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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파란 불 vs 빨간 불’ 파리지앵은 언제 길을 건널까?

[기타] | 발행시간: 2017.02.08일 11:53

파리지앵들의 대답은 간단하다. 차가 오지 않을 때 길을 건넌다고 말한다. 실제로 파리 대표적 거리인 샹젤리제 대로에서 30분만 있으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현지인들은 신호등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들의 대답대로 차가 없으면 길을 건넌다. 더 엄밀히 말하면 차가 오더라도 여유가 있다면 길을 건넌다.

하지만 샹젤리제에도 신호등을 매우 엄밀히 지키는 사람들도 있다. 파리에 막 도착한 관광객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도 하루 정도만 지내면 파리지앵 흉내를 낸다. 차가 없다면 길을 당당히 건넌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셈이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프랑스가 과연 선진국 맞느냐고 말이다.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의 하나고 유럽 연합의 한 축을 담당하는 프랑스에서 가장 기초적인 교통질서도 지키지 않는다니 의아해 했다.

언뜻 교통사고가 엄청나게 발생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OECD 교통사고 사망률을 보면 우리나라는 2011년 기준으로 교통사고 사망자는 인구 100만 명당 105명이다. 회원국 가운데 2위다. 그런데 프랑스는 39명에 불과하다. 수치적으로는 교통 선진국은 틀림없다. 이렇게 신호를 지키지 않는데 왜 교통사고 사망률은 이렇게 낮을까?

신호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보행자와는 달리 운전자는 심할 정도로 신호를 지킨다. 매우 다혈질인 파리지앵들은 앞서가는 자동차가 너무 늦게 간다거나 자주 차선을 바꿔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면 경적을 울리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개선문 로터리를 돌다 보면 이곳저곳에서 울리는 경적 때문에 가끔은 짜증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교통신호 앞에서 놀랍도록 준법정신을 발휘한다. 보행자 신호인 파랑 신호등이 꺼졌다고 하더라도 바로 출발하는 경우가 없다. 차량 신호가 길게는 7초 정도 빨간 신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시간을 보행자들은 마지막 찬스라고 생각하며 충분히(?) 활용한다.) 또한 신호가 없는 짧은 횡단보도에서는 일단 보행자를 위해 서행한다.

기자가 파리에서 처음 운전대를 잡을 때 보험회사 직원이 해줬던 충고는 아직 생생하다. "파리에서 빨강 신호등의 의미는 절대 차를 움직여선 안 된다는 것이고 파랑 신호등은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운전자들도 이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보행자와 운전자 신호등을 두고 보여주는 두 행동 양식은 표면적으로 극명하게 달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하면 두 모습은 하나의 목적에서 어우러진다. 바로 보행권의 존중이다. 도심의 주인공은 보행자이고 문명의 이기인 차량은 덤이라는 것이다.(어차피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면 보행자가 되고 또 보행자가 차에 오르면 운전자가 되는 상황이니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파리 도심에서 차를 끌고 다니는 것은 여러 가지 불편의 연속이다. 주차도 어렵고 비싸다. 가끔은 횡단보도에 차선을 조금 넘어서면 지나가는 파리지앵들이 차를 툭 치고 지나가면서 경고성 한마디를 잊지 않는다. 똑바로 운전하라면서 말이다.

도심 보행권을 보장하기 위한 교통 정책도 꾸준하게 시행된다. 대표적인 것으로 파리의 도심 차량 속도 제한을 들 수 있다. 현재 파리 도심의 기본 제한 속도는 50km 이하이다. 오는 20년까지는 시속 30km 이하로 더 낮춘다고 한다.

도심 제한 속도를 줄이는 것은 만일에 있을 교통사고에서도 사망률을 크게 낮추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보행자들의 보행 욕구를 자극할 뿐 아니라 보행 자유를 극대화시켜주는 효과를 낸다.

우리는 어떤가? 초등학교에서부터 신호등을 철저히 가르친다. 횡단보도에서 누가 무단횡단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눈총을 준다. 교통 신호를 지키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교통질서를 잘 지키지만 앞서 본대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는 교통사고 사망률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래도 사망률이 1위는 아니라며 위안할 수 있을까?

과거 한 지자체 단체장이 파리로 출장을 와서 특파원단과 오찬을 한 적이 있다. 당시 기자는 파리의 도심 제한이 50km에 불과한데 우린 너무 빠른 것 아닌가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전적으로 동감한다면서 현재 도심 교통 정책을 경찰에서 맡을 것이 아니라 지자체로 이관한다면 그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답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업무 이관이 말처럼 쉽지 않다. 또 밥그릇 싸움 같은 이전투구 양상도 보이며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있다.

사실 이 문제는 도심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철학의 문제다. 도심의 주인공을 보행자로 볼 것이냐 아니면 운전자로 볼 것이냐는 문제인 것이다. 도심의 주인공을 보행자로 본다면 서울 시내 제한 속도 60km라는 기준은 나올 수 없다. 파리의 50km와 차이는 불과 시속 10km다.

하지만 그 결과 교통사고 사망률은 앞서 언급한 대로 천양지차의 차이를 보인다. 아쉽게도 우리의 교통 정책은 효율적인 흐름에 맞춰져 있다. 개발 시대의 논리가 그대로 반영된 것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운전자들의 과속은 당연한 것이고 과속에 방해되는 자전거나 보행자들은 타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 늦게 건널목을 걸어도 우리는 운전자들로부터 욕을 먹는다. 그리고 우리는 미안한 표정까지 짓는다. 이런 장면을 연상하고서야 기자는 프랑스가 그래도 선진국이라는 점을 인정하게 됐다. 보행자가 중심이 되는 그 날! 어쩌면 우리도 파리지앵처럼 이론적으로는 파랑 신호등에 건널목을 건너는 것을 충분히 잘 알지만, 현실적으로 차가 없을 때 당당하게 건널 수 있지 않을까?

박진현기자 ( parkjh@kbs.co.kr)

출처: K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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