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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봄옷 하루 뒤 베이징 옷가게 걸린다

[조글로미디어] | 발행시간: 2016.02.29일 08:26

지난 24일 밤 중국에서 봄옷을 떼러 온 옷가게 주인들이 몰리는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인근 현대식 도매상가 안팎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칸이샤”(한번 보세요), “란써, 바이써”(남색, 흰색), “메이여우”(없어요), “신콴”(신상품).



23일 밤 11시30분 하늘하늘한 봄옷이 내걸린 서울 동대문 도매상가 ‘유어스’에선 중국 손님들과 매장 직원들의 중국어 말소리가 시끄럽게 뒤엉켰다. 커다란 ‘사입 가방’을 메고 다니는 한국 상인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동대문의 주인은 이미 중국 상인인 듯싶었다. 이들은 사입 가방 대신에 여행 트렁크를 끌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서 이 동네 시쳇말로 ‘핸드 캐리’라고 불리는 중국 소매상들이다. 동대문 도매가 처음 맞이했던 중국 손님은 중국 전역의 옷장수가 다 모인다는 항구도시 광저우의 큰 도매상들이었다. 하지만 이젠 중국 내륙 각 도시에서 소매상들이 직접 날아온다. 강릉이나 청주 같은 우리 지방도시 옷가게 주인이 봄옷을 떼러 오듯, 중국 베이징·항저우·칭다오 등의 자그마한 옷가게 주인들이 봄옷을 도매로 떼기 위해 동대문에 몰려들고 있는 셈이다.

비자요건 완화에 위안화 환율도 유리

중국 옷가게 사장님 봄옷 떼러 ‘북적’

동대문 디자인 감각에 한류 맞물린 덕

2009년 금융위기 직후 위안화 급등

중국 의류도매상 몰린 광저우 큰손

내수침체 겪던 동대문 도매 체질 바꿔

이후 중국 본토 소매상들로 물갈이

도매 활기는 중국 상인이 ‘쥐락펴락’

밤에 구입한 옷 새벽 비행기로 중국행

패스트패션에 패스트교역 시스템 구축

우리 경제 모세혈관 중국에 밀착도 커

“사드로 대중관계 어그러질까” 불안감

지난 24일 밤 중국에서 봄옷을 떼러 온 옷가게 주인들이 몰리는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인근 현대식 도매상가 안팎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동대문 시장은 전국 옷가게에 수십년간 가장 빠르고 싸게 유행 패션을 공급하는 통로여서 글로벌 대세인 ‘패스트패션’의 원형질이 여기에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런 동대문의 몸통은 뭐니 뭐니 해도 도매상가다. 두타·밀리오레 같은 소매상가는 5~6개 정도이고, 수만개 매장이 들어찬 30여개 도매상가가 동대문의 주류인 셈이다. 이들은 매장당 두세명의 디자이너를 두고 상품 기획부터 출시까지 일주일을 넘기지 않는다. 게다가 한 품목을 30장 단위로 찍어낼 수 있는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이 강점이다.

이렇게 생산된 봄옷은 이제 동대문 매장을 떠나 베이징 매장에 걸리기까지 빠르면 1박2일이면 되는 한-중 패스트 교역 시스템에 올라탔다. 지난해 개별 비자발급 조건이 크게 완화된데다 최근 원-위안 환율도 평년보다 높은 편이어서 중국 상인이 봄옷을 떼어가는 데 아주 유리한 환경이다. 한류 영향으로 한국 패션 선호도가 큰 상황에서 중국 소매상이 동대문으로 몰릴 만한 조건이 다 갖춰진 셈이다.



지난 24일 밤 중국에서 봄옷을 떼러 온 옷가게 주인들이 몰리는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인근 현대식 도매상가 안팎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중국 도소매상에게 입소문이 난 것으로 유명한 유어스와 에이피엠 상가의 비닐봉지를 든 위아무개(43·여)씨는 우리 돈 400만원어치의 물건을 떼러 5일 일정으로 한국에 처음 왔다고 했다. 산둥성 상인이라고 밝힌 그는 “외국에 물건을 떼러 나온 건 처음인데, 동대문에 이미 와본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오게 됐다”며 “품질이 만족스러워서 여름에 다시 오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감각적인 젊은층 옷을 찾는 중국의 20~30대 젊은 소매상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띄었다. 저장성에서 온 성이 ‘펑’이라고 밝힌 27살의 젊은 남성은 “내가 장사를 하는 상가에서 한국 옷이 크게 유행해서 지난해부터 동대문에 오기 시작해 이번이 다섯번째”라며 “앞으로도 한달에 한번씩 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남편과 함께 안후이성 허페이에서 물건을 떼러 왔다는 류치치(26)씨는 “여러 해 전부터 동대문 물건을 떼어가려고 정기적으로 오고 있다”며 “워낙 한국에 자주 와서 여권에 찍힌 걸 세어봤는데 이번이 105번째”라고 말했다.

동대문 현대식 도매상가 유어스에서 중국 소매상이 구입한 뒤 맡겨놓은 옷 봉지가 중국 지명 등이 적힌 비표를 달고 가게 앞에 쌓여 있다.


이런 중국 도소매상들이 많이 찾는 유어스, 에이피엠, 에이피엠 럭스, 디자이너크럽 등 현대식 도매상가가 들어선 동대문 동부시장 뒷골목엔 중국행 물류와 통관 서비스를 대행하는 화교·중국동포들의 에이전시 200개 정도가 성업하고 있다. 덕분에 도매상가 주변엔 ‘○○무역’ 등의 이름을 단 중국어 표지판이 즐비하다. 중국 상인들은 도매가 가장 붐비는 밤 10시에서 자정 사이에 자기 가게에서 뜰 만한 옷을 골라내 현금으로 값을 치른다. 여행 트렁크에 옷 봉지를 눌러담아 가져가기도 하지만, 상당수는 도매 매장에 이름표나 비표를 붙인 옷 봉지를 맡겨둔다. 도매시장의 밤이 무르익어 새벽으로 넘어가면 이젠 ‘삼촌’이라 불리는 배달인력들이 가게 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이런 물건들을 걷으러 다닌다. 에이전시로 이 물건들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이 물건들은 이르면 새벽 6시에 중국행 비행기를 탄다. 아침 8시면 근래에 간이 통관이 쉽고 관세 비용이 적다고 알려진 칭다오, 항저우, 지난 등에 도착한다. 중국 지방정부의 달라지는 통관 정책에 촉각을 세워야 하는 만큼 당국 정보에 빠르고 항공 화물칸을 싸게 확보해 운송료를 절감하는 게 에이전시의 경쟁력이다. 결국 자정을 전후해 구매한 물건이 오전에 통관을 마치면 통관 도시에선 오후면 매장에 봄옷이 내걸리고, 베이징·상하이·광저우 등은 다음날 오전 안에 물건이 도착한다. 깊은 내륙 도시라 해도 여간해선 이삼일을 넘기는 법이 없다.

동대문 도매시장의 중국계 손님은 애초 대만이나 홍콩 상인이 주류였다. 하지만 2009년을 기점으로 중국 본토 손님이 밀려들며 시장의 체질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원-위안 환율은 앞서 120원대를 오르내렸으나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09년 한때 230원을 바라볼 만큼 급등해 큰 환차익 환경이 만들어진 게 계기였다. 이에 중국 전역에 의류를 공급하던 광저우의 큰손들이 움직였다. 동대문 패션은 디자인 감각이 월등해 중국에서 원래 인기가 높았다. 게다가 한류 열풍의 지속적 확산은 중국 상인의 동대문행 열기가 식지 않도록 기름을 부어주었다. 원-위안 환율이 170~180원으로 다시 안정화한 뒤에도 항저우의 중간도매상의 발길이 이어지고, 2년여 전부터는 중국 소매상들이 동대문을 휘젓고 다니게 된 배경이다. 비자 발급 조건 완화와 저비용 항공 노선의 증가는 이런 추세를 강화했고, 앞으로도 더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이 많이 찾는 현대식 도매상가 ‘빅3’에 들어가는 유어스의 유선규 운영기획팀장은 “광저우 큰 도매상들은 한 차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어치씩 물건을 떼어갔다. 지금은 중국 소매상들이 수십만원, 수백만원씩 물건을 잘게 떼어가는 대신에 상가를 찾는 중국 상인 수는 훨씬 많아졌다. 우리 상가를 찾는 10명 가운데 7명은 중국 상인이고, 그중 5명은 중국 소매상으로 본다. 우리 지방도시 옷가게 경기침체를 중국 상인들이 메워주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서울에서 성형시술을 하고 얼굴에 붕대를 감거나 멍 자국이 선명한 얼굴로 옷을 떼러 다니는 중국 여성 상인들의 모습은 이 동네의 독특한 풍경이 됐다.

이에 동대문에서 10개 정도인 현대식 도매상가들은 중국 손님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발빠른 진화를 거듭해왔다. 상가 차원에서 중국 현지 도매상에 마케팅을 하러 다니는 것은 물론 중국 상인을 위한 포장센터, 중국동포 직원, 중국어 통역 서비스, 중국어 표시 안내판 등 인프라를 계속 확충해 나간다.

중국과 우리 경제의 밀착성은 제조 대기업의 대중 수출에만 편중돼 있지 않다. 오랜 무자료 거래 관행 탓에 정확한 경제 규모가 산출돼 있지 않지만 10조원대로 추산되는 동대문 패션 경제권 내 9.9㎡ 안팎 도매매장 수만개가 중국 내륙 곳곳의 자그마한 옷가게들과 거래관계를 이어간다. 경제가 최밑단까지 모세혈관처럼 뒤얽혀 있는 셈이다. 화교 출신으로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한 50대 사장은 “패스트패션에선 속도가 중요하고, 중국 도소매상의 특성상 정식 관세를 치르지 않는 간이 통관을 주로 이용하다 보니 중국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통관 정책이 대단히 중요하다. 요즘 사드 문제 등으로 대중 관계가 악화하고 조짐이 좋지 않아서 에이전시 사장들이 위기 대처 방법을 논의했다. 몇년 전 일본 관광업계가 대중 관계 악화로 크게 고전하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 통관 당국이 원리원칙대로 하겠다고 나오면 동대문의 이런 교역은 크게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동대문 도매시장은 지난해 메르스 사태 때 중국의 무게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여성복 도매매장을 운영하는 이아무개(30) 사장은 “평소 우리 상가가 중국인 판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메르스 탓에 두어달 중국 손님들 발길이 끊기고 상가 전체가 한적해지니 정말 실감이 났다. 당시에 우리 가게 매출도 반토막 밑으로 줄어들었고, 상가 차원에서 임대료도 인하하는 등 비상 대책이 시행됐다. 중국이 우리를 먹여살리지만 그만큼 중국 리스크도 크다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말했다.

새벽 한시가 넘어가자 불야성이던 동대문 도매상가의 발길도 약간은 뜸해졌다. 하지만 동대문 골목골목 밤참을 먹는 포장마차와 노점들은 중국 손님들의 노곤하고 달뜬 목소리로 다시 붐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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