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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꽃”은 어떻게 창작되였는가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6.09.10일 22:55
—“아리랑꽃”의 총감독 김희를 만나보다

길림성을 대표하여 제5회 전국소수민족문예합동공연에 참가한 연변가무단의 대형무극 “아리랑꽃”은 8월 30일과 31일에 북경에서의 두차례 공연을 전부 마쳤다.

두번째 공연을 마친 31일, 북경민족극장에서는 감동적인 장면이 나타났다. 배우들이 관중들과 인사를 다 나누고 막을 내린후, 관중들이 오래동안 박수를 보내며 자리를 뜨려하지 않자 출연진은 다시 막을 올려 인사를 올렸다. 보기드문 장면이였다. 극장을 떠나면서도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관중들의 모습에서 “아리랑꽃”이 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음을 대뜸 읽을수 있었다. 북경관중들은 “아리랑꽃”에 대해 오랜만에 보는 원시창작품으로서 민족특색이 짙고 예술성이 높은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아리랑꽃"포스터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는 김희총감독/ 김희제공

그럼 “아리랑꽃

”이 이같이 관중들의 심금을 울리게 된 리유는 어디에 있을가? “아리랑꽃”은 대체 어떻게 창작되였는가? 그 영문을 알고저 기자는 북경공연기간에 국가1급 안무가이며 “아리랑꽃”의 총감독을 맡은 연변가무단의 김희를 찾아 인터뷰를 했다.

30일, 북경공연전의 리허설 마치고…

—작품에 담그어 온 스승님들과 선배님들의 로심초사 체험

8월 30일, 북경 공연직전 북경민족극장에서 리허설을 마친 김희총감독은 무용수들의 앞에 다가섰다. “지나온 근 3년간 여러분들은 고생을 마다하고 오로지 한가지 목표를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안무가들가운데 어머니를 저 세상에 보낸 슬픔을 이겨내고 창작에 나선 분들이 있는가하면 중병으로 입원한 부모님을 간호하면서도 피로를 잊고 함께 달려온 분들도 있습니다. 엎친데 덮친데라고 적지 않은 무용수들은 옛부상에 거듭 부상을 입었지만 이를 악물고 치료를 하면서 버텨왔습니다…”김희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만 눈물을 흘리고말았다.

그의 눈물은 오로지 더 높은 수준에로 톺아오르기 위해 애써온 무용수들과 제작진에 대한 고마운 마음의 발로였다.

김희는 “아리랑꽃”총감독을 맡아 하면서 무극 “춘향전”, 무용시 “장백의 정”, 음악무용시 “천년 아리랑”, 가무“노래하노라 장백산”등 대작을 세상에 내놓은 연변가무단의 스승님들과 선배님들의 로고를 가슴깊이 깨닫게 되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까지 저를 믿어주고 힘껏 지지해주신 연변가무단의 지도부와 스탭진 그리고 ‘제자는 영원한 자식’이라면서 항상 사심없는 지도와 따뜻한 사랑을 주신 스승님들께 감사합니다. 저는 오직 최선을 다 하는것을 여러분들에 대한 부끄러움없는 보답으로 여기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묵묵히 응원해준 전체 스탭진의 가정성원들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올리고싶습니다.”고 했다.

배우들과 함께 연습하고있는 김희총감독 / 김희제공

꽃은 져도 그 향기는 천년간다

— 신변의 익숙한 일, 소중한 이야기를 그려내고싶었다

2013년 말 연변가무단에서는 무용시 혹은 무극을 제5회 전국소수민족문예합동공연 추천작품으로 확정하고 가무단내에서 작품공모를 했다.

김희는 “자연과 인간사회, 일상생활에 대한 모든 관찰과 터득이 창작에서의 첫번째 과제”라고 말하면서 “저의 생활에서 가장 많이 보고 듣고 경험했던것이 무용이며 무용이야말로 가장 익숙하고 소중한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무용가들의 희로애락을 그려내려는 시점에서 많은 자료를 뒤져보았습니다. ”고 말했다. 무용으로 무용가를 그려낸다는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쉬운 일로 보이겠지만 무용의 어떤 수단과 형식으로 무용가를 부각시키겠는가가 관건이기에 이는 극히 힘든 제재라고 김희한테 엿주어주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하지만 무용가를 그려내려는 김희의 마음은 확고했다. 자료를 뒤집다가 “꽃은 져도 그 향기는 천년간다”는 구절이 김희한테 안겨왔다. 김희는 “바로 이거다”하고 손으로 무릎을 탁 치면서 조선족문화예술의 상징물이자 부호인 장고를 주선으로 작품줄거리를 구상해내기로 했다.

우리 민족은 기뻐서 흥이 날때나 슬퍼서 마음이 아플때나 흔히 장고를 두드리며 마음을 표달하군 한다. 김희는 장고에 우리 민족의 넋이 담겨져있기에 장고로 우리 민족의 어제와 오늘 래일을 효과적으로 그려낼수 있다고 여기고 장고를 중심으로 전통무용과 민속무용원소를 안받침해주면서 전반 작품에 장고를 관통시키기로 했다.

김희는 “작품구성에서 무용가의 인생의 희로애락을 색갈로 표현했습니다. 오방색(五方色), 청색, 하얀색, 빨간색, 흑색, 황색중의 4색으로 서막부터 종막까지 총 6막으로 작품구성을 짜고 매 막의 내용과 무용형식, 표현수단을 문자와 도면으로 작성했습니다.”고 구상초심을 설명했다.

2014년 3월에 있은 기획발표모임에서 김희는 무용시 “아리랑꽃…그 향기”란 제목으로 서막 “향기속으로”, 1막 “파란 향기”, 2막 “빨간 향기”, 3막 “하얀 향기”, 4막 “노란 향기”, 막장 “천년 향기” 총 6막, 장고를 중심으로 매 막의 무용형식, 표현수단, 무용구도, 무대의 종합수단에 이르기까지 전반구상을 문자와 그림으로 만들어 작품발표를 했다.

2막 "빨간 향기"의 한 장면

4월초, 김희의 무용시 “아리랑꽃(원명 ‘아리랑꽃…그 향기’)”은 사상이 두드러지고 전통문화예술을 바탕으로 한 현대감각이 뛰여나다는데서 최종 제5회 전국소수민족문예합동공연의 추천작품으로 선정되였다. 4월말에 김희는 연변가무단 전임 단장이고 국가1급 작곡가이며 “아리랑꽃”의 예술고문이고 주요 음악창작자중의 한사람인 박서성의 소개로 국가1급 연출이고 연변작가협회 부주석이며 연변인민출판사 “문화시대”주필인 김영건시인에게 극본작성을 부탁했다.

시와 음악 그리고 무용의 화합

—무용시를 무극으로 각색, 무극초급자에게는 도전이였다

2014년 5월부터 김희는 김영건시인, 박서성작곡가와 함께 고달프고도 긴긴 창작의 스타트를 뗐다.

중국현대미학 창시자이며 문예리론가인 주광잠은 시와 음악과 무용은 동원(同源)이며 3위 1체의 혼합예술인바 이 세가지의 공통된 명맥이 바로 절주라고 말한바 있다. 공통명맥인 절주에 의거해 시와 음악무용의 어울림이 이루어진다는것이다.

김희는 “시가와 음악이 형상(形象), 절주(节奏), 경지(意境)가 있듯이 무용도 형상, 절주, 경지가 있다. 정감이 있고 내함이 깊은 시를 읽고 음악을 감상하면 무용을 창작하고싶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무용을 보면 시를 읽고싶다.”고 말하면서 시와 무용, 음악과 무용의 관계를 형상적으로 풀이했다.

김희는 김영건시인이 쓴 시를 보고 무용을 창작하고 김영건시인 역시 김희의 춤사위를 보면서 시를 썼다.

김영건시인은 “아리랑꽃”의 주제시를 쓴 외 매 장면마다 시를 썼으며 박서성작곡가는 "아리랑꽃"주제곡과 매 막의 주제곡을 작곡하였다.

연변가무단 창작실 주임 황기욱작곡가를 비롯한 창작대오와 스탭들의 노력끝에 시와 음악, 무용이 하나로 융합된 무용시 “아리랑꽃”이 볕을 보게 되였다.

4막 "노란 향기"의 한 장면

2015년 11월 6일, 무용시“아리랑꽃”의 첫 시연이 있었다.

여러 분야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대부분이 부정적인 목소리였고 지어 실패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김희는 “륙상경기에서 분초로 1, 2, 3, 4등을 뽑는것과 달리 무용에서는 단지 ‘좋다, 비교적 좋다, 나쁘다’로 평가할수 있을 뿐‘틀린다, 실패작이다’로 단정하는것엔 리해가 안간다.”고 말했다. 무극창작경험이 없는 그는 사전에 큰 반향이 있게 될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이처럼 “거센파도”가 일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김희는 다른 사람들이 걷지 않던 길을 선택하였으니 당연이 가시덤불을 헤쳐나가야만 했다.

각 분야에서 주는 압력도 컸다. 한개 장면을 창작하는데 몇날며칠을 지새며 고민하며 짜낸 아이디어이고 예술성과 사실성의 조화를 이루며 만든 무용시였다. 흰머리 나고 체중이 10키로그람 떨어지도록 심혈을 기울인 결과가 여기서 그만 나무아미타불이 되는가싶어 김희는 심한 고민속에 잠겼다…

한 전문가는 “대형무용창작에서 처음에는 왕왕 무극으로 구상했다가 희극성(戏剧性)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무용시로 창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지적했다.

김희는 이미 완성된 음악에 주제를 변화시키지 않고 역시 장고를 주선으로 하면서 원래의 인물을 보유하는 토대우에서 무용시를 무극으로 각색하기로 결심했다. 김희한테는 도전이 아닐수 없었다.

바로 이때 단맛, 쓴맛을 함께 맛보며 고락을 같이 해온 김영건시인과 박서성작곡가가 김희총감독의 주장을 지지해주고 부추겨주고 김희한테 자신심을 불어넣어주었다.

혼란스럽고 부정적인 의견들은 오히려 김희를 사색에 잠기게 하고 한발작 뒤로 물러서서 3자의 위치에 서서 검토하도록 했다.

2016년 음력설전 김희는 순간적으로 머리가 확 트이면서 생각이 바뀌여졌다. 그 자리에서 김희는 김영건시인에게 전화를 걸어 극본의 수정을 부탁했다.

음력설 초사흩날부터 김희는 “아리랑꽃”총감독조리이자 무용수이며 안무를 맡은 한미화, 안해월, 주요 배우들과 함께 무용시를 무극으로 개편하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인물형상을 더 굵게 부각하고 희극성을 더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2년간 공들여 창작한 아까운 무용장면 을 하나 둘 포기해버렸습니다. 살점을 떼여내듯이 ...”여기까지 말하는 김희의 두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너무도 아까워 가슴이 찢어지는듯했습니다. 내가 보건대 그 장면들은 참 감상할만한 장면들이였습니다. 첫 시연 때의‘아리랑꽃’과 지금의 ‘아리랑꽃’이 완전히 다른 두개 작품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었으며 첫번째 작품이 더 좋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무형문화재인 전통무용원소를 작품의 하이라이트(亮点)인 장고로 안받침해주는 “장고의 인연”, “장고의 련정”, “장고의 슬픔”, “장고의 환희”등을 주요내용으로 한 무극이 드디여 이루어지게 되였다.

2016년 8월 6일, 무극“아리랑꽃”은 반년간의 헤아릴수 없는 수정과 보완, 승화를 거쳐 마침내 룡정시해란강극장에서 정식공연을 하게 되였다.

김희는“예술은 영원히 완미함이 없습니다. 아직도 부족점이 많습니다. 짧은 시간내에 무용시를 무극으로 각색하면서 밤 12시에 퇴근하는것이 일상이 되였고 지어 새벽 2시까지 연습할 때도 있었습니다. 총감독조리인 한미화, 안해월은 밤늦게까지 연습하고도 이튿날 8시 30분부터는 무용수들을 이끌고 무용연습을 해야 했습니다. 이들의 협조와 반복되는 수정의 지겨움을 견디여내는 전체 창작진과 배우들의 인내력이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겁니다.”고 말한다.

4막 "노란 향기"의 한장면

1분 무대 10년 노력

—조선족무용스타들이 많이 산생했으면

김희는 “훌륭한 무용작품을 만들려면 안무가의 높은 심미적추구와 그에 따르는 알심 들인 구상과 구성이 있어야 할뿐만아니라 작품에 대한 무용수들의 리해가 있어야 하며 관중들의 접수능력과 창조적인 련상이 따라서야 합니다. 또한 안무가는 무용수들이 몸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무용어휘의 합리성과 불합리성을 발견해야 하며 이에 따른 새로운것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런 반복적인 작업을 통하여 작품은 무대를 통해 관중들의 심미적수요를 만족시키고 향상시킵니다. 그래서 무용창작에서 첫 창작자는 안무가이고 두번째는 무용수이며 세번째가 관중들이다는 말이 있습니다.”고 무용창작에서의 안무, 무용수, 관중 이 3자간의 관계를 설명했다.

김희는 전통무용와 민속무용원소를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정서와 현대적감각을 살리는데 모를 박고 끊임없는 혁신을 이어왔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무용의 형상, 절주, 경지를 통해 말하려는 내용을 작품에 함축시켜야 합니다. 사실성을 강조하면 화극이 될수밖에 없고 너무 추상적이고 예술성만 강조하다보면 대중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물론 무용수와 관중들의 접수능력과 감상수준에 맞추어 반복적인 창작과 수정이 필요합니다.”

“무대우의 1분이 무대아래에서는 10년노력이 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끊임없는 수정과 승화를 거치지 않고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보다 좋은 작품이 나올수 없습니다.”

“‘아리랑’이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면 ‘꽃’은 우리 민족의 문화예술을 상징합니다. ‘아리랑꽃’을 통해 현대인의 감상수준을 높이고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예술을 계승발전시키며 우리 민족의 문화예술을 널리 알리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김희는 “‘아리랑꽃’을 통해 더 많은 조선족들이 무용에 애착해서 ‘아리랑꽃’의 남주인공(A역)이며 지난 9월 4일, G20 항주정상회의‘그리운 항주’공연에서 수상쌍무를 보여준 절강가무극원 무용단 단장인 류복양과 같은 유명스타가 많이 산생되였으면 하는 바램도 있습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김희는 “근 3년간 동고동락을 해온 ‘아리랑꽃’공연에 참가한 전체 제작진과 무용수 그리고 묵묵히 뒤받침을 해준 후근인원들이 진정한 ‘아리랑꽃’의 주인입니다.”라고 하면서 제5회 전국소수민족문예합동공연 인터넷투표(9월 11일 10시까지 118만 4600표, 제1위 기록, 제2위와 7만표차이)를 일상생활의 첫째가는 일로 삼고있는 전국 지어 세계 각국에 널려있는 중국조선족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종막 "천연 향기"의 한 장면/ 유경봉기자

김희 주요 략력:

1992년 연길시조선족예술단 무용배우로 있다가 연변대학 예술학원 교원으로 전근

1997년— 현재 연변가무단 창작실에서 근무, 부주임 담임.

2001년-2004년 한국예술종합대학 무용원 창작과 석사졸업

송미라와 함께 가무“노래하노라 장백산” 총감독 맡음 , 문화부 제14회 문화상 우수공연종목상, 문화안무상 수상, 제4회 전국소수민족문예합동공연 금상 수상, 음악무용시“천년아리랑”안무, 제3회 전국소수민족문예합동공연 대상수상, 그중 “부채춤”,“북춤”등이 우수종목상 수상. 무용 "서혼" 제7회 중국무용“련꽃상”민족민간무용콩클작품 은상 수상, 길림성중청년특수공헌전업기술인재, 제5회 연변주10대녀걸로 선정.

공연을 마치고 북경관중들에게 인사를 올리고있는 김희총감독과 배우들

/사진 서명외 홍옥기자 찍음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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