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귀여운 손자 손녀들을 보며 깜짝깜짝 놀라군 한다. 그들의 티없이 깨끗하고 순수하고 난로처럼 따뜻한 마음들이 나의 가슴에 진한 감동으로 안겨오는 때가 있기때문이다.
현정이는 이제 겨우 여섯살이고 그에게는 생일이 다섯달 늦은 외사촌남동생이 있다. 해볕이 쨍쨍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의 어느날 친척들이 함께 국수 먹으러 랭면집으로 향했는데 가는 길에 현정이는 동생의 손을 한시도 놓지 않고 꼭 쥐고 다니였다. 식당에 이르러서는 저가락을 챙겨주기도 하고 맛나는 료리를 집어주기도 했다. 누나가 학교에 가서 식당에 오지 못하자 집으로 돌아갈 때 누나가 좋아하는 료리들을 챙기였다. 여섯살이면 응석을 부릴 나이인데 동생과 누나를 챙기는 현정에게 크게 감동 받았다.
준이는 올해 일곱살인데 그에게는 세살되는 남동생이 있다. 아빠는 화가로서 자주 출장 가고 엄마가 집에서 일하며 두 아들을 돌보는데 어린 준이가 엄마에게 큰 도움이 되였다. 엄마가 집일을 할 때면 준이가 동생을 돌보는데 동생이 울고 보채도 하나도 화내지 않고 인내성있게 달래였다. 가끔 친구들이 밖에서 뛰노는 소리가 집에까지 들려와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었겠지만 놀고픈 맘을 꼭 참고 동생을 데리고 놀았다. 우리 집에 친척들이 모여 같이 국경절을 즐길 때 준이는 어린 동생이 셋이나 되여 돈을 많이 벌어야 겠다고 해서 우리들을 한바탕 웃게 했다.
지민이는 이제 겨우 열살이지만 너무도 어른스러워 그 나이를 의심하게 된다.
어느 날 지민이네 집에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놀러와서 며칠동안 머물렀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간 그날 저녁, 지민이는 어머니를 말똥말똥 쳐다보며 말했다.
“어머니, 나 이제 장가 가면 자는 칸이 한 칸인 집을 사겠습니다.”
“왜? 그럼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디에서 자니?”
“바닥에서 자면 되지. 어머니도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바닥에서 자게 했잖아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바닥이 딴딴해서 얼마나 불편했겠어요.”
“바닥에 전기요를 깔았기에 바닥이 침대보다 더 따뜻하다.”
“침대에도 전기요를 깔수 있잖아요. 나는 어머니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침대에서 자게 해야 커서 장가 간후 자는 칸이 두개인 집을 사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폭신폭신한 침대에서 자게 하겠어요.”
나는 시조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린 지민이가 무척 대견스러웠다.
어릴 때 나도 우리 귀요미들처럼 참으로 착하고 따뜻했다. 언니와 오빠들의 자랑스러운 동생이였다. 언니, 오빠들이 온 하루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 힘들어하면 그들이 시키는 작은 심부름을 군말없이 잘 해주고 나의 애고사리같은 손으로 하루 일에 지친 잔등을 두드려 주군 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내 나이가 지천명을 넘어서부터는 나는 자기 작은 가족 밖에 모르는 린색한 동생으로 변해버렸다. 나의 머리속에는 언니와 오빠들보다 내 작은 가정이 일순위가 되였다. 형제들은 남편과 딸의 뒤로 밀리였다. 언니와 오빠들은 인젠 나에게 가족이 아닌 친척으로 멀어졌다. 언니와 오빠들이 어려움에 부딪치면 도와는 주지만 열정이 부족했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하려고 금방 신을 신었는데 많이 아픈 둘째언니가 갑자기 내가 한 마른가지 밑반찬이 먹고 싶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신을 벗고 다시 주방에 들어가 가지 밑반찬을 해서 갖다주긴 했지만 출근이 바쁜 나를 귀찮게 한다고 투덜거렸다. 이십년전에 일이 있을 때면 어린 딸을 늘 둘째언니네 집에 맡기군 했는데 그런 은혜는 깡그리 잊고 말이다. 그리고 중풍 맞은 큰언니가 입원치료를 받을 때는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주었는데 퇴원한 후에는 혼자서 걸을수 있으니 그저 드문드문 전화를 할 뿐 별로 찾아뵙지 않았다.
어느 날 큰언니가 가끔 팬티에 오줌을 묻힐 때가 있는데 작은 생리대를 사오라고 했다. 토보로 살 수 있는데 나를 심부름 시키는 큰언니가 싫었다. 나도 요새는 오른 다리가 많이 아파 층계를 오르내리기 많이 힘든데 말이다. 그렇다고 큰언니에게 못가겠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나는 생리대 외에 큰언니가 많이 즐겨 먹는 것들을 두손 가득 무겁게 들고 큰언니네 집으로 갔다. 큰아저씨는 친구 만나러 가고 큰언니만 집에 있었는데 큰언니는 그렇듯 반가와했다. 원래 말이 적은 큰언니인데 그날만은 말이 많았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이렇게 변했을가? 나는 큰언니가 전화해서야 큰언니를 뵈러 온것에 미안하고 죄송했다. 큰언니는 생리대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대화하고 싶어 전화했던 것이다.
귀요미들을 보며 어릴 때의 내가 그립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동년에서 40여년이나 멀리 왔으니 변하지 않을수는 없지만 너무도 자사자리하게 변한 내가 가끔은 싫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타성에 있으니 형제들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데, 막내인 내가 언니와 오빠의 든든한 지팽이가 되여야 하는데 나는 그 배역을 밀어내려고 애쓰니 얼마나 한심한가!
그리고 두렵다. 백지장처럼 티없이 깨끗하고 봄해살처럼 따뜻한 귀요미들이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나처럼 무섭게 변해버릴가봐 두렵다. 어른인 우리가 귀요미들의 샘물처럼 깨끗한 마음을 지켜주어야 하지 않을가 생각된다. 마음속에 오물들을 하루 빨리 깨끗이 씻어 버리고 해빛에 잘 말리워 보송보송한 맘으로 귀요미들의 티없이 순수한 마음의 수호자로 되여야겠다. 어쩐지 두 어깨가 무겁다.
새해에는 어릴때 언니, 오빠들을 따르고 좋아하던 것처럼 사심없이 형제정을 나누련다. 철부지 나를 귀여워만 하고 꾸짖을줄 모르는 언니, 오빠에게는 보다 따뜻한 동생으로 다가가련다. 웃물이 맑아야 아래 물이 맑다. 어린 손자손녀들과 젊은 조카들의 훌륭한 본보기가 되기 위해 내 인격과 인품을 한보 승화시켜야 겠다는 각성을 해본다. 그리고 간절히 부탁한다. 우리 어른들이 손에 손잡고 귀요미들의 샘물처럼 티없이 깨끗하며 봄날의 태양처럼 따뜻한 심성을 보호하자고 말이다.
/김경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