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천과 로두구 사이 동불사라는 곳에 유서깊은 《동불사》(铜佛寺)가 있었다.
《동불사》란 말그대로 구리부처님을 모신 절이란 뜻이다. 헌데 지금은 동불사에 《동불사》가 없다. 동불사도 없는 곳을 왜 계속《동불사》라고 부르는지? 한것은 원래는 동불사에 《동불사》가 있었기때문이다.
필자는 어렸을 때 동불사에 수없이 드나들며 놀았다. 큰 절은 아니지만 그 건축기교가 높아 수려하고 아름다운 절이였다. 특히 석가모니를 비롯한 각 부처님들을 선명하게 그린 벽화상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아늑한 정원과 후원에는 각종 꽃나무들이 많아 여름이면 수많은 꿀벌과 나비들이 날아옜다.
이렇듯 아름답던 절을 1958년 대약진이 시작되면서 허물어 용광로를 만들었고 또 인민공사 구락부를 짓는데 벽돌과 재목으로 썼다. 동불사를 허물어 지은 구락부는 지금도 동불향 동상촌에 별 쓸모 없이 덩그라니 서있다. 아쉬운 일이다.
《동불사》는 비록 큰 절은 아니지만 유서깊은 절이다. 옛날 한 어부가 부르하통하에서 그물로 물고기를 잡다가 우연히 구리로 주조하여 만든 석가모니부처님을 건져내게 되였다. 그런데 어쩌다 그 부처가 길림장군의 손에 들어가있었다. 어느날 길림장군의 꿈에 그 부처가 나타나 《내가 지금 불에 타고있는데 너는 무얼 하고있느냐?》며 호통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 깨여나보니 진짜로 집에 불이 나있었다 한다.
길림장군은 이 불상이 보통불상이 아니라 생각하고 불상을 건진 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절을 짓고 그 구리불상을 모셨다 한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동불대대 3대 길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그후로부터 이곳에 구리부처님을 모신 절이 있다 하여 절이름을 그대로 따다 《동불사》라 불렀다.
목전 중국대지에는 관광붐이 거세차게 일고있다. 우리 연변도 례외가 아니다. 환경을 아름답게 하고 관광수입을 올리자면 유람지가 많아야 한다. 우리 나라 일부 지역은 관광수입이 무엇보다 훨씬 더 높다고 한다. 우리 연변의 장백산도 한해 관광수입이 3억원이 넘는다고 하니 유람업을 소홀히 볼것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동불사에 다시 《동불사》를 복원하여 해내외에 개방한다면 유람객들이 모여들것이 아닌가? 실은 돈이 모여드는것이다.
이밖에 동불사향 사수(泗水)골안으로 한 20리 올라가면 유명한 도끼봉밑에 《금불사》란 곳도 있다. 여기에도 원래 《금불사》(金佛寺)란 절이 있었는데 그 기세사납던 대동란시기에 훼손되고말았다. 이곳도 정부차원에서 혹은 어느 돈 많은 부자가 복구한다면 그 문화적가치와 경제적가치는 상상도 할수 없을것이다.
동불사에 《동불사》를 앉혔으면 정말 좋겠다.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