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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대학에서 공부하는 일본류학생, 그는 누구?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6.08.19일 11:11
-연변대학 일본류학생 사이토류이찌씨의 가족을 만나

편집자의 말:

얼마전 연변대학에서 류학하고있는 일본류학생 사이토 류이찌((斉藤隆一)의 연변에서의 학습 및 생활모습을 담은 TV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인터넷과 위챗에서 전파를 타면서 사이토 류이찌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있다. 일전 본사 리홍매 일본특파원은 사이토 류이찌씨와 그 가족을 만나 단독 밀착취재를 진행, 사이토가족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글에 담았다.

연변일본인회 홍보

연변일중문화교류센터 일본사무국대표

연변대학 일본학우회리사

명함장 뒤면만을 보면 중국, 아니 연변사람이라 충분히 착각할수있는 그런 사람을 일본 도꾜 마찌다(町田)에서 만났다.

요즘 연변에서 얼굴이 많이 알려진, 연변대학 일본류학생 사이토 류이찌(斉藤隆一)군의 아버지 사이토 야스시(斉藤靖)씨가 두 아들을 앞세우고 역에서 필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착한 심성이 밝은 얼굴에서 그대로 엿보이는 사이토 류이찌

류이찌군이 여름방학기간 연길에서 일본에 돌아왔다는 정보를 얻고 여러 곳에 수소문을 하여 겨우 마련한 만남인것만큼 흥분을 금할수 없었다.

도꾜도도시(东京都市)대학 공학부 1학년에서 공부하는 류이찌씨의 남동생 케스케(圭佑)군이 하는 인사말 “니호우!”(你好) 에 “안녕하세요~”로 대답하면서 고향친지를 만난것같은 즐거운 느낌이 들었다.

사이토 류이찌는 올해 스물한살, 현재 연변대학 공학부 3학년생이였다. 침착하고 눈길이 맑은 류이찌의 착한 심성이 그의 밝은 얼굴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류창한 중국어발음과 귀에 익은 연변말투가 처음 만나는 거리감을 순간적으로 좁혀주었다.

아버지 꿈의 연장 – 류이찌 가족의 연길생활

일본・중국・ 한국 등 세개 나라를 넘나들며 일하는것이 꿈이였던 아버지 야스시씨는 대학교때 중국어와 한국어를 제 2 외국어로 선택했다. 학생시절에 늘, 가족이 생기면 중국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하군 하여 주위사람들의 의아한 시선을 모았다 한다.

90년대 려행회사에 근무했던 야스시씨는 어느날 일본주재 중국대사관에서 우연하게 중국 장춘시에서 온 박씨성의 조선족을 알게 되였다. 그후 친분이 깊어지자 연길에 사는 그분 친척의 류학공부를 위해 경제담보인으로 나서게 되였다. 이것이 야스시씨의 연길과의 인연의 시작이였다.

몇년후 그는 주식회사 로선(LAWSON)에서 근무하면서 1년에 한번씩 연수로 중국에 가게 되였다. 그러면서 중국주재업무가 차례지길 항상 고대했다. 허나 4000명이 넘는 큰 회사에서 중국에 파견하는 사원이 일년에 10명밖에 안되였던것이 그때 현실이였다.

그러던 2003년, 꿈과 현실의 중심에 멈추고 있었던 30대의 야스시씨에게 지인이 연변대신해외교류유한회사를 소개했다. 가물에 단비와 같은 챤스였다.

이를 계기로 2003년 4월, 일본에서 소학교 2학년을 마친 류이찌와 유치원생이였던 남동생, 그리고 네살난 녀동생은 엄마 아빠에 이끌려 생소한 연길땅을 밟게 되였다.

류이찌는 중앙소학교 조선족반 1학년에, 동생 케스케는 중앙소학교 한어반 학령전반에, 녀동생은 6・1유치원에 입학하게 되였다.

류이찌와 케스케 두 형제는 그때 처음 연길에 갔을 때 외국이라는 느낌은 별로 없었고 다른 지방에 이사온 기분이였다고 말했다. 참 대단한 적응력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연길, 자그마한 변강도시가 이들 사이토일가에게 꿈을 펼치는 새 생활의 거점이 되여버렸다.

손시늉으로부터 시작된 학교생활이 싫지 않았다는 두 형제.

하학종소리가 울리면 달리는 흉내와 함께 “나가 놀자”가 들려왔고 밥먹는 흉내와 함께 “밥먹자”가 귀에 들렸다. 그렇게 하나 둘 익힌 조선말과 중국말이 집에서 배우는 일본어와 함께 머리속에 자리를 잡게 되였다.

어느날 교실벽 경쟁판에 적혀진 전반 학생의 이름을 하나 둘 읽어가는 류이찌에게 친구들이 박수갈채를 보내주며 같이 기뻐했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류이찌는 회상했다.

자신의 꿈의 연장선에 아들을 내세운 아버지 야스시씨가 보여주는 장남의 성장기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연길에서의 5년반,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였다.

소학교 1학년 교내 미술콩클에서 특등상.

2학년 교내 중국어경필(硬笔)콩클 3등상, 교내 미술콩클 2등상.

3학년 연길시 제2차 소성컵(少星) 미술・서예대회에서 3등상.

4학년 교내 조선어성구속담대회에서 3등상, 교내 3호학생.

5학년 연길시 수학운용경기대회에서 2등상, 교내 우수소선대원, 연길시 미술・서예대회에서 은상, 연길시 제4차 소성컵(少星) 미술・서예대회에서 2등상, 연변인민출판사 제9회” YUSTS”컵 작문대회 은상.

6학년 식물표본제작대회 1등상, 교내 줄뛰기대회 특등상, 교내 우수소선대원…

감탄을 금할수밖에 없는 류이찌의 우수한 소학교수상경력이였다. 5년전에 일본으로부터 연길에 와서 조선어와 한어를 동시에 흡수한것만으로도 특별한 경력인데 이렇게 다방면으로 발전해온 그의 총명함과 꿋꿋한 자세가 오늘의 류이찌를 만들었을것이라는 짐작이 갔다.

연길에서 복주로

그러던 2008년 아버지 야스시씨의 일관계로 사이토일가는 복건성 복주에 이주를 해야 했다. 끊임없는 아버지의 도전은 아이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을가.

명쾌하고 활달한 차남 케스케는 그때 일을 즐거운 추억으로만 기억하고있었다. 5년간 한족반에서 주로 한어가 위주였던 케스케에게는 별로 생소한 환경이 아니여서 또 한번 이사를 했다는 감밖에 들지 않았다 한다.



류이찌의 가족, 아버지 사이토 야스시(가운데),동생 사이토 케스케(왼쪽)

하지만 류이찌는 달랐다. 연변에 사는 조선족 자녀들과 똑같은 고민이였다. 여태껏 일상용어가 조선말이였는데 어느날 갑자기 한어가 일상용어, 그것도 복주지방의 방언에 시달려야만 했다.

《아버지가 원망스럽지 않았냐》는 필자의 물음에 《아니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장남 류이찌의 청순한 눈빛이 네살 때 영문도 모르고 일본에 와야 했던 필자의 아들눈빛과 겹쳐짐을 느끼며 애들에게 고마워야하는 부모의 립장을 떠올려 보았다.

복주에서 다시 일본으로

복주에서의 1년이 지났다. 자신의 꿈을 따라 움직이는 애들의 장래에 대해 항상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던 야스시씨였다.

중국과 다른 일본의 의무교육시스템상 류이찌의 중학교경력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음을 예측한 그는 또 한번 결단을 내렸다.

복주에서 중학교 1학년을 마친 류이찌를 일본중학교 3학년에 편입시킨것이다.

놀라운것은 그때 가족과 갈라져서 홀로 일본미야짜키(宮崎)에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집에 가야하는 류이찌의 일본행을 “장남 일본에 류학, 복주에서 미야자끼로”라는 제목을 달아 야스시씨가 블로그에 글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역시 류이찌의 든든한 모습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것이고 또 아버지가 밑거름이 된것이 틀림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2009년 7월 5일에 홀로 일본땅에 돌아온 류이찌는 중학교 3학년생활을 원만히 마치고 고중에 입학하게 되였다. 또 한번 건네본, 부모님이 원망스럽지 않았냐는 물음에 류이치는 단련이 돼서 다른것은 다 괜찮은데 중학교 2학년의 추억이 없고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것이 유감일뿐이라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일본에서 또다시 연길로

2010년에 가족일행이 일본에 돌아오게 되여 사이토일가는 순조로운 3년을 함께 보내게 된다. 류이찌도 순조롭게 전기전자정보공학부에 입학하여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대학생활 두달만에 류이찌가 컴퓨터프로그래머를 목표로 대학교를 중퇴하겠다고 나왔다. 아버지는 그때처럼 장남때문에 고민한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여러번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지만 류이찌의 생각엔 흔들림이 없었다.

마침 그때 아버지 야스시씨는 연변일본인회 홍보업무를 맡았었다. 오래전부터 중국, 한국, 조선에 대한 일본인들의 오해를 풀어주고 더 나가서 일본과 중국, 일본과 한국, 일본과 조선간의 친선관계가 하루빨리 완벽한 상태로 발전하는데 유익한 일을 하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을 지니고있었다.

연변에 가면 세개 나라를 료해할수 있다는 우점을 보아낸 그는 연변에 일본류학생을 보내는 사업을 적극 추진시키고있었다. 그래서 아들 류이찌에게 《연변대학에 류학갈 생각은 없냐?》라고 물었다.

《하이!》 류이찌의 주저없는 대답에 아버지는 기쁘고 놀랍기만 했다. 이렇게 되여 2013년 6월, 사이토 류이찌는 배낭을 지고 혼자 또다시 연길땅을 밟았다. 5년을 살았던 땅을 5년만에 밟았던터라 아무런 주저감도 없이 혼자 그날 밤경치를 즐길수 있었다.

그때로부터 3년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인터뷰 마지막 무렵에 삼부자에게 여러가지 간단한 질문을 해보았다.

・연길이라하면 먼저 떠오르는 생각?

류이찌: 사람과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공기와 물이 비교적 깨끗하다. 음식이 맛있다. 특히 매운 음식.

케스케: 진달래광장.

・류학비용은?

류이찌: 학비는 취직후에 갚는 형식으로 일본정책금융은행에서 장학금을 신청했다. 생활비는 방학 때 일본에 돌아와서 아르바이트로 번 돈과 부모님한테서 약간의 원조를 받고있다.

・례를 들어 뜨거운 물이 쏟아졌을때 순간적으로 나오는 언어는?

류이찌 : “앗 뜨거워!”이다

・연길에서 불편하다고 느낀 점?

류이찌: 작은 병원에 가면 환자들이 몰려서 의사사무실에 들어가는것이 너무 불편하다. 례를 들어 입안을 의사한테 보일 때 의사뒤에 다른 환자가 서있는것이 너무 불편했다.

・장래의 꿈?

류이찌: 지금 배우고있는 전문지식을 쓸수있는 일을 하고싶다. 우선 연변대학을 졸업한후 연구생공부를 하려 한다. 여러개 나라에서 일해보고싶다.

・한족과 조선족 두 민족과의 관계가 어떤가?

류이찌: 학교동창들은 대부분 한족이고 교외활동은 대부분 조선족들과 많이 한다.

・중국부모들의 자식 키우는 방식에 대하여

솔직히 말하면 아르바이트두 안하는 친구들이 번마다 밥을 사준다하면 좀 불편하다. 부모돈으로 허장성세하는것은 바람직한것이 아니다.

・어릴때 불평이 있었다면?

케스케: 방학동안 내내 하는 집체무련습이 너무 싫었다. 날씨가 더웠고 방학기간 즐겁게 놀고싶었다

・두 아들에 대한 아버지 야스시씨의 바램은?

일본에 온 중국조선족들의 분투정신을 따라 배워 두 아들이 독립성이 강하고 고생을 달갑게 할수있고 사회에 유익한 인간으로 씩씩하게 성장하여 주길 바란다…

약 두시간 정도의 인터뷰가 끝날 무렵, 류이찌와 케스케는 고시(疯狂背古诗)를 읊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외운거라 6번까지는 술술 외워진다는 두 아들을 바라보는 야스시씨의 대견한 눈빛에서 도전과 창조로 키워낸 두 아들에 대한 대단한 긍지감을 읽을수 있었다.

리홍매 특파원(일본주재)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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