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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서 좌절된 한의사 꿈, 한국서 결실 맺다

[온바오] | 발행시간: 2015.01.12일 12:51
탈북자 2만 7000여명 시대. 탈북자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 유럽 등에 정착해 생활하고 있다. 탈북자들이 각국에 잘 정착하면서 북한 주민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고, 한국 사회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고 있다.

다만 해외에 정착한 탈북자들 중 그곳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국내로 돌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같은 사례가 증가할수록 탈북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게할 수 있다. 이에 데일리NK는 남북하나재단(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과 함께 국내에 잘 적응하면서 생활하고 있는 탈북자들의 착한(着韓) 사례를 수집, 보도해 한국 및 해외 독자들에게 탈북자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고자 한다.

[탈북자 着韓 사례②] 김지은 한의사

"北출신 의사 성공 보여주고 싶어…행복·평화 전하고파"

[데일리 엔케이] "1990년대 중반 무렵 소아과 입원실에 근무했는데, 의사로서 가장 견디기 힘든 시기였어요. 중한 병도 아니고 영양실조로 죽어 가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무기력한 저를 바라보던 아이들의 눈빛을 견디기 힘들어 결국 소아과를 그만 뒀죠."

탈북 한의사 김지은 진 한의원 원장(사진)은 함경북도 청진시 청진의학대학 출신이다. 7년간 한의학 공부를 마친 그는 9년간 내과와 소아과, 임상의학연구소에서 환자를 돌봤다. 하지만 그가 탈북을 결심한 이유는 이처럼 '의사'라는 업과 무관하지 않았다. 또한 환자 치료나 의학 연구에 집중하기에는 먹고사는 문제가 너무 컸다.

김 원장은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던 시기에 중국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어요"라면서 "그곳에 가면 먹고사는 고민을 덜 수 있을까, 바깥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한번 부딪혀 보고 싶었죠"라고 말했다.

그가 불법 체류자로 중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허드렛일뿐이었지만, 처음엔 살 만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적어도 굶어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츰 불안한 신분에 묶여 사는 게 갑갑했다.

북한에 있을 때는 밥만 먹으면 살 것 같았는데, 막상 배불리 먹게 되니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다시 의사로 살고 싶었지만, 한 번 맛본 자유를 포기하고 북한에서의 생활로 돌아가기는 싫었다고 한다.

북한 출신 의사 성공 보여주고파…막다른 길에서 찾아낸 희망의 길

김 원장은 처음 중국에 갈 때만 해도 한국에 올 수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 배운 그대로, 나와는 먼 나라라고만 생각했죠. 하지만 중국에서 가사도우미를 하며 혹은 도시락 배달을 하며 만난 한국 사람들은 북한에서 생각했던 모습과 전혀 달랐어요"라고 전했다.

이후 한국을 더 잘 알고 싶어진 김 원장은 소설, 신문, 잡지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한국에 관한 것을 찾아 봤다. 그리고 고심 끝에 북한도 중국도 아닌, 한국에서 살아 보자고 결심을 굳혔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 달리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 역시 녹록하지는 않았다.

그는 "처음엔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엄두도 나지 않았어요. 그저 한국식으로, 한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자고 생각했죠. 그런데도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었어요"라고 당시 어려웠던 상황을 말했다.

주위에서는 "의사까지 했던 분이 할만한 일이 아닌 것 같아 미안하다"며 일자리 소개를 주저했다. 그들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결국 김 원장은 생활정보지를 보고 직접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전화를 걸면 억양을 듣고 조선족인지, 북한에서 왔는지부터 물었어요. 그러고는 다시 전화를 주겠다며 끊었죠. 저는 정말 다시 전화를 해줄 줄 알고 하염없이 기다렸어요. 당연히 연락은 오지 않았고요"라고 전했다.

'다시 전화한다'는 말이 완곡한 거절의 뜻인 줄 몰랐던 그는 한국 사람이 모두 거짓말쟁이 인 것만 같아 화가 나고 상처도 받았다. 마음이 지쳐 힘들었던 그때, '북한이탈주민 대부분이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 큰 문제'라는 언론보도를 보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북한에서 온 사람도 얼마든지 잘 적응해서 제 몫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한의사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해졌다. 북한에서 의사 자격증을 챙겨 오지 못한 김 원장은 통일부를 찾아갔고, 통일부의 보증으로 북한에서의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그는 "학력을 인정받았으니 한의사 시험을 보려고 했는데, 자격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어요. 처음에는 황당했지만, 편입을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고는 그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대학에서는 한 사람이 같은 전공을 다시 배울 수는 없다는 거예요. 북한 학력을 인정받아 한국 대학에는 다닐 수 없고, 한국 대학을 나오지 않고는 한의사 시험을 치를 수 없다니, 농락당한 기분이 들었어요"라고 울분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 일로 김 원장은 죽을 결심을 할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한국 사회에서 바보 취급을 받은 기분이 들었고, 언젠가 통일이 된 후 북한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을 만나면 "고작 그런 취급 받으려 남조선(한국)에 갔느냐"고 할 것 같아 못 견디게 창피했다고 한다.

그러나 더 이상 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한 가지 의문이 마음을 쳤다. '죽을 결심까지 한 지금이 내 삶에서 가장 힘든 순간일까. 그동안 지금보다 힘든 때가 없었던가.'

그는 "돌이켜보니 더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더라고요. 그것도 여러 번이요. 그때는 그래도 죽을 결심은 안 했는데, 지금은 왜 죽으려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며 "한의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욕심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때서야 중국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면서 "한국에 들어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그 많은 사람이 보기에 지금 내 괴로움은 배부른 투정일 거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을 고쳐먹고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라고 고백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세상 속으로…의사로 평화·행복 전하고파

욕심을 버리고 편안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느리지만 순조롭게 한의사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첫 시작은 한의사로서의 지식을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를 얻게 됐다. 실향민 커뮤니티 회사에서 온라인으로 건강 상담을 하는 일이었는데, 한국에서 한의사 자격을 인정받기 전까지 전문지식과 임상경험을 발휘하기에 좋았다. 김 원장은 그 곳에서 일하는 가운데도 한의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

다만 조급함을 버리고 순리대로 풀어 가자고 마음먹었다. 그의 마음이 변하자 세상도 변했다. 회사에서 인연이 닿은 지인들이 김 원장의 안타까운 사정을 듣고 국회에 진정서를 내도록 도와주었고, 그 진정서가 계기가 되어 국정감사 증인으로 발언할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결국 국회에서도 불합리하다는 결론이 나면서 편입학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김 원장이 본과 1학년으로 편입해 4학년에 접어들던 때, 북한에서 자격증을 가져오지 못한 한의사들도 합리적인 검증을 거쳐 한의사 시험을 볼 수 있도록 법률이 개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장이라도 한의사 시험을 볼 수 있게 됐지만, 그는 남은 공부를 마치고 동기들과 함께 시험을 치렀다.

김 원장은 "한의학은 전통학문이기 때문에, 한국 학교에서 새로 배울 부분이 많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덕분에 평생 의사생활을 한다 해도 얻지 못할 많은 동료를 얻었으니,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2011년부터 인문의학과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환자가 처한 상황과 마음까지 헤아리는 의사가 돼 통찰력있는 치료를 하기 위해서다. 그가 치료한 환자들이 마음 편하게 돌아간다면, 지금에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김 원장. 자신이 마음으로부터 찾은 평화와 행복을 다른 탈북자들에게도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욕심을 버리니 마음이 편해지고, 표정도 밝아졌어요. 자연히 주위에 사람이 모이고 그들의 도움으로 한결 수월하게 제 길을 갈 수 있었죠. 상대가 마음을 먼저 열어 주면 좋겠지만, 우리가 먼저 다가갈 수도 있어야 해요. 그리고 도움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 마세요. 때로 도움을 받기도 하고 그 도움을 언젠가 누군가에게 주기도 하면서 함께 살아가면 좋잖아요"라고 국내 정착 탈북자들에게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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