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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내기 할머니” 그리워진다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6.05.04일 15:13
둬달전 집수리하느라 서시장을 자주 드나들었다.

서시장 한모퉁이 조그마한 골목길에 여러가지 물건을 파는 장사군들사이에 한 할머니가 끼여 앉아있었다. 눈에 띄게 년세가 많아 보이고 옷차림새를 보아도 조선족할머니가 분명했다. 이마까지 푹 내리덮은 낡은 흰수건밑에 맥없는 두 눈동자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물건을 사주기를 간절히 바라고있는것 같았다. 로인은 몸에 맞지 않은 낡은 옷을 아래우로 걸치고있었다.

할머니는 내기를 팔고있었는데 물건이 다른 장사군들의 물건보다 몹시 어설퍼보였다.처음엔 아무 생각없이 그 앞을 지나다녔지만 하루이틀 자주 눈에 띄고 보이면서 어쩐지 그 할머니에게 자연히 관심이 가게 되었고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다.

할머니는 련속 내놓은 내기를 가쯘하게 배렬하려고 했지만 떨리는 손이 말을 잘 들어주지 않았다. 그저 뼈에 가죽을 씌워놓은듯 앙상하고 갈라터진 손등에서 할머니의 고달픈 인생을 읽을수 있었다.

집은 어디에 있는지? 자식은 없는지? 왜 궂은날, 개인날 매일 몇푼벌이 안되는 내기장사만 하는지? 생계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심심풀인지? 은근히 걱정과 관심이 앞서기도 했다.

어느날 점심무렵, 나는 또 서시장을 지나게 되였는데 “내기 할머니”가 마른 떡 한개를 손에 쥔채 드시고있었다. 앞가슴에는 떡부스러기가 가득 묻어있었고 떨리는 다른 한손에는 말라 비트러진 오이짠지 한쪼각을 들고있었다. 갑자기 나는 코마루가 찡해나고 가슴에서 무엇이 울컥 치밀어오르는감을 느꼈다. 할머니를 보는 순간 나는 몇달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이 머리에 떠올랐다.

나의 어머님은 87세로 힘든 인생을 끝내고 저 세상으로 가셨다. 아버지가 일찍 우리를 떠나는바람에 어머님은 혼자 22년이나 고독한 세월을 보내게 되였다.

당시 우리집은 시골에서 몹시 빈곤했고 항상 식량이 모자라 어머님은 그 누구보다 배를 곯을때가 많았다.

식사할 때면 늘 밥상밑에 누룽지물을 담은 바가지를 내려놓고 얼마 없는 누룽지를 건져 잡숫군 하였는데 어린 나는 어머님이 누룽지가 맛있어서 그저 드시는줄로만 알았다. 어쩌다 생산대에서 소나 돼지를 잡아 고기점이 생기면 거의다 아버지와 나의 차례였고 어머니는 국물만 맛보는 신세였다.

외동아들인 나는 나이 들어서도 어머님생전에 효도할줄은 몰랐었고 행동보다 말로만 지나쳤다. 어머님이 세상뜬 지금에 와서야 나는 후회되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대접 못했고 고운 새 옷을 사드리지 못한것도 후회된다.

어머니가 “내기 할머니”처럼 힘든 로년은 살지 않았지만 그리 행복한 생활은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생전에 효도하지 못한것을 뼈저리게 뉘우치며 효도할 기회가 다시 없게 된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내기 할머니”를 볼 때마다 어머님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리고 가슴이 찢어지듯이 아파난다.

나는 한걸음에 달려가 찰떡과 반찬 몇가지를 사서 그 할머니손에 쥐여드렸다. 할머니는 어리둥절해하며 나를 올려다볼뿐 떡을 감히 받지 않았다. 내가 연신“이 떡을 드십시요.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저 드리고 싶어서 그러는겁니다.”라고 하면서 진심을 보여서야 할머니는 드디여 내가 준 찰떡을 받고는 연신 “고맙다”는 말로 인사하신다. 비록 할머니에게 드린것은 큰 선물이 아니지만 그것으로 어머님 생전에 효도 못한 죄책감을 다소나마 위안받을수 있다면 만족이다.

그후 나는 서시장에만 가면 그 할머니를 찾아보군 했다

어느날 저녁녘에야 서시장에 들리게 된 나는 또 할머니가 있는 그 골목길을 찿았다. 아! 뚜렷이 그 할머니가 보였다. 땅거미가 지는데 할머니만 제자리를 지키고있지 않는가! 그의 앞에는 아직도 다 팔지 못한 내기가 무더기로 놓여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내막을 알고싶었다. 그렇지만 할머니의 자존심이 상할가봐,혹시 아픈상처를 건드릴가봐 그저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어둠이 완전히 내리자 할머니는 천천히 물건을 거두기 시작했다. 누구도 마중오는 사람도 없었다. 할머니는 물건들을 등에 짊어지고 무거운 다리를 끌며 천천히 골목속으로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어머님과 같은 그 할머니가 계속 눈앞에 얼른거려 불안한 마음을 좀체로 걷잡을수 없었다. 한달후 집수리가 끝날무렵 또 서시장에 가게 되였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고 그 자리는 웬 낯선 장사군이 차지하고있었다. 나는 그 장사군들에게 할머니의 행방을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순간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혹시 세상을 뜨지는 않았을가? 아니면 병으로 자리에 드러누웠을가?

그렇다. 아직 우리 주변에 “내기할머니”와 같은 분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운다.나는 그 할머니의 눈에서 말못할 무슨 사정과 그리움을 보았던것 같다. 이제는 따뜻한 집에서 행복한 만년을 누릴 년세인데 80대의 할머니가 왜 아직도 장사를 해야 하는지? 한동안 나는 나의 어머님과 같은 그 할머니를 기억속에서 지울수없어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고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저 맘속으로 그 “내기 할머니”가 무사하고 행복하기만을 빌고빈다.

/박동빈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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