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딸과 함께 대형 마켓에 갔다. 별로 살 것이 없지만 집으로 가는 길에 산책삼아 들렀는데 딸은 마켓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책을 진렬해 놓은 곳으로 갔다. 미국의 대형 마켓에서는 책도 판다. 주로 신간 서적들이다. 전부 영어로 된 책이니 필자는 아예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하지만 영어만 안다면 신간 서적을 한 아름씩 사다가 읽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영어로 된 책을 고르는 딸이 부럽기만 하다. 딸의 모습을 먼 발치에서 지켜보던 필자는 10여년전 딸과 함께 북경 서단에 있는 서점에 갔던 일을 떠올렸다. 서점에 들어서자 딸이 다짐조로 “책 사는데 돈을 아끼지 말라고 했죠?”라고 묻는다. 필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좋아요!”를 남기고는 필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딸은 딸대로, 나는 나대로 서점을 돌아보게 되였는데 점심때가 다 지나도록 딸이 약속한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다. 층마다 다 돌면서 겨우 딸을 찾았는데 딸은 한구석에 퍼더버리고 앉아 이미 고른 책을 한쪽에 쌓아놓은채 열심히 독서하고 있었다.
아빠가 곁에 다가가도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채 책 읽기에 몰두한 딸의 모습이 그날따라 정말이지 너무나도 곱고 고왔다. 그래서 필자의 입에서 자식의 가장 고운 모습은 책 보는 모습이라는 말이 나왔던 것이다.
자식들이 어렸을 때 필자는 새벽에 집에 들어와도 자녀들의 방에 들어가서 애들이 자는 모습을 꼭 보군 했다. 머리맡에 책을 놓고 자는 모습이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다. 하여 어떤 때는 돈이 생기면 아들과 딸의 베개 밑에 백원짜리 한 장씩 넣어줬다.
지금도 아들과 딸은 그래도 그 때가 좋았다고 하면서 이구동성으로 아버지가 책을 사라고 돈을 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한다.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 줬다는 말에 맘이 흐뭇해진다.
며칠 전 스마트폰 시대에 어떤 모습이 가장 곱게 보이는 인간상인가 하는 물음에 답을 준 짤막한 글을 읽었다. 그 글이 내놓은 정답은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모습이 참 곱습니다.”이다. 필자 역시 공감이다. 정답에 덧붙인다면 “잠을 자도 책과 스마트폰을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고 자는 모습도 참 곱습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