속버스편이 마련됐고, 온천단지에서 가장 큰 부곡하와이는 TV광고까지 하던 시절이었다.

동네 어르신들 사이엔 "부곡하와이 가봤니?"하는 말이 유행이었다. 창녕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마산에서 살던 부모님들 또한 소문을 모를 리 없었다. 비록 인접도시라곤 했으나 집에서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간 다음, 꼬불꼬불 시골길을 달려야 했으니 만만한 여정은 아니었다.

"뜨거워봤자 얼마나 뜨겁겠노" 씩씩하게 한 발 넣었지만



▲ 시추공 옆에 붙어 안내판에 온천수 온도가 나와 있다.

ⓒ 김대홍

그 시절을 복기하면 기억나는 장면은 단 한 컷이다. 어느 목욕탕에 들어갔는데, 탕에 들어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목욕탕이라면 당연히 탕에 어른들로 버글거려야 했는데 그렇질 않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목욕탕 물은 그동안 동네에서 본 물과 다르긴 했다. 아마 관광객이었던 것 같다. 한 아주머니가 호기있게 나섰다.

"뜨거워봤자 얼마나 뜨겁겠노."

한 발을 씩씩하게 들이밀던 아주머니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아무도 탕 속에 들어가지 않으니 차마 몸을 들이밀 생각을 못하던 관광객들은 그 때서야 탕에 사람이 없는 이유를 깨달았다. 물이 지나치게 뜨거웠던 것이다.

그 기억이 되살아난 건 몇 해 전 부곡에 내려오면서다. 특별히 떠오르는 풍경은 없었고, 오래 전 뜨거웠던 느낌이 살아났다.

부곡온천에 대한 안내책자나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굴뚝이 전혀 없는 온천단지라는 문구였다. 30개가 넘는 목욕탕이 있는데 굴뚝이 전혀 없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목욕탕이라면 항상 뜨거운 물이 나와야 하고, 그러자면 물을 데워야 하고, 물을 데우면서 수증기를 내보내는 굴뚝이 필요하다. 부곡온천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땅에서 바로 퍼올린 온천수 온도가 대략 78도 정도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너무 뜨거워서 목욕물로 쓸 수 없다는 점. 해서 부곡온천엔 굴뚝이 없는 대신 냉각탑이 있다. 온천수를 식힌 다음 목욕수로 보내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물로 유명했던 부곡온천은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승승장구했지만, 그 덕분에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지나치게 뜨거운 물이 문제였다. 가장 뜨거운 물이 있다는 자신감이 "앞으로도 계속 잘 될 것"이라는 오만으로 이어진 탓이다. 새옹지마였다.

1990년대 후반 내리막길, 최신 온천단지에 밀려



▲ 부곡온천 내 뒷골목을 다니다 보면 오래된 온천수 시추시설을 볼 수 있다.

ⓒ 김대홍

1981년 내무부는 온천법안을 마련해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여기서 온천수는 '섭씨 25도 이상 더운물'로 정의했다. 땅에서 뽑아낸 물이 25도 이상만 되면 온천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었던 것.

이 때까지만 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500미터 지점에서 뽑아내는 국내 지하수 평균 온도는 24.6도 정도에 불과했고, 굴착기술도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5년 온천법이 개정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기존 '25도 이상' 규정을 놔두면서 '보양온천' 개념을 새로 도입했다. 기존 관광과 레저 위주 온천문화에 치료와 요양 기능을 추가했다. 즉, 심신을 안정시키고 건강에 좋다고 판단이 되면 보양온천으로 지정할 수 있게 한 것.

때마침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때였고, 사람들은 보다 더 나은 시설을 원했다. 1989년 해외여행자율화가 실시되면서 기대치 또한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었다.

20년 가까이 전성기를 누리던 부곡온천은 시대흐름이 바뀌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1994년 부곡온천 땅값은 1억900만 원이 넘었다. 당시 명동에서 가장 비싼 상업은행 명동지점 부지가 평당 1억4016만6000원이었으니 웬만한 대도시 중심가 부럽지 않은 부곡이었다.

부곡 'ㅁ' 부동산 사장님에게 들은 그 시절 이야기는 화려했다. 부곡온천 전성기 시절 식당을 경영한 사장님은 당시 직원 10명을 데리고 일했단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일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월세만 한 달에 1000만 원 가량 냈다고. 1980년대 1000만 원이라니.

휴일이면 1만 대에서 2만 대 정도 되는 자동차가 몰렸고, 연초에는 15만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오던 시절이었다. 당시 방은 2000개 정도에 불과했으니, 식당과 여관, 호텔 주인들은 얼마든지 배짱을 부릴 수 있었다. 바가지 요금이나 불친절에 대한 원성이 높았지만 사람들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건강 기능을 강조하며 최신 시설로 무장한 새로운 온천단지들이 잇따라 만들어지자 사람들은 발길을 돌렸다.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수온은 더 이상 눈길을 끌지 못했다.

온천수로 난방을...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 부곡 온천단지 내엔 목욕탕 굴뚝 대신 이와 같은 냉각탑이 모두 설치돼 있다.

ⓒ 김대홍

줄곧 내리막길을 걷던 부곡온천은 몇 해 전부터 다시 사람들이 느는 모양새다. 2010년 1월 부곡에 문을 연 스포츠파크가 계기가 됐다. 남쪽에 있어 따뜻한 데다 몇 분이면 닿을 곳에 온천단지가 있는 게 강점이었다.

실업팀, 대학팀, 중고등학생축구팀 등이 겨울철 훈련지로 부곡을 찾으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지난해엔 창녕국민체육센터를 새로 열면서 더 많은 스포츠인구를 맞이할 채비를 갖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뜨거운 온천수'라는 대목에도 사람들이 새로이 주목한다. 그동안 보양온천, 최신 온천단지를 두루두루 겪어본 사람들은 한동안 관심에서 멀어진 부곡온천을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대략 4년 정도를 부곡에서 있다 보니 '국내 최고 온천수'라는 사실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지난해, 머리를 '탁'하고 때리는 한 마디를 들었다. 금융계통에서 오랫동안 일하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78도 온천수가 펑펑 나는 동네에서 산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그 분은 대뜸 다음과 같은 말을 꺼냈다.

"혹시 그 동네에 큰 비닐하우스 단지가 있나요? 온천수를 난방수로 쓰면 전기나 기름을 안써도 될 텐데요."

시각과 경험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 평생 어떻게 돈을 만들까 하는 생각을 하며 살아온 사람에겐 '78도 온천수'가 그렇게 다가간 것이다. 4년 동안 한 번도 못해 본 생각이었다. 자료를 찾아봤더니 충분히 가능한 아이디어였다. 아이슬란드는 이미 온천수가 주에너지원이었다. 2010년 기준 전체 국가 에너지에서 지열이 차지하는 비중이 66.3%에 이르렀다. 기름과 전기에 워낙 익숙한 탓인지 온천수가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실제 부곡온천단지에선 온천수를 난방에너지로 쓰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온천수를 이용해 건물난방이 집단으로 이뤄진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1980년대 초반 이미 온천수를 이용한 건물난방 시설을 설치했으니 부곡의 지열에너지 역사는 꽤 오래된 셈이다.



▲ 부곡온천단지 대로 주변 풍경.

ⓒ 김대홍

더불어 고온온천이 나오는 여러 지역에서 온천수를 난방에 쓰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렇다면 현재 온천시설 내에서만 이뤄지는 지열난방을 인근 동네에까지 넓힐 수는 없을까. 2008년 부산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전국 490여 개 업소 680여 개 온천공을 조사했다. 온천 열에너지 활용방안을 다룬 보고서였다. 흥미로웠다. 보고서에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매우 낮은 우리나라에선 주목할 만한 지역이 바로 부곡이었다.

보고서가 나온 이후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 온천단지에서 나온 온천수를 인근 건물이나 동네에 사용한다는 소식은 없다. 창녕군청 온천담당자에게 확인한 결과 온천수 지역난방 계획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량 문제가 걸림돌이라는 설명이었다. 온천공이 모두 개인소유라는 점도 정부가 쉽게 나서기 힘든 부분일 것이다.

어쨌든 부곡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뜨거운 물이 1년 내내 솟아나는 곳이고, 그 물로 집단난방을 하는 유일한 지역이다. 휴양지라는 점뿐만 아니라 자연에너지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서도 부곡은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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