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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재야(在野)의 잔향(残香)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5.12.23일 13:32
표주박은 늘 비여있어도 도연명은 문장을 지어 스스로 즐기였고 나귀 타고 다리를 지나오며 제갈량은 매화꽃이 여윈것을 탄식했다. 정취란 이런것이다.

이에 그들을 앙모하여 머리를 숙이고 비바람을 막으며 시골의 전야를 찾아떠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스스로 야인이라 했다.

헐망한 농가, 허리가 휘도록 일해온 할머니가 살고있었다는 정원, 지금은 잡초가 무성하여 숲을 이뤘으나 고추와 호박이 늘 잘된다는 터전, 찌그러진 널대문, 이 한적한 시골에서 또 누군가를 기다리고있는 어머니 그리고 일망무제한 벌판…

봄이 온다. 때로는 바람이 세차게 불며 널문을 때리고 때로는 고요한 대기속에서 안개가 피여오르고 때로는 밭갈이 동음이 멀리서 울리며 파종을 재촉한다. 실로 봄빛은 나더러 땅을 번지고 물을 주며 씨를 뿌리란다. 그리고 삽과 괭이, 호미와 낫을 챙기란다.

해빛 화창하니 뜨락과 터전에는 봉선화와 나리잎새 푸르고 앵두나무, 복숭아나무, 살구나무의 상쾌한 그늘아래 방울꽃과 함박꽃이 다투어 핀다. 때를 같이하여 란을 어디에 옮길가 걱정인데 부추와 봄파가 푸른 주단 펼치고 양산 같은 호박잎에 노란꽃이 커다랗다.

빨간 앵두가 끝없이 떨어질 때면 휘파람새는 나무가지에서 울고 양지니는 앵두 물고 돌담너머로 날아가는데 까투리는 소리를 지르며 숲속을 찾는다. 그때라 강아지가 쫓아가며 백마처럼 질주한다. 헌데 고양이는 한가로이 낮잠을 자며 지난밤 쥐사냥에 힘들었다 한다. 이뿐인가, 닭장에서 닭들은 알 낳기에 분주하고 요란스런 오리들은 물장난이 한창이다.

오, 괴롭히던 “문명”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정원은 따스하고 마음은 쾌적하다.

시골의 밤과 낮, 그것은 전원의 달과 해를 말한다. 옥수수가 키를 넘고 백양이 하늘을 찌르고 수양이 길목을 지킬 때 달은 한결 교교하고 해는 더욱 뜨겁다. 은하가 흐르면 달은 주홍빛이요 별은 견우직녀라 긴긴밤 잠 못 이루고 거문고 튕기며 금루의 찬에 이른다. 그러한즉 베옷에 초신이 제격이고 토옥에 잠이 달콤하니 오만과 사치가 무엇이고 질투와 시기가 무엇인지 더욱 모른다.

가끔 천둥이 울고 소나기 쏟아지는 날, 쟁기를 마루에 놓고 초가에 앉아 고서를 읽노라면 고구려, 백제, 신라를 거슬러 단군과 함께 말을 타고 달린다.

오호, 록음이 우거지면 천둥이 울고 천둥이 울면 봉선화와 나리꽃이 피고 지는 계절이거니 집안에 비가 샌들 어떠하며 문밖이 물길에 막힌들 어떠하랴.

백로가 지난 9월의 전원은 풍요롭고 정원은 그림 같다. 전야에는 오곡이 넘실거리고 정원에는 열매가 탐스럽다. 땅에는 빨간 고추가 무르익고 무너진 돌담엔 호박이 주렁졌는데 호박이 여물었나 손톱으로 눌러보고 몇개 달렸나 식지로 세여보니 열개에 세개가 넘는다.

오호, 얼굴에 화장을 멀리하고 손에 쟁기를 든지 몇해런가. 풍화에 거칠어 사람들은 날 보고 여윈 들국같다 하리.

축복의 계절, 눈송이 날리는 전원의 운치는 소방울소리에 실려오고 정원의 정취는 한결 고요하고 완연하다. 장작을 패다말고 대문을 나서니 북풍에 휜 옥수수대는 세속을 초탈한 장백의 강대요, 하늘 떠인 백양은 이 땅의 주인이라, 고개 숙인 수양은 하백의 딸이렸다.

오호, 촌부(村妇)가 되여 몸은 가볍고 미운 일 없어 꽃을 가꾸고 기음을 매고 고추 따고 장작을 팬다만 님을 그리는 마음만은 그냥 아프구나.

젊은 시절 영지(英智)를 배웠다면 그것은 나를 즐기며 나를 아프게 하는것이리라.


/박영희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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